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슈퍼카 브랜드 람보르기니(Lamborghini)의 엠블럼에는 성난 황소 한 마리가 그려져 있다. 창립자 페루치오 람보르기니(Ferruccio Lamborghini)가 황소자리(Taurus) 태생이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페라리의 '도약하는 말'을 들이받아 버리겠다는 그의 야심 찬 도전장이기도 했다.
그는 1962년, 스페인 세비야의 유명한 투우 목장인 '돈 에두아르도 미우라(Don Eduardo Miura)'의 목장을 방문했다가 그곳의 강인한 투우들에게 완전히 매료되었다. 이후 람보르기니는 자신들이 만든 기계적 걸작에 전설적인 황소들의 이름을 붙이는 전통을 고수해 오고 있다. 아스팔트 위를 달리는 야수들의 이름, 그 기원을 따라가 본다.

1. 전설의 시작: 미우라 (Miura)
1966년 등장해 '슈퍼카'라는 단어의 시초가 된 모델 '미우라'. 이 이름은 특정 황소 개체가 아니라, 페루치오에게 영감을 주었던 투우 사육가 '돈 에두아르도 미우라'의 가문과 그가 길러낸 종자에서 따왔다. 당시 람보르기니는 4번째 차였던 미우라를 통해 처음으로 황소 이름을 도입했고, 이는 페라리를 위협하는 강력한 성능과 아름다운 디자인에 걸맞은 선택이었다. 실제로 돈 에두아르도 미우라는 자신의 이름이 차에 붙는 것을 매우 자랑스러워했다고 전해진다.
2. 죽지 않는 불사조: 무르시엘라고 (Murciélago)
2001년 출시되어 람보르기니의 중흥기를 이끈 '무르시엘라고'. 스페인어로 '박쥐'라는 뜻이라 다들 배트맨을 떠올리지만, 사실 이 이름의 주인은 전설적인 황소였다. 1879년 코르도바 투우장, '무르시엘라고'라는 이름의 황소는 마타도르(투우사) 라파엘 몰리나의 칼에 무려 24번이나 찔리고도 쓰러지지 않았다. 그 경이로운 생명력과 투지에 감동한 군중들은 "살려줘라!"를 연호했고, 투우사는 결국 그를 죽이지 않고 살려주는 '인듈토(Indulto, 사면)'를 선언했다. 이후 무르시엘라고는 미우라 목장의 종우(씨소)가 되어 우수한 투우들의 조상이 되었다.
3. 투우사의 악몽: 이슬레로 (Islero) & 레벤톤 (Reventón)
람보르기니는 때로 투우사를 죽음에 이르게 한 무시무시한 황소의 이름을 빌려오기도 한다. 차의 성능이 그만큼 치명적이고 길들이기 힘들다는 은유다.
- 이슬레로(Islero): 1947년, 당대 최고의 투우사였던 '마놀레테(Manolete)'를 뿔로 들이받아 사망하게 한 악명 높은 소다. 1968년 출시된 람보르기니 이슬레로는 이 소의 이름을 땄다.
- 레벤톤(Reventón): 1943년, 멕시코의 유명 투우사 펠릭스 구즈만을 죽음으로 몰고 간 소다. 람보르기니는 2007년 한정판 모델에 이 이름을 붙여 '폭발할 듯한 성능'을 과시했다.
4. 용맹함의 상징: 아벤타도르 (Aventador) & 우라칸 (Huracán)
최근 우리에게 익숙한 모델들 역시 투우의 피가 흐른다.
- 아벤타도르(Aventador): 1993년 사라고사 투우장에서 가장 용감한 소에게 수여되는 트로피를 받은 소의 이름이다. 피를 흘리면서도 끝까지 굴복하지 않았던 그 용맹함은 람보르기니의 플래그십 모델에 그대로 이식되었다.
- 우라칸(Huracán): 1879년 알리칸테에서 맹활약한 투우로, 끈질긴 공격성과 불굴의 의지로 명성을 떨쳤다. 또한 마야 신화 속 '바람, 불, 폭풍의 신'을 뜻하기도 하여, 질주하는 슈퍼카에 더할 나위 없는 이름이 되었다.

5. 혈통과 조상: 가야르도 (Gallardo) & 우루스 (Urus)
특정 개체가 아닌 혈통이나 종에서 따온 경우도 있다.
- 가야르도(Gallardo): 18세기에 정립된 스페인 투우의 5대 혈통 중 하나다. 람보르기니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베스트셀러 모델에 어울리는 '명문가'의 이름이다.
- 우루스(Urus): 람보르기니 최초의 SUV인 우루스는 투우가 아니다. 이것은 현대 소들의 조상이자 지금은 멸종한 거대 야생 소 '오로크스(Aurochs)'를 뜻한다. SUV의 거대한 덩치와 야성을 표현하기 위해 투우보다 더 원초적인 조상을 소환한 것이다.
카운타크(Countach)라는 예외
물론 모든 차가 황소 이름은 아니다. 전설적인 모델 '카운타크(Countach)'는 이탈리아 피에몬테 지방의 사투리로, 놀라운 것을 봤을 때 내뱉는 감탄사("젠장! 엄청나군!" 정도의 뉘앙스)다. 하지만 이를 제외하면 람보르기니의 역사는 곧 투우의 역사와 같다.
투우장에서 생과 사를 오가며 관중을 전율게 했던 그 황소들은 이제 모두 흙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들의 이름은 람보르기니의 엔진 배기음 속에 부활하여, 여전히 도로 위를 맹렬하게 질주하고 있다.
페라리가 ‘길들여진 속도’라면, 람보르기니는 끝내 굴복하지 않는 황소랄까?
2025.08.16 - [시사 정보/단신] - 공개된 '람보르기니 페노메노(Lamborghini Fenomeno)'
공개된 '람보르기니 페노메노(Lamborghini Fenomeno)'
최고 속도 350km/h!! 8월 15일, 람보르기니는 신형 “페노메노(Fenomeno)”를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 개발 중인 몬터레이 카 위크(Monterey Car Week)에서 공개했다. 신형 람보르기니 페노메노는 “레베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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