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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독일 원정 유니폼의 녹색은 아일랜드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독일 국가대표 축구팀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색은 단연 ‘흰색과 검은색’의 조합이다. 이는 과거 프로이센 제국의 국기에서 유래한 유서 깊은 홈 유니폼 색상이기 때문.

 

그런데 독일 대표팀의 역대 원정 유니폼을 살펴보면, 국기(검정, 빨강, 노랑)에는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은 ‘녹색(Green)’이 오랫동안 전통적인 원정 컬러로 사랑받아 왔다.

 

독일은 왜 원정 유니폼으로 뜬금없이 녹색을 선택했을까? 축구 팬들 사이에서는 이와 관련해 아주 유명하고 낭만적인 썰(myth)이 하나 존재한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이 이야기는 완전히 지어낸 거짓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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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못된 신화: "아일랜드에 대한 감사의 표시이다?"

 

축구계에 널리 퍼진 이 소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범국이었던 독일은 국제 스포츠계에서 철저히 왕따를 당했다. 아무도 독일과 축구 경기를 하려 하지 않을 때, 아일랜드 국가대표팀이 가장 먼저 독일의 친선 경기 제안을 수락해 주었다. 독일은 아일랜드의 포용력에 깊은 감사를 느꼈고, 이를 기리기 위해 아일랜드의 상징색인 녹색을 자신들의 원정 유니폼 색으로 채택했다."

 

여기에 살이 더 붙은 버전으로는 "당시 물자가 부족했던 독일 대표팀에게 아일랜드가 자신들의 예비 녹색 유니폼을 빌려주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전쟁 후의 화해와 스포츠맨십을 보여주는 아주 감동적인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역사적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

 

 

□  팩트 체크: 왜 이 썰은 거짓인가?

 

이 낭만적인 이야기가 사실무근인 결정적인 이유는 '역사적 기록'이 증명한다.

 

1.독일의 전후 첫 상대는 아일랜드가 아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독(West Germany) 국가대표팀이 치른 첫 번째 국제 A매치 상대는 아일랜드가 아니라 스위스(Switzerland)였다. 서독과 스위스는 1950년 11월 22일 슈투트가르트에서 경기를 가졌고, 서독이 1-0으로 승리했다. (독일이 아일랜드와 처음 맞붙은 것은 그로부터 약 1년 뒤인 1951년 10월이었다.)

 

2.이미 녹색을 입고 있었다.

 

독일 대표팀은 아일랜드와 경기를 치르기 전부터 이미 녹색 유니폼을 대안(원정) 색상으로 염두에 두고 있었다. 따라서 아일랜드에 대한 보은의 의미로 녹색을 입기 시작했다는 것은 시기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다.

 

DFB 로고

□ 진짜 이유: DFB 로고와 '축구장'의 색깔

 

그렇다면 독일 원정 유니폼이 녹색인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해답은 매우 직관적이고 실용적인 곳에 있다.

 

바로 독일 축구 연맹(DFB, Deutscher Fußball-Bund)의 공식 엠블럼 색상이다.

 

DFB의 공식 로고를 보면 녹색 바탕에 흰색 글씨로 이루어져 있다. 독일 국가대표팀은 원정 유니폼 색상을 정할 때, 단순히 자신들이 속한 협회(DFB)의 공식 색상인 녹색을 그대로 가져다 쓴 것이다.

 

그럼 DFB는 왜 로고 색상으로 녹색을 선택했을까? 여기에는 정치적이나 역사적인 거창한 의미가 없다.

 

녹색은 바로 축구가 펼쳐지는 '잔디 구장(Green Pitch)'을 상징하고, 흰색은 그 위에 그려진 '흰색 라인(White Lines)'을 의미한다.

 

 

독일 대표팀의 상징적인 녹색 원정 유니폼은 아일랜드와의 감동적인 우정 스토리가 아니라, '푸른 잔디 위에서 공을 차는 축구 그 자체'를 형상화한 독일 축구 연맹의 로고에서 비롯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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