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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 사회

교리보다 안녕, 천국보다 현세

천주교, 개신교, 불교라는 세 개의 거대 종교가 심각한 충돌 없이 공존하며, 그 아래로 수많은 군소 종교들이 명맥을 잇는 나라.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대한민국의 독특한 종교 지형이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 그 해답의 실마리는, 당신이 지적했듯, 한국인의 의식 깊숙이 자리 잡은 '복신앙(祈福信仰)', 즉 현세의 복(福)을 기원하는 실용적인 신앙관에서 찾을 수 있다.

 

 

명동성당 / http://www.mdsd.or.kr

 

기복신앙 : 한국인의 종교적 DNA

 

다수의 한국인에게 종교는 절대적 교리나 내세의 구원보다는, 지금 내가 발 딛고 사는 현세(現世)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더 큰 목적을 둔다. '가족의 건강, 자녀의 입시 성공, 사업 번창, 무병장수'. 이것이 종교를 통해 얻고 싶은 가장 절실하고 현실적인 '복'이다.

 

이러한 성향은 외래 종교가 들어오기 훨씬 이전부터 한반도를 지배해 온 샤머니즘, 즉 무속신앙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자연재해와 질병, 굶주림 속에서 우리 조상들에게 신앙이란, 초월적 존재에게 현실의 고난을 해결해달라고 비는 간절한 '기원' 행위 그 자체였다.

 

이후 불교나 기독교 같은 거대 종교가 들어왔을 때, 이들은 기존의 기복적 토양을 대체하기보다 그 위에 융합되는 '종교적 혼합주의(Syncretism)'의 양상을 띠게 되었다. 불교 사찰에서 볼 수 있는 칠성각(七星閣, 도교와 결합된)이나 산신각(山神閣, 토착신앙과 결합된)이 그 대표적인 증거다.

 

결국 많은 한국인들에게 종교란, 교리를 깊이 탐구하고 따르는 엄격한 '신념 체계'라기보다, 팍팍한 현실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위안과 희망, 그리고 실질적인 도움을 얻는 '삶의 방식(a way of life)'에 더 가깝게 작동한다.

 

 

 

사랑의 교회

 

'기복'이 만든 빛과 그림자

 

이러한 실용적인 신앙관은 한국 사회에 독특한 명암을 만들어냈다.

 

'교리의 절대성'보다 '개인의 안녕'이 우선되다 보니, 타인의 종교에 대한 태도는 자연스럽게 관용적으로 변한다. "어느 신을 믿든, 당신과 당신 가족이 복 받으면 좋은 것"이라는 인식이 저변에 깔려있다. 이 때문에 종교적 차이가 국가를 가르는 전쟁이나 테러로 비화하는 극단적인 갈등이 거의 없다.

 

선거철만 되면 정치인들이 '국민 통합'을 명분으로 여러 종교 시설을 순회하는 모습이 대중에게 자연스럽게 용인되는 것 역시, 이러한 종교적 다원주의와 실용주의가 사회적으로 합의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로 이 지점에서 그림자도 생긴다.

 

신앙의 목표가 '현세의 복'이 될 때, 사람들은 가장 확실하고 빠르게 그 복을 약속하는 존재에게 쉽게 현혹된다. 교리나 신학적 깊이보다, 카리스마 넘치는 교주가 "나를 믿으면 병이 낫고, 부자가 되며,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속삭일 때, 그 유혹에 넘어가기 쉬운 토양이 마련되는 것이다.

 

사이비 종교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입맛에 맞게' 교리를 각색하고 변형하며, 기복신앙이라는 한국인의 욕망을 가장 효과적으로 파고든다.

 

 

 

조계사 / www.jogyesa.kr

 

드러나는 증거들 : 무당집과 교회의 역할

 

독실한 종교인들조차 무당을 찾거나 사주를 보는 현상은 기복신앙의 가장 확실한 증거다. 이는 종교를 절대적이고 유일한 진리로 받아들이기보다는, 현세의 불확실성을 해결하기 위한 여러 '도구' 중 하나로 여기고 있음을 보여준다.

 

신에게는 마음의 안식을, 무당에게는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조언을 구하는, 지극히 실용적인 태도다. 2000년대 초반 20만 명 정도이던 무속인이 20년 만에 네 배 가까이 증가한 것을 상기해보자.

 

대형 교회가 성장하는 이면에도 기복신앙적 코드가 숨어있다.

 

신앙 공동체를 넘어, 폭넓은 인맥 형성, 결혼 상대 물색, 사업 파트너 탐색, 자녀 교육 정보 교류 등 매우 현실적이고 세속적인 '복'을 제공하는 강력한 '커뮤니티'로서 기능하기 때문이다. 이는 교회가 신앙뿐만 아니라, 교인들의 현세적인 필요까지 충족시켜주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인은 기복신앙에 근거해 종교를 선택하고 접근한다. 이 독특한 신앙 DNA는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종교적 평화와 공존을 가능하게 한 원동력이었지만, 동시에 맹목적인 믿음과 비합리적인 사건들이 발생하는 취약점이 되기도 했다. 그 실용적인 태도가 오늘날 한국 종교 지형의 독특한 명암을 꾸준히 재생산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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