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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3m에 가까운 영장류가 있었다?

기간토피테쿠스, 상상과 과학의 경계에 선 거인

 

“키 3미터, 몸무게 300킬로그램.”

 

이 수치만 들으면 영화 속 괴수나 전설 속 거인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이는 한때 실제로 지구에 살았던 영장류, 기간토피테쿠스 블라키(Gigantopithecus blacki)를 설명할 때 오늘날 학계에서 비교적 널리 인용되는 추정치다. 다만 이 이야기는 언제나 한 문장으로 시작해야 한다. 기간토피테쿠스에 대해 우리가 확실히 아는 것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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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빨과 턱뼈로만 만난 ‘최대 영장류’

 

기간토피테쿠스는 현재까지 알려진 영장류 중 가장 거대한 종으로 평가된다. 흥미롭게도 이 거대한 존재를 알려주는 화석은 고작 아래턱뼈 4점과 약 2,000개의 치아가 전부다. 팔다리뼈나 척추, 두개골은 아직 단 한 점도 발견되지 않았다.

 

이 종이 세상에 알려진 계기도 독특하다. 1935년, 독일의 고생물학자 랄프 폰 쾨니히스발트가 홍콩의 한 약재상에서 ‘용골’이라는 이름으로 팔리던 거대한 이빨을 발견하면서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말 그대로 약방에서 발견된 거대 유인원이었던 셈이다.

 

이처럼 자료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기간토피테쿠스의 전신 복원도 전적으로 치아와 턱뼈에 근거한 간접 추정일 수밖에 없다. 고인류학자들이 “턱뼈와 이빨만으로 거인을 단정적으로 복원하는 데는 항상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이유다.

 

 

기간토피테쿠스 하악 어금니 / onlinelibrary.wiley.com

 

정말 키가 3m였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연구들은 일정한 범위의 그림을 제시한다. 치아 크기와 하악골의 구조를 현생 유인원과 비교한 결과,
키 약 3m, 체중 200~300kg이라는 수치는 “과도하지 않은 합리적 추정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는 현생 고릴라보다도 큰, 멸종·현존을 통틀어 최대 규모의 영장류라는 의미다.

 

다만 “고릴라의 2~3배” 같은 표현은 과장일 가능성이 크다. 영장류마다 치아 크기와 몸집의 상관관계가 동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3m 거인’이라는 이미지는 현재로서는 가장 유력한 그림이지만, 확정된 사실이라기보다는 열린 수치에 가깝다.

 

 

어디에서, 언제까지 살았나

 

화석이 확실히 확인된 지역은 중국 남부의 석회암 동굴 지대다. 양쯔강 이남 여러 동굴에서 기간토피테쿠스의 치아가 발견되었다. 베트남 북부와 태국 북부에서도 유사한 치아가 보고되었지만, 이것이 동일 종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논쟁이 있다. 그래서 분포 범위는 보통 “중국 남부는 확실, 인도차이나 반도는 가능성”으로 정리된다.

 

존속 시기는 약 200만 년 전부터 30만 년 전 전후까지로 본다. 특히 최근 연구들은 약 30만~20만 년 전 사이에 멸종했을 가능성을 높게 본다. 이는 동남아시아에 진출한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와 상당 기간을 공유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대나무만 먹던 ‘판다형 유인원’이었을까?

 

한때 기간토피테쿠스는 ‘대나무를 씹어 먹던 거대 판다형 유인원’으로 묘사되곤 했다. 거대한 어금니와 강한 턱이 이런 상상을 부추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신 안정동위원소 분석 결과는 이 그림을 수정한다.

 

이들은 숲 속의 C3 식물—열매, 잎, 줄기, 뿌리 등—을 폭넓게 먹는 일반주의적 초식성에 가까웠다. 특정 식물(예: 대나무)에만 지나치게 의존한 존재는 아니었던 셈이다. 즉, “턱이 크다 = 대나무 전문”이라는 단순한 연결은 과학적으로 조심해야 할 해석이다.

 

탄소 동위원소는 중국 남부 초기 플라이스토세 시기 기간토피테쿠스의 C3 생물량 식단 섭취를 보여줍니다 / phys.org

 

 

왜 사라졌을까: 거인의 한계

 

현재 가장 강하게 지지받는 멸종 원인은 기후와 환경 변화다. 플라이스토세 후기로 접어들면서 기후의 계절성이 강해지고, 울창한 숲은 점차 성긴 숲과 초원 패치로 바뀌었다. 숲에 강하게 의존하던 기간토피테쿠스에게 이는 치명적이었다.

 

덩치는 컸지만, 환경 변화에 맞춰 식단과 생활 방식을 유연하게 바꾸는 데는 한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반면 가까운 친척 계열인 오랑우탄은 몸집을 줄이고 적응 전략을 바꾸며 살아남았다. 이 때문에 학자들은 기간토피테쿠스를 “덩치가 오히려 약점이 된 사례”로 설명하기도 한다.

 

호모 에렉투스와의 경쟁이나 인간 활동의 영향도 가설로 제기되지만, 이는 아직 보조적 가능성 수준에 머물러 있다.

 

 

상상과 과학 사이에 남은 거인

 

기간토피테쿠스는 영화 속 ‘킹콩’이나 전설 속 거인으로 자주 소비된다. 하지만 실제 모습은 그보다 훨씬 조심스럽게 다뤄야 할 대상이다. 우리가 가진 것은 여전히 턱뼈와 이빨, 그리고 그로부터 이어진 과학적 추론뿐이다.

 

그래서 이 거대 영장류를 설명할 때 가장 정확한 문장은 아마 이것일 것이다.

“3m에 가까운 영장류가 있었을 가능성은 높다. 그러나 그 거인은 아직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과학은 상상을 허용하지만, 동시에 그 경계선을 분명히 긋는다. 기간토피테쿠스는 그 경계 위에 서 있는, 가장 흥미로운 존재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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