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1년 4월 7일 정오 무렵, 세부(Cebu)항 앞바다에 세 척의 군함이 나타나 일제히 대포를 쏘아댔다. 세부항은 필리핀의 세부섬에 있는, 동남아시아 상인들에게는 잘 알려진 무역항이었다. 이윽고 한 척의 작은 배가 해안으로 다가와 상륙하더니 세부의 왕 라자 우마본에게 교만하게 말을 건넸고, 거무스름하고 몸집이 작은 말레이인이 통역을 했다. "우리는 마젤란 제독이 통솔하는 스페인 함대다. 향료의 산지 몰루카제도를 향해 태평양을 횡단해왔다. 우리 제독은 신선한 식료품을 사고 싶어한다. 물론 사례는 하겠다."
당시 이 주변의 왕들은 교역상의 필요 때문에 다양한 언어를 알고 있었으므로 말레이인의 말은 즉석에서 이해되었다. 세부의 왕은 "마젤란 함대의 방문은 환영하지만 항구에 정박하는 배는 모두 세금을 내도록 되어 있는데 그래도 좋은가?"하고 물었다. 타이와 중국, 인도네시아의 배도 자주 이 항구를 이용했고 어떤 배든 왕에게 세금을 내고 거래를 했던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은 스페인인은 위대한 스페인인들은 어느 국왕에게도 세금을 바칠 수 없다며 전쟁과 평화 중 어느 한쪽을 택하라고 했다. 세부 왕은 이미 유럽인이 인도와 말라카를 정복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므로 어쩔 수 없이 우호를 약속했다. 4월 14일 세부 왕은 처음으로 마젤란과 회견했다. 마젤란은 광장에 십자가를 세우고 세부섬 주민 모두 기독교로 개종하라고 강요했다.
그러나 인근 섬 마크탄의 왕 라프라프는 기독교로 개종하는 것은 물론 마젤란에게 복종하는 것도 거부했다. 노한 마젤란은 60명의 무장병을 데리고 마크탄섬으로 향했다. 스페인군은 날이 밝음과 동시에 공격을 개시했지만 썰물 때문에 대포를 실은 보트가 섬 가까이 접근할 수 없었기 때문에 부득이 배에서 내려 무릎까지 올라오는 물을 헤치며 해안까지 달려야 했다. 라프라프 왕은 1,500명의 병사를 세 부대로 나누어 기다리게 했다.
스페인 병사들은 맹렬히 화승총을 쏘았지만 너무 멀어서 효과가 없었다. 라프라프 군대는 스페인 병사들의 다리에 보호구가 갖춰지지 않은 것을 알아차리고 다리를 노려 활과 창, 돌을 열심히 던졌다. 스페인 군대는 쓰러지기 시작했다. 마젤란도 왼쪽 다리가 꺾여 쓰러진 상태에서 창과 검에 찔려 살해되었다. 이 싸움으로 스페인병은 8명이 전사하고 다수의 부상자를 냈다. 마젤란의 시테는 끝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이 소식을 들은 세부 왕도 반격으로 돌아서 스페인군을 습격했으므로 스페인 함대는 닻을 올리고 세부섬을 탈출했다.
서방이 아니라 동방의 바다에서 온 마젤란 함대의 출현은 동남아시아의 이슬람교도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스페인인들의 포교는 필리핀의 슬루제와 민다나오섬으로 미쳤다. 스페인은 국왕 펠리페 2세의 이름 따 그곳의 지명을 필리핀으로 불렀다. 이것이 필리핀이라는 명칭의 기원이다. 국왕 펠리페 2세는 자신의 이름이 붙여진 섬들에 강한 관심을 가지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식민지로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1565년 2월 레가시피를 지휘관으로 한 강력한 스페인 함대가 다시 와 세부섬을 무력으로 점령했다. 잇따라 주변 섬들의 왕과 동맹을 맺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며 정복지를 확대해나갔다. 1570년과 71년 두 번에 걸쳐 마닐라의 왕 솔리만은 레가스피가 보낸 분견대와 싸우다 전사했다. 레가스피는 마닐라로 본거지를 옮겼다. 필리핀 전역에 대한 정복이 진행됨과 더불어 기독교 포교로 활발해졌지만 남부는 이슬람교가 번성하였으므로 스페인인은 이슬람교도를 모로인(스페인 말로 무어인을 뜻함)이라고 불렀다.
현재 세부섬의 역사박물관 광장에는 19세기에 스페인이 세운 기독교 기념비가 있는데, 훗날 미국이 필리핀을 점령했을 때 이 기념비 옆에 '페르디난드 마젤란의 죽음'이라는 설명이 적힌 비석을 세웠다.
"페르난디드 마젤란은 1521년 4월 27일 마크탄섬의 왕 라프라프의 병사들과 전투중 부상을 입고 이 지점에서 사망했다. 마젤란 함대의 한 척인 빅토리아호는 요한 세바스찬 엘카노의 지휘 아래 1521년 5월 1일 세부섬을 떠나 1522년 9월 6일에 산 루카르항에 도착함으로써 최초로 세계일주 항해를 완수하였다. 1941년."
10년 후인 1951년 이미 독립을 성취한 필리핀공화국은 그 옆에 새로운 비석 '라프라프'를 세웠다.
"1521년 4월 27일 라프라프와 그 부하들은 스페인의 침략자들을 격퇴하고 지휘관인 페르디난드 마젤란을 이 지점에서 죽였다. 이로써 라프라프는 유럽 침략자들을 쫓아낸 최초의 필리핀인이 되었다."
필리핀에서 라프라프는 국민적 영웅으로서 동상·동전에 새겨진 인물로도 친숙하다. 마크탄섬에는 기타의 명산지 라프라프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