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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정보/역사

복권의 기원과 역사


복권의 기원과 역사



1. 복권의 기원


  복권의 유래에 대해 학자들은 그 기원을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 시대로 보고 있다. 동양에서는 기원전 100년경 중국의 진나라에서 만리장성의 건립과 같은 국방비를 모으기 위해 복권을 발행했었다고 한다.

  서양에서는 아우구스투스 황제(B.C 63년 ~ A.D 14년)가 로마의 복구자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각종 연회에서 복권을 팔고 노예나 집, 선박 등을 나누어 준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이후 고대 로마에서는 연회에서 황제가 손님들에게 추첨을 통해 다양한 상품을 나누어 주는 것이 일반화되었다고 한다. 손님들은 음식값으로 돈을 지불한 계산서를 가지고 추첨을 하여 상품을 탔다. 로마의 5대 황제 네로는 로마제국의 영속성을 기념하기 위하여 대중적인 추첨행사를 벌여 매일 땅, 노예, 선박 또는 직업 등을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중세에는 유럽의 장인들이 제품을 팔기 위해서 복권을 도입했으며, 지금의 벨기에인 플랑드르 지방에서는 1200년경에 농작물시장 참가자를 선출하기 위한 제비뽑기로서 복권이 시행되었다고 한다.

  근대적인 형태는 1446년 네덜란드 화가 에이크(Eyck, Jan Van)의 미망인이 그림을 팔기 위해 추첨을 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로또의 기원은 1519년 이탈리아의 제노바(Genoa) 지방의회선거가 후보자 90명의 이름 중에서 다섯 명을 제비 뽑는 방식으로 진행 되었는데, ‘로또 복권의 아버지’로 불리었던 Benedetoo Gentile이 이에 착안하여 90개 숫자 중 5개의 숫자를 추첨하는 로또 5/90게임을 만들어낸 것에서 찾고 있다.

  운명이라는 뜻을 지난 이탈리아어 ‘Lotto’가 복권을 의미하는 영어 ‘Lottery’의 어원일 것이라고 한다.




2. 복권의 역사적 발전


  16세기 들어 수 많은 유럽 국가들은 재원 확보를 위해 복권을 승인하였으며, 엘리자베스 여왕 1세는 1569년 항구 재개발 등을 위한 국고를 유지하기 위해 영국 최초의 복권을 승인하였다.

  독일에서는 추첨식 복권이 1600년대에 함부르크에서 만들어졌고, 유럽의 가장 오래된 정부복권은 1726년에 시행된 네덜란드의 복권이다. 대다수의 유럽 복권들은 주정부가 복권사업으로 올린 수익금을 분할 받는 조건으로 민간 기업가로 하여금 복권 게임을 운영할 수 있도록 허가해 주었다. 예외적으로 스페인, 포르투갈, 덴마크, 네덜란드, 그리고 오스트리아의 정부에서 운영하는 복권 및 자선단체들이 운영하는 복권이 있었다.

  중세를 지나 근세로 넘어오는 시기에 복권은 사회발전에 유용한 수단으로 쓰였다. 1740년에서 1755년 사이에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의 여러 지방도시는 교회, 학교, 교도소, 도로, 항구, 다리 등을 건설하기 위해 반쯤 민영화된 복권을 발행하였는데, 이 기금이 대학을 설립하는 데도 사용되어 콜롬비아, 뉴저지, 예일, 하버드, 프린스턴, 플리머스 등 오늘날까지 잘 알려진 명문대학들을 탄생시킨 밑거름이 되었다.

  그러나 미국에서도 복권에 대한 비판이 일자 1800년대 초반 이후에는 주정부가 복권의 운영을 금지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복권의 이상 열기와 사적으로 발행되는 복권(루이지애나 스테이크 경마4))의 비리가 만연하게 되어 서민들의 피해가 속출하자 Lower Canada와 New York주를 시초로 복권과 도박을 금지하는 법을 제정하였고, 그 후 약 반세기 동안 헌법에 의해 복권이 금지되었다.

