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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성냥보다 먼저 라이터가 발명된 아이러니

우리는 불을 붙일 때 거의 반사적으로 라이터를 집어 든다. 딸깍, 한 번이면 끝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렇게 생각한다. “원시적인 성냥이 먼저였고, 라이터는 그다음 단계겠지.”

 

그런데 역사책을 펼치면 이 상식은 가볍게 뒤집힌다. 라이터가 성냥보다 먼저 태어났다. 그것도 꽤나 위험한 모습으로.

 

 

되베라이너와 라이터(램프) / www.ait-praha.cz

 

형님부터 나왔다: 1823년의 라이터

 

“주머니 속 도구가 아니라, 식탁 위의 화학 실험”

 

세계 최초의 라이터는 우리가 아는 플라스틱 가스 라이터와는 거리가 멀다. 1823년, 독일의 화학자 요한 볼프강 되베라이너(Johann Wolfgang Döbereiner)가 만든 이 발명품은 ‘라이터’라기보다 불을 뿜는 화학 장치에 가까웠다.

 

이른바 되베라이너 램프의 작동 원리는 이렇다.

 

아연과 묽은 황산을 반응시켜 수소 가스를 만들고, 그 수소가 백금 촉매를 지나며 공기와 만나면 자동으로 불이 붙는다. 불씨를 만들기 위한 ‘행동’이 아니라, 화학 반응 그 자체가 불을 낳는 구조였다.

 

문제는 실용성이었다.

 

· 크고 무거웠고

 

· 안에는 황산이 있었으며

 

· 연료는 폭발성 수소였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이걸 왜 들고 다녔지?” 싶은 물건이다. 그럼에도 이 위험한 램프는 1820년대에만 100만 개 이상 팔렸다. 불을 손쉽게 얻고 싶은 인간의 욕망은, 안전 설명서를 앞질렀다.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있다. 대문호 괴테는 이 램프를 선물 받고 애장품처럼 아꼈다고 전해진다. 당대 최고 지성에게도, “버튼 없이 불을 켜는 장치”는 충분히 매혹적이었던 셈이다.

 

 

존 워커 / evolutionoftheprogress.com

 

아우는 우연에서 태어났다: 1826~1827년의 성냥

 

“바닥에 긁었을 뿐인데, 인류의 생활이 바뀌었다”

 

그로부터 3~4년 뒤, 훨씬 단순하고 친숙한 방식이 등장한다. 영국의 약사 존 워커(John Walker)는 폭발성 화학물질을 연구하던 중, 약품이 묻은 나무 막대기를 바닥에 문질렀다가 우연히 불이 붙는 장면을 목격한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인류 최초의 마찰 성냥이다.

 

막대기 끝에 바른 화학 혼합물이 마찰열로 발화하는, 지금 우리가 아는 성냥의 직계 조상이다.

 

아이러니는 그다음이다.

 

존 워커는 이 발명에 특허를 내지 않았다. “널리 쓰이길 바란다”는 순수한 이유였다. 그러나 곧 사업가 새뮤얼 존스가 이를 모방해 ‘루시퍼(Lucifer)’라는 이름으로 판매하며 큰돈을 번다. 냄새가 워낙 지독해 “악마의 불”이라는 별명이 붙었지만(황(Sulfur)이 타는 냄새가 지옥을 연상케 하기도 한다고), 잘 팔리면 그만이었다.

 

루시퍼(Lucifer) 성냥 / www.worthpoint.com

 

왜 우리는 늘 성냥이 먼저라고 착각할까?

 

이 역설에는 이유가 있다.

 

1. 초기 라이터는 ‘라이터답지’ 않았다

 

1823년의 라이터는 딸깍거리는 기계가 아니라, 화학 램프였다. 우리가 떠올리는 현대적 라이터(부싯돌 방식)는 1903년에야 등장한다.

 

즉, 역사적 순서는 위험한 화학 라이터 → 성냥 → 우리가 아는 라이터이다.

 

2. 성냥은 너무 ‘원시적으로’ 보인다

 

나무 막대기에 불을 붙이는 모습은, 금속 장치보다 훨씬 오래된 기술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안전하게 긁어도 불이 붙는 화학 배합을 찾는 일이, 수소 가스를 태우는 것보다 훨씬 어려웠다.

 

 

불의 역사가 말해주는 것

 

정리하면 이렇다.

 

· 라이터(1823): 황산과 수소를 품은 위험한 탁상용 장치

 

· 성냥(1827): 약사의 우연에서 태어난 간편한 나무 막대기

 

인류는 먼저 위험하지만 가능한 방법으로 불을 만들었고, 그다음에야 안전하고 단순한 방법을 찾아냈다.

 

기술의 역사는 늘 단순함에서 복잡함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때로는 복잡하고 위험한 길을 한 바퀴 돌아서야, “아, 그냥 이렇게 하면 됐네”라는 답에 도달한다.

 

딸깍 한 번으로 불이 켜지는 지금의 라이터는, 사실 200년간의 시행착오 끝에 얻은 최종 보상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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