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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오스트리아에서 온 프랑스의 자부심: 크루아상의 반전 족보

파리의 아침을 상상해보자. 노천카페에 앉아 갓 구운 크루아상을 한 입 베어 물 때 들리는 ‘바삭’ 소리, 그리고 입안 가득 퍼지는 진한 버터의 풍미. 프랑스인들에게 바게트가 ‘삶’이라면, 크루아상은 ‘낭만’이자 ‘자존심’이다.

 

그런데 만약 파리지앵에게 “그거 사실 오스트리아 빵이잖아?”라고 묻는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콧대 높은 프랑스 제빵사가 들으면 밀가루 반죽을 던질지도 모를 일이지만, 팩트는 팩트다.

 

프랑스 빵의 상징과도 같은 크루아상의 고향은 파리가 아니라 비엔나다.

 

 

키펠과 크루아상 / www.gzrecipes.com

 

할아버지는 오스트리아의 ‘키펠’

 

크루아상의 직계 조상은 오스트리아의 ‘키펠(Kipferl)’이다. 17세기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 승리를 기념해 초승달 모양으로 만들었다는 유명한 전설이 있지만, 역사학자들은 고개를 젓는다. 기록에 따르면 키펠은 이미 13세기부터 오스트리아와 중부 유럽 식탁에 오르던 유서 깊은 빵이다.

 

재밌는 건 식감이다. 오스트리아의 키펠은 지금의 크루아상처럼 겹겹이 찢어지는 페이스트리가 아니다. 브리오슈처럼 밀도가 높고 담백한 빵이거나, 때로는 단단한 쿠키에 가까웠다. 즉, 모양만 닮았지 속은 딴판이었던 셈이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아니라 ‘아우구스트 장’

 

우리는 흔히 오스트리아 공주였던 마리 앙투아네트가 프랑스로 시집오며 이 빵을 전파했다고 알고 있다. 비운의 왕비와 달콤한 빵, 꽤 그럴싸한 이야기지만 아쉽게도 이는 ‘낭만적인 썰’에 불과하다.

 

진짜 주인공은 19세기 오스트리아 포병 장교 출신 사업가, 아우구스트 장(August Zang)이다. 1838~39년경 파리 리슐리외 거리에 ‘불랑제리 비에누아즈(Boulangerie Viennoise)’라는 빵집을 연 그는 고향의 빵 ‘키펠’을 파리지앵들에게 소개했다. 이 이국적인 빵은 파리 힙스터들의 입맛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아우구스트 장(August Zang) / cemeteriesroute.eu

 

 

원조는 비엔나, 완성은 파리

 

프랑스 제빵사들의 무서운 점은 여기서 드러난다. 남의 것을 들여와도 기어이 자기 식으로 더 맛있게 바꿔버린다. 그들은 키펠의 초승달 모양은 유지하되, 반죽 사이에 버터를 넣고 접고 밀기를 반복하는 ‘라미네이션(Lamination)’ 기술을 접목했다.

 

그 결과, 담백했던 키펠은 수십 겹의 버터 층을 가진 화려한 ‘크루아상(Croissant, 초승달의 프랑스어)’으로 다시 태어났다. 1905년경 비로소 레시피가 문서화된 현대의 크루아상은, 키펠의 유전자를 물려받았지만 국적은 명백히 프랑스로 세탁(?)된 것이다.

 

 

프랑스 빵집의 솔직한 고백, ‘비에누아즈리’

 

재미있는 사실은 프랑스 빵집의 분류법이다. 그들은 식사 빵인 바게트 등은 ‘팡(Pain)’이라 부르지만, 크루아상이나 뺑오쇼콜라처럼 버터와 설탕이 듬뿍 들어간 빵들은 ‘비에누아즈리(Viennoiserie)’라고 따로 분류한다. 직역하면 ‘비엔나풍의 것들’이라는 뜻이다.

 

프랑스의 빵부심은 여기서 완성된다. “그래, 뿌리가 오스트리아(비엔나)인 건 인정해. 하지만 이걸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건 우리 프랑스야.”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꽃피운 빵, 크루아상. 원조 논쟁이 무색하게도 오늘날 전 세계인은 이 ‘혼혈 빵’의 매력에 푹 빠져 있다. 혹시 오스트리아에 갈 일이 있다면 원조 ‘키펠’을 먹어보자. 그리고 파리에서 ‘크루아상’을 먹으며 비교해보는 것도 좋겠다. 할아버지와 손자가 얼마나 다르게, 또 얼마나 멋지게 성장했는지 확인하는 미식의 즐거움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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