  1900년대 초반에는 캐나다와 호주, 유럽 등지에서 복권이 합법적으로 발행되기 시작하면서 20세기 복권이 등장, 뉴햄프셔와 뉴욕주를 시작으로 복권을 승인하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Scientific Games라는 이름의 즉석복권이 처음으로 등장하였고, 메사추세츠주가 1974년에 처음으로 긁어내는 복권을 발행하였다. 또 다른 큰 혁명 중 하나는 전산화된 넘버스 게임이 도입된 것이다. 뉴저지 주복권이 1975년에 ‘Pick It’이라 불리는 세자리 숫자 게임을 판매하기 위해서 최초로 전산화된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이처럼 미국 복권기관들이 컴퓨터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시간을 쏟는 동안, 유럽에서는 ‘로또’라는 거대한 혁명이 일어났다. 독일에서 1950년에 로또에 대한 아이디어를 고안하였고, 이후 폴란드, 프랑스, 그리스, 불가리아, 그리고 구 러시아에서 이를 모방하게 된다. 미국은 뉴욕 주복권이 1978년에 off-line 로또5)를 도입하게 되고 동부와 서부를 넘나들며 복권기관들은 높은 당첨금을 터뜨리기 위해 경쟁하게 된다. 로또의 판매량도 급증하여, 미국 복권 역사상 흥미로운 시기가 되었다. 1979년에 600만 달러를 기록했던 연간 로또 판매 수익은 10년이 지난 후 82억 달러를 기록하게 된다. 뉴욕주와 미시간주에서는 1980년대 중반에 키노(Keno)가 널리 퍼지게 되었다.

아시아 지역에서는 약 350년의 복권발행 역사를 가진 일본을 비롯하여 대만, 태국,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이 복권을 발매하고 있으며, 대부분 정부 재정자금으로 운용되고 있다.




3. 우리나라 복권의 기원과 역사적 발전


  우리나라 복권의 기원은 근대 이전에 발달한 친목 도모와 서로간의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실시된 일종의 민간협동체인 ‘계(契)’에서 찾을 수 있다.

  조선후기의 ‘산통계(算筒契)’나 ‘작백계(作百契)’로서 산통계는 통이나 상자 속에 각 계원의 이름을 기입한 알을 투입한 후 그 통을 돌리다가 나오는 알에 의하여 당첨을 결정하는 것이었으며, 작백계는 ‘천인계(千人契)’ 또는 ‘만인계(萬人契)’라고도 일컬어 지던 것으로 일정번호를 붙인 표를 100명(작백계), 1,000명(천인계) 혹은 10,000명(만인계) 등 일정한 단위로 팔고 추첨을 하여 총 매출액의 100분의 80을 복채금으로 돌려주었다고 한다.

  근대적 의미의 우리나라 복권의 기원은 광복 이후 발행된 복권에서 찾을 수 있다. 해방 이전에도 복권을 발행했다는 기록이 일부 있으나, 대한민국 최초의 복권은 1947년 12월 제16회 런던 올림픽대회 참가경비를 마련하기 위하여 발행한 ‘올림픽 후원권’이다. 올림픽 후원권은 액면금액 100원, 1등 상금 100만 원으로 총 140만매가 발행되었다.

  이어 이재민 구호자금을 마련할 목적으로 후생복표가 1949년 10월부터 1950년 6월까지 3회에 걸쳐 이재민 구호자금 마련을 위하여 판매되었다.

  1950년 6.25 전쟁 발발 직후인 9월부터 전쟁 이재민 구호 등의 자금마련을 목적으로 재무부에서 한국식산은행(‘산업은행’의 전신)을 통해 발행되었다. 애국복권 발행은 시기적으로 두 차례로 나누어 지는데, 제1차 애국복권은 1950년 9월부터 1951년 3월까지 액면가 1,000환의 추첨식 인쇄복권이 발행되었다. 이후 몇 년간 중단되었다가 제2차 애국복권으로 1956년 2월부터 1959년 1월까지 매월 단위로 액면가 100환의 추첨식 인쇄복권이 발행되었으며 추첨식 인쇄복권 외에 액면가 200환의 개봉식 복권, 액면가 100환의 피봉식 복권도 발행되었다.

  이후 발행된 복권으로는 만국박람회 개회 경비마련을 위하여 무역박람회장 안에서 관람객을 대상으로 판매된 산업박람회 복표(1962년)와 무역박람회 복표(1968년) 등이 있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복권시장 형성은 1969년 (舊)주택은행에서 발행한 정기 복권의 효시인 주택복권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복권위원회 '2014 복권백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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