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에 가면 피맛길 혹은 피맛골이라고 불리는 거리가 있다.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종로방향으로 이어지는 골목길인데, 아마 이 길을 청진동 해장국과 빈대떡을 먹으며 술한잔 기울이던 추억의 장소로 기억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피맛길의 유래는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일대는 경복궁과 그 앞(지금의 세종로)으로 쭉 뻗어 있던 관청들이 있어 벼슬아치들이 많이 행차하던 곳이다. “물렀거라~ 길을 비켜라~” 그럴 때면 어김없이, 평민들은 말을 탄 고관들을 위해 길을 터주고 엎드려 예를 표해야 했다. 이를 피하려 평민들은 대로 양쪽의 좁은 뒷골목으로 다니게 되었다. 이곳이 바로 말을 피하는 피마(避馬)길이 되었고, 평민들이 벼슬아치의 갑질을 피해 잠시 쉬어가고 요기도 할 수 있는 주점과 국밥집들이 하나 둘 들어서면서 당대 대표적인 시장거리가 되었다.
이 일대는 한양으로 천도할 때부터 시장으로 설계되었는데, 태종 12년(1412)부터 3년간 약 800여 칸의 시전행랑이 줄지어 건설되었고, 그 뒤로도 지속적으로 증축되어 전체 2,000여 칸에 달했다고 한다. 생선을 팔던 ‘어물전’, 종이를 팔던 ‘지전’ 그 밖에 모시, 명주, 비단 등 다양한 물품을 취급하는 상점이 있었고, 일부는 그 물품을 국가에 공급하기도 하였다. 그 외에도 이 지역에는 조선시대 검찰이었던 ‘의금부’와 현재 주민센터 격인 ‘한성부중부관아’ 등의 여러 관아들과 중인들의 집들이 있었다.
2004년, 이 일대에 대한 재개발이 시작되었다. 비록 예전 해장국집이 있던 정겨운 골목길은 없어졌지만, 이를 계기로 조선시대 땅 속에 묻혀있던 피맛길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빌딩숲 아래라 큰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공사에 앞선 발굴조사에서 시전행랑의 초석과 기단, 구들장 등등이 수두룩 빽빽하게 확인되었다. 그것 역시 15~19세기까지 조선의 역사를 대변하듯 역사를 품고 켜켜이 쌓여 있었다. 그 외에도 우물, 수로 등이 확인되고 각종 자기와 기와 등을 비롯하여 총통과 칼, 검과 같은 여러 가지 무기도 쏟아져 나왔다.
지금 피맛길에 가보면 이런 조선시대 유적을 만날 수 있다. 비록 그 자리엔 현대식 건물이 들어섰지만, 옛 피맛길처럼 주점 대신 맛집 골목이 그대로 재현되어 있으며, 지하에서 확인된 유적들도 거리 곳곳에 전시하여 두었다. 마치 피맛길에 오면 조선시대~옛 70년대 청진동 해장국 골목~21C 현대로 타임슬립을 하는 것만 같다. 과거와 현재의 아름다운 공존, 역사를 보존하기 위한 건설시행자와 고고학자들, 관련 행정기관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문화재청 '공감! 문화재'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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