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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정보/역사

서유기의 손오공은 사실 원숭이가 아니다?



  누구나 알고 있는 것처럼 16세기 명대에 쓰여진 소설 [서유기]에서 삼장법사 현장은 불경을 구하러 가는 여행의 동반자로서 손오공·저팔계·사오정 세 제자를 데리고 다닌다. 이들은 모두 동물 요괴이지만 바로 그 때문에 [서유기]는 기상천외하고도 재미있는 소설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친숙해졌던 것이다.


  실제의 삼장법사는 7세기의 인물이다. 그가 서역으로 불경을 얻으러 가는 여행길에는 동물 요괴만 동행하고 인간 제자가 한 명도 없다. 7세기에 살았던 실제인물이 약 900년 후 소설의 주인공이 되기까지에는 당연히 수많은 전설이 얽혀 있을 것이고, 그 전설이 함축하고 있는 수수께끼를 푸는 일도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삼장법사가 원숭이를 데리고 간다는 [서유기]의 핵심적 모티브의 성립과정은 아직 풀지 못한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소설 [서유기]가 최종적으로 성립하기까지에는 그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이야기 몇 가지가 간행본의 형태로 남아 있다. 그것들 중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것은 [대당삼장취경시화(大唐三藏取經時話)]일 것이다. 남송말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되므로 13세기 후반에 성립된 것으로 생각된다. 이는 대도시의 번화한 장소에서 대중들을 상대로 이야기되던 이른바 강담(講談)류를 엮은 것이다.


  이 간행본에는 분명 손오공의 전신이라고 생각되는 원숭이가 등장하는데, 손오공이라는 이름은 없고 다만 후행자라고만 불리고 있다. 그 밖에 사오정의 전신인 심사신(深沙神)이 등장하지만 여행에는 참가하지 않고, 또 저팔계를 방불케 하는 돼지 비슷한 동물은 등장하지 않는다. 여하튼 후행자의 존재로 보아 13세기 후반에는 삼장법사가 원숭이를 데리고 불경을 얻으러 떠난다는 이야기가 오갔던 것만큼은 확실하다.


  좀더 거슬러올라가 13세기 전반에도 유사한 이야기가 전해졌던 것으로 여겨지는데, 그것은 문헌자료에는 없지만 복건성 개원사 서탑 벽면에 돋을 새김으로 남아 있다. 손오공이라는 이름은 붙여지지 않았지만 얼굴 생김새나 복장, 소지품으로 보아 손오공의 전신임이 분명하고, 그 점은 같은 서탑 다른 벽면에 조각되어 있는 당삼장동해화룡태자 [서유기]와 관련된 등장인물의 돋을새김에 의해 더욱 분명해진다. 그런 점으로 미루어보아 남송 무렵에는 삼장법사 이야기가 민간에 유포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전의 흔적은 문헌이나 미술자료 등에서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다.


  당 말기인 9세기경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런 주제의 그림 20세기 초엽 돈황 막고굴의 이른바 장경굴(17)에서 다량으로 발견되었다. 그 주제는 현재 해외 몇몇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호랑이를 데리고 여행을 하는 성자 행각승의 모습이다. 그 행각승이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오래 전부터 논쟁이 있어왔고 아직 매듭지어지지 않은 상태지만, 여러 가지 이유에서 이 행각승을 삼장법사일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렇다면 왜 삼장법사가 호랑이를 데리고 있는지, 언제부터 호랑이가 원숭이로 바뀌었는지가 문제이다. 여기에 대해 상세한 논의는 어렵지만 대충 다음과 같이 추측해볼 수는 있다.


  호랑이를 동행한 이유 중 가장 설득력이 있는 것은 호랑이가 아시아에서 가장 강한 맹수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동시에 호랑이는 중국의 전통적인 사상에서 사신(四神)의 하나로 꼽히는 성스러운 동물이라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여기서 청룡·백호·주작·현무의 이른바 사신이 각각 동서남북 사방위와도 대응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한데, 서쪽 방향에 대응하는 호랑이야말로 불경을 얻으러 서천으로 향하는 삼장법사의 여행을 수호하는 데 어울린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서쪽에 위치한 호랑이든 동쪽에 위치한 용이든 모두 신통력을 가진 성스러운 짐승이기 때문에 평범한 사람으로서는 다스릴 수 없다. 그러나 나한으로 화한 삼장법사로서는 용이나 호랑이조차도 길들여 제자로 삼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인도에서는 나한이 열여석 명으로 정해져 있다. 16나한의 명단을 중국으로 가져갔던 사람이 바로 삼장법사 현장이다. 중국에서는 곧 인도에서 전해 내려온 16나한에 둘을 추가하여 18나한으로 만들었고, 18나한의 구성원도 중국에서 독자적으로 편성하였다.


  중국에서 인도의 16나한에 덧붙인 것은 경우(慶友)와 빈두로(賓頭盧)인데,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9세기경부터 그려지기 시작한 나한도를 보면 일반적으로 경우가 용을 타고 내려오며 빈두로(현장?)가 호랑이를 엎드리게 한 강룡복호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처럼 완전히 편성이 달라진 18나한은 중국 강남에서 유행했던 듯하다.


  9세기경에 그려진 돈황의 행각승도가 삼장법사의 여행 모습이라면, 호랑이를 데리고 있었던 삼장법사는 왜 호랑이를 버리고 원숭이를 제자로 삼았을까? 여기에는 두 단계가 있어, 먼저 호랑이가 용으로 바뀌고 다시 용이 원숭이로 바뀐 것으로 여겨진다.


  아이들에게 특히 인기있는 소설 [서유기]의 세계, ‘삼장법사가 원숭이를 데리고 여행을 했다’는 단순한 사실에조차 이상과 같은 복잡한 과정이 있다. 역사를 공부하는 데는 아무리 단순한 사실에 대해서라도 소박한 의문과 호기심을 가져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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