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유인력의 법칙’으로 대표되는 천재 과학자 아이작 뉴턴. 그는 물리학과 수학 분야에서 인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남긴 인물로 평가된다. 그러나 뉴턴의 활동 무대는 연구실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는 영국 화폐 제도의 안정화 과정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우리가 오늘날 동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톱니 모양 테두리(밀드 에지, milled edge)’ 역시 그러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정착된 기술이다.

1. 17세기 영국의 화폐 위기와 ‘동전 깎기’ 문제
1696년, 뉴턴은 Royal Mint의 감사(Warden)로 임명되었고, 1699년에는 조폐국장(Master)에 올랐다.
당시 영국은 심각한 화폐 유통 혼란을 겪고 있었다. 주요 원인 중 하나는 ‘동전 깎기(Coin Clipping)’였다. 당시 은화는 액면가가 아닌 금속 함량 자체가 가치의 근거였기 때문에, 일부 사람들이 동전의 가장자리를 조금씩 잘라 은 부스러기를 모으는 범죄가 성행했다.
이로 인해 동전의 실제 은 함량 감소, 마모·훼손 은화 대량 유통, 상거래에서 동전 무게를 일일이 확인하는 혼란 발생이라는 문제들이 뒤따랐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696년 영국 정부는 대규모 은화 교체 정책, 이른바 ‘Great Recoinage’를 시행했다.
2. 동전 테두리 가공 기술의 정착
동전의 톱니 모양 가장자리, 즉 밀드 에지는 뉴턴이 새로 발명한 기술은 아니다.
이미 17세기 중반부터 기계식 압인 방식이 도입되었고, 일정한 톱니나 문자 각인을 넣는 기술도 존재했다. 이는 손망치 방식으로 주조한 동전보다 정밀하고 균일한 형태를 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뉴턴이 조폐국에 재직하던 시기, 이러한 기계식 주조 방식은 대규모 재주조 정책 속에서 체계적으로 확산·정착되었다.
밀드 에지의 기능은 분명했다.
테두리를 조금이라도 깎으면 톱니가 끊기거나 사라졌기에 훼손 여부를 육안으로 쉽게 식별 가능했고 이를 통해 위·변조 억제 효과를 발휘했다.
뉴턴은 조폐 행정을 강력하게 집행했고, 위조범 수사와 기소에도 적극적으로 관여했다. 그의 행정적 엄격함은 당시 화폐 신뢰 회복에 실질적인 기여를 했다.

3. 화폐 신뢰 회복과 제도 안정
대규모 재주조와 기계식 주조 체계의 정착 이후, 마모되고 훼손된 은화는 점차 교체되었고 유통 질서도 안정되기 시작했다.
동전 깎기 범죄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위조 및 변조 난이도 상승과 표준화된 주조 공정 확립, 화폐 품질 관리 강화 등의 효과로 인해 화폐에 대한 신뢰는 점진적으로 회복되었다.
뉴턴은 물리학자로서뿐 아니라, 엄격한 행정 책임자로서도 역할을 수행한 셈이다.
4. 오늘날 동전 테두리의 의미
오늘날 대부분의 동전은 금이나 은이 아닌 합금으로 제작된다. 따라서 과거와 같은 ‘금속 가치 탈취형 범죄’는 구조적으로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국가의 동전에는 여전히 톱니 모양 테두리가 남아 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 동전 위·변조 방지 보조 수단
- 동전 종류 식별 보조 기능
- 기계 인식 및 취급 안정성 확보
현대의 자동판매기나 동전 인식 장치는 직경, 무게, 전도성, 자기 특성 등을 종합적으로 활용하지만, 표준화된 외형 역시 중요한 설계 요소다.
뉴턴은 밤하늘의 행성 운동을 설명한 과학자였다. 동시에 그는 영국 화폐 제도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기여한 공직자이기도 했다.
동전의 톱니 모양 테두리는 그가 직접 발명한 장치는 아니지만, 17세기 후반 영국의 화폐 개혁 과정 속에서 제도적으로 정착되고 확산된 기술이었다.
주머니 속 동전의 가장자리를 살펴보면, 거기에는 과학적 정밀성과 행정적 통제가 결합된 근대 화폐 제도의 한 단면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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