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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베토벤으로부터 시작된 클래식계의 저주

클래식 음악계에는 오랜 시간 동안 전해 내려오는 섬뜩하면서도 흥미로운 미신이 하나 있다. 바로 '9번 교향곡의 저주(The Curse of the Ninth Symphony)'.

 

이는 역사적으로 위대한 작곡가들이 유독 9번째 교향곡을 완성하거나 시도한 후 세상을 떠났다는 일련의 사건들에서 비롯된 믿음이다. 마치 9번 교향곡이라는 문턱을 넘으면 더 이상 창작의 에너지가 고갈되어 삶의 마지막에 이른다는 듯 말이다.

 

 

 

모든 것의 시작: 위대한 베토벤

 

이 저주의 시작점은 다름 아닌 음악의 성인, 루트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이다. 1824년, 그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교향곡 중 하나로 꼽히는 《합창 교향곡》(Symphony No.9 "Choral")을 완성한다. 웅장한 선율과 환희에 찬 합창이 어우러진 이 곡은 베토벤 음악 세계의 정점이자 인류가 이룬 예술적 성취의 상징으로 추앙받는다.

 

하지만 이 불후의 명작을 완성한 지 불과 3년 후, 베토벤은 세상을 떠난다. 그리고 그의 죽음은 '9번 교향곡의 저주'라는 전설의 출발점이 된다.

 

 

 

두려움이 현실이 되다: 저주의 희생양들

 

베토벤 이후, 이 저주는 마치 유행병처럼 천재 작곡가들을 덮치기 시작한다.

 

 

프란츠 슈베르트 (Franz Schubert, 1797–1828): 베토벤의 뒤를 이은 또 다른 천재, 슈베르트는 교향곡 9번인 《그레이트》(The Great)를 완성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난다. 그의 미완성 교향곡 '미완성'을 포함해 번호 논란이 있긴 했지만, 어쨌든 '9번' 이후 사망한 두 번째 사례는 사람들의 뇌리에 저주의 존재를 각인시켰다.

 

 

안톤 브루크너 (Anton Bruckner, 1824–1896): 그는 자신의 9번 교향곡을 '하느님께 바친 교향곡'이라 명명하며 혼신을 다했지만, 세 악장만 완성한 채 마지막 악장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완성도 하기 전에 꺾인 그의 죽음은 저주에 더욱 신비로운 기운을 불어넣었다.

 

 

구스타프 말러 (Gustav Mahler, 1860–1911): 9번 교향곡의 저주를 가장 두려워했던 인물이 바로 말러다. 그는 자신의 8번 교향곡("천인의 교향곡") 이후, 다음 작품을 교향곡 대신 《대지의 노래》(Das Lied von der Erde)라 이름 붙여 '9번'이라는 숫자를 의식적으로 피하려 했다.

 

그러나 운명은 그를 비켜가지 않았다. 그는 결국 진짜 교향곡 제9번을 작곡했고, 심지어 10번 교향곡을 쓰던 중 세상을 떠나고 만다. 말러의 사례는 이 전설을 결정적인 근거로 만드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남았다.

 

 

이 외에도 아르놀트 쇤베르크는 이 저주를 믿어 스스로 9번 교향곡을 쓰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안톤 베베른, 쿠르트 아터버그 등 여러 후기 낭만파 및 20세기 작곡가들이 9번을 완성한 후 사망하거나, 의식적으로 이 숫자를 피하려 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저주를 깨다: 현대 작곡가들의 도전

 

물론 20세기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이 미신은 점차 흥미로운 '상징적 전설'로 남게 된다.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Dmitri Shostakovich)는 무려 15개의 교향곡을 작곡하며 저주를 보기 좋게 극복했고, 알프레드 슈니트케, 한스 베르너 헨체 같은 현대 작곡가들도 9번이라는 문턱을 훌쩍 뛰어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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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신, 혹은 심리적 압박?

 

'9번 교향곡의 저주'는 과연 실제적인 근거가 있을까? 많은 음악학자들은 이를 숫자 자체의 상징성과 위대한 작곡가들의 사망 시점이 우연히 겹친 결과라고 평가한다. 특히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이 워낙 위대함의 표상이 되었기 때문에, 그 이후의 작곡가들이 9번 이상의 작품에 도전하는 데 심리적 부담감을 크게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모차르트나 하이든은 9번을 훨씬 초과하는 교향곡을 썼지만, 이 저주는 유독 '낭만주의 이후' 작곡가들에게만 적용된다는 점도 흥미롭다.)

 

어쩌면 9번 교향곡의 저주는, 음악가들이 자신의 창작의 한계를 뛰어넘으려 할 때 느끼는 인간적인 고뇌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투영된, 클래식 음악계의 가장 아름답고도 슬픈 전설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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