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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정보/역사

아리랑의 기원



아리랑의 기원


  우리민족은 언제부터 아리랑을 부르기 시작했을까. 흔히 아리랑의 역사가 수 천 년은 넘었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문헌적 근거를 통해 드러나는 아리랑의 기원은 조선시대에 머물러 있다. 조선시대 후기 천주교 신자였던 이승훈(李承薰)의 '만천유고(蔓川遺稿)', '농부사(農夫詞)'에는 다음과 같은 한 구절이 남아 있다.


啞魯聾 啞魯聾 於戱也...(아로롱 아로롱 어희야...)


  물론 이 말이 우리가 지금 부르는 민요 아리랑의 모태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지금의 아리랑과 비슷한 후렴구가 조선 후기에 존재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아리랑'은 1865년부터 시작된 대원군의 경복궁 중수 때 전국적인 민요가 되기 시작했다고 본다. 학자들마다 견해가 다르지만 아리랑의 어원도 당시 경복궁 중수를 위해 발행한 원납전(願納錢)의 강제 유통으로 인해 백성들이 얼마나 힘들고 괴로웠던지 "내 귀가 먹어서 원납전 내라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다"는 '但願我耳聾 不聞願我耳聾'하고 탄식하며 읊조린 '아이롱(我耳聾)'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아리랑으로 변했거나 전국에서 선발된 부역꾼들이 고향을 떠난 외로움과 사랑하는 아내, 연인과 떨어져 있음을 한탄하면서 "나는 님을 이별하네"라고 부른 아이랑(我離娘)이 민요에 붙어 전국으로 확산되어갔다는 데서 찾기도 한다. 그런데 이렇게 전해 내려오는 아리랑은 무슨 뜻일까. 누구에게나 아리랑의 뜻이 무엇인지에 대해 물으면 설왕설래 한다. 아리랑을 한민족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노래로 여기면서도 그 뜻조차 알지 못하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구전되어온 민요의 기원을 알기란 불가능한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아리랑'은 다양한 분야에서 매혹적인 연구 대상이 되었다. 특히 아리랑의 뜻을 찾기 위해 1930년대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학자들이 문헌을 들추어 보았으며, 고어(古語)에서 찾아보았고, 비교언어학적으로 접근해 보았고, 전설이나 지명에서 찾아보기도 했다. 온갖 방법을 동원해 아리랑의 의미를 풀어내려고 했으나 아직까지 어느 것 하나 설득력 있는 정설(定設)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아리랑의 뜻에 너무 집착을 하다 보니 옛 문헌이나 언어 속에서 보물찾기 식으로 아리랑과 비슷한 말을 찾아 유추해 구구한 설만 나오게 했다.



지금까지 논의된 아리랑의 어원 가운데 보편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김지연(金志淵)의 알영(閼英)설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나타난 전설을 근거로 한 학설로 알영정(閼英井)과 알영천(閼英川)에서 유래된 박혁거세(朴赫居世)의 비(妃) '알영'의 덕을 찬미하는 것으로 이 말이 후에 아리랑으로 변했다고 한다.



2. 김재수(金載壽)의 아랑(阿娘) 설


밀양 아리랑의 배경이 되는 전설의 주인공 '아랑'이 아리랑으로 변했다고 한다.



3. 김덕장(金德長)의 아이랑(我離娘) 설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수할 무렵(1865~1872) 전국에서 선발된 부역꾼들이 고향을 떠난 외로움과 사랑하는 아내, 연인과 떨어져 있음을 한탄하면서 "나는 님을 이별하네"라고 부른 아이랑(我離娘)에서 유추하고 있다.



4. 남도산(南道山)의 아이롱(我耳聾) 설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수하면서 발행한 원납전(願納錢)의 강제 유통으로 인해 백성들은 그 소리에 귀가 멀 정도였다. 백성들 사이에서는 "내 귀가 먹어서 원납전 내라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다"는 '但願我耳聾 不聞願我耳聾' 이라는 말이 떠돌 정도였는데, 여기서 '아이롱'이 변해 아리랑이 되었다고 한다.



5. 강대호(姜大鎬)의 아난리(我難離) 설


  진시황제가 만리장성을 쌓을 때 부역민들이 쉬지도 못하고 혹사당하자 자탄조로 '魚淤河 我多苦'라고 했다. 대원군의 경복궁 중건 시기에도 부역민들이 이를 모방해 "나는 떠나고 싶어도 못떠난다"는 뜻인 '魚淤河 我難離'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 '아난이'가 후에 '아라리'로 되었다고 한다.



6. 권상노(權相老)의 아이롱(啞而聾) 설


  한일강제병합 후 노골적으로 심해져가는 일제의 착취에 대해 감히 맞서서 대항하지 말고 차라리 그들의 만행을 보지도 말고 듣지도 말고 못본 척 하라는 '아이롱(啞而聾)'이 아리랑으로 되었다는 설이다.




7. 일본인 학자의 아미일영(俄美日英) 설 


  구한말에 널리 유포되었던 “일본아 일어난다 미국은 믿지 말고 소련에 속지 말라….”는 풍요(風謠)의 내용과 뜻이 통하는 설로 아미일영(俄美日英)을 경계해야 한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8. 이능화(李能和)의 아랑위(兒郞偉) 설


  옛날부터 가옥을 신축할 때 상조문(上樑文)에 '아랑위(兒郞偉)'란 글을 검게 쓰는데서 연유했다고 한다. 이상운(李尙云)의 설을 이능화가 소개한 것이다.



9. 양주동(梁柱東)의 아리령 설 


  아리랑을 고유어와 한자의 혼합적 해석을 통해 규명한 설로, '광명을 찾아옴'에서 연유한 고개를 '아리령(嶺)'이라고 밝히고 아리·어리·오리·우리에 관한 지명을 전국적으로 분포된 고개로 대동여지도에 찾아 문헌적으로 고증하고 있다.



10. 이병도(李丙燾)의 낙랑(樂浪) 설


  역사적 사실에의한 유추설로 낙랑(樂浪)에서 남하하는 교통로의 관문인 자비령(慈悲嶺)의 이름을 '아라'로 보고 있다. 역사적 변동기에 유민들이 남하하면서 넘던 고개를 낙랑과 진번의 경계선인 자비령으로 생각해 낙랑-자비령-아리령 관계를 정립시킨 것이다. 



11. 최재억(崔載億)의 알랑(卵郞,卵娘) 설


  알랑(卵郞,卵娘) 설은 고어에 의한 유추적인 방법으로 동남(童男), 동녀(童女)의 뜻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 밖에도 여진어(女眞語)의 아린(고향)에서 유래되었다는 설, '아리고 쓰리다'에서 연유되었다는 설, 심지어 인도의 신(神)인 '아리람 쓰리람' 신에서 나왔다는 설, 중국어에서 나왔다는 설 등 무려 40여가지 설에 이른다. '아리랑'이란 매혹적인 용어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해 백인백색의 구구한 설명이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지만, 모두가 공감하는 아리랑의 어원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아리랑의 의미에 대한 해석은 아리랑의 종류만큼이나 많다. 아리랑의 어원을 찾고자하는 다양한 접근은 아리랑에 대한 애정이 그만큼 각별하다는 반증으로 볼 수 있다.

[국가기록원 '민족의 노래 아리랑'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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