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는 저마다 고유한 영혼과 역사가 담겨 있다. 그리고 그 도시의 정체성을 가장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별명'이다.
때로는 역사적 사건에서, 때로는 도시의 풍경이나 사람들의 기질에서 비롯된 이 별명들은, 단순한 애칭을 넘어 도시의 캐릭터를 형성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번에는 전 세계 유명 도시들의 흥미로운 별명과 그 유래를 소개해볼까 한다.

1. 뉴욕 (New York, USA) - 빅 애플 (The Big Apple)
뉴욕을 상징하는 가장 유명한 별명이다.
1920년대, 경마 전문기자였던 존 J. 피츠 제럴드(John J. Fitz Gerald)가 뉴욕의 경마 대회를 '최고의 보상이 기다리는 가장 큰 사과(Big Apple)'라고 칭한 것에서 유래했다. 당시 뉴욕은 성공을 꿈꾸는 모든 이들에게 '가장 큰 기회의 장'이었고, '빅 애플'은 이러한 의미를 완벽하게 담아냈다.
이후 재즈 뮤지션들 사이에서도 '최고의 공연 무대'라는 의미로 퍼져나갔고, 1970년대 뉴욕 관광청의 공식 캠페인을 통해 도시 전체의 상징으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2. 파리 (Paris, France) - 빛의 도시 (La Ville Lumière)
파리의 별명 '빛의 도시'는 두 가지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첫째는 물리적인 빛이다. 파리는 19세기 유럽에서 가장 먼저 대규모 가스 가로등을 설치하여 밤거리를 밝힌 도시 중 하나였다.
둘째는 정신적인 빛이다. 18세기 계몽주의 사상의 중심지로서, 파리가 유럽의 지성과 문화를 이끄는 '계몽의 빛'을 밝혔다는 의미다. 예술과 철학, 낭만이 흐르는 도시의 이미지를 완벽하게 표현하는 별명이라 할 만하다.

3. 시카고 (Chicago, USA) - 바람의 도시 (The Windy City)
많은 사람들이 미시간 호수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유래는 조금 더 풍자적이다.
1800년대 후반, 시카고는 1893년 세계박람회 유치를 두고 뉴욕과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이때 뉴욕 언론이 시카고의 정치인과 시민들을 "허풍이 심하고 말이 많다(full of hot air)"고 조롱하며 '바람 부는 도시'라고 칭한 것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물론 실제로 바람이 강한 기후적 특성도 무시할 수는 없다.

4. 로마 (Rome, Italy) - 영원의 도시 (The Eternal City)
고대 로마 시대부터 수천 년간 사용되어 온, 가장 장엄한 별명이다.
기원전 1세기 로마의 시인 티불루스(Tibullus)가 자신의 시에서 로마를 'Urbs Aeterna(영원의 도시)'라고 칭한 것이 시초로 알려져 있다. 이는 로마 제국이 결코 멸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고대 로마인들의 강력한 믿음과 자부심도 담겨 있다.
제국은 사라졌지만, 그 위대한 역사와 유산은 영원히 살아 숨 쉰다는 의미에서 오늘날까지도 이보다 더 로마를 잘 표현하는 별명은 없을듯 싶다.

5. 프라하 (Prague, Czech Republic) - 백 탑의 도시 (City of a Hundred Spires)
프라하 구시가지의 붉은 지붕들 사이로 솟아 있는 수많은 첨탑들이 만들어내는 동화 같은 풍경에서 유래한 별명이다.
19세기 수학자이자 철학자였던 베르나르트 볼차노(Bernard Bolzano)가 도시의 탑들을 세어보고 '100개의 탑을 가진 도시'라고 묘사한 데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오늘날 실제 탑의 개수는 500개가 훌쩍 넘지만, '100'이라는 숫자가 주는 운치 덕분에 여전히 이 별명이 가장 널리 사랑받고 있다.

6. 에든버러 (Edinburgh, Scotland) - 북쪽의 아테네 (Athens of the North)
스코틀랜드의 수도 에든버러는 두 개의 상반된 별명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과거 석탄 연기로 자욱했던 도시의 모습을 친근하게 부르는 '올드 리키(Auld Reekie, 오래된 연기)'이고, 다른 하나는 18세기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의 중심지로서, 철학과 과학, 예술이 고대 아테네처럼 융성했던 것을 기리는 '북쪽의 아테네'다.
도시의 고전주의 건축 양식 역시 아테네를 연상시켜 이 별명을 더욱 굳건하게 만들었다.
7. 베네치아 (Venice, Italy) - 바다의 신부 (La Serenissima / Bride of the Sea)
'물의 도시'라는 별명 외에도 베네치아는 여러 아름다운 별명을 가지고 있다.
그중 가장 특별한 것은 '바다의 신부'다. 이는 과거 베네치아 공화국의 총독(도제)이 매년 예수 승천일에 배를 타고 나가 아드리아해에 반지를 던지며 "우리는 그대, 바다와 결혼한다"고 외쳤던 '바다와의 결혼식' 의식에서 유래했다.
또한, '가장 고요한 공화국'이라는 뜻의 '라 세레니시마(La Serenissima)'라는 별명은, 치열한 정쟁이 가득했던 다른 이탈리아 도시국가들과 달리 오랜 기간 평화와 번영을 누렸던 베네치아의 역사적 위상을 보여준다.
'국제 & 사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미국 내 한국 김밥 인기의 실체 (2) | 2025.08.23 |
|---|---|
| 교리보다 안녕, 천국보다 현세 (0) | 2025.08.22 |
| 조이(Zoey)가 버뱅크 출신인 이유 (6) | 2025.08.18 |
| 서울에 바나나가 열리는 시대 (5) | 2025.08.17 |
| 1200만 펫팸족 시대의 그림자, '펫로스 증후군'에 대응할 때 (3) | 2025.08.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