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임금체계의 변천과정은 경제개발이 본격화된 1960년대 초반 이후에서 1987년 민주화 운동까지(1기), 1987년부터 1998년 외환위기까지(2기), 외환위기 이후부터 현재까지(3기) 등 크게 3개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1기에는 1960년대 초반 이후 연공급적 성격의 임금체계가 본격적으로 확산되었다. 하지만 이 시기의 임금체계는 현재에 비해서는 비교적 연공성이 약했다고 볼 수 있다. 이 시기의 연공급적 성격의 임금체계는 생산직 근로자보다는 주로 사무관리직 근로자에서 나타나고 있다. 1985년 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이 산하 노조를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106개 기업 중 정기승급제가 없는 곳이 39.6%, 호봉승급제가 있지만 승급시기가 일정하지 않거나 차별승급이 이뤄지는 곳이 29.2%, 정기승급이 이뤄지는 곳이 31.1%였다.
제조업 종업원 100인 이상 사업체의 단위 노조들을 대상으로 시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1987년 이전부터 생산직 근로자에게 호봉승급제가 시행된 기업은 38.3%에 머물렀다. 또한 승급제도가 시행되더라도 승급의 상한선이 설정되어 있어 최고 호봉에 도달하게 되면 더 이상 승급이 없는 기업이 많았다.
한편, 196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말까지 미국이 우리나라 국영기업체에 차관을 제공하면서 직무급 도입을 제안함에 따라 직무급 도입 시도가 있었다. 대표적인 기업으로는 금성사(1966), 한국전력(1967), 유공(1967), 포항제철(1971), 한국타이어(1973) 등인데, 이 시기에 도입된 직무급 도입 노력은 정착되지 못하였다.
2기에는 1987년 이후 노동조합의 요구로 생산직 근로자에게도 호봉제가 널리 적용되었고, 연공적 성격도 강화되었다. 경총과 경제단체협의회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생산직 근로자에게 순수 연공급 임금체계를 적용한 사업체의 비율은 1987년 15%에서 1990년 25.8%로 늘었다.
생산직 근로자에게 적용되는 승급상한선도 늘어나 정년까지 호봉승급이 계속되는 사업체의 비율도 증가하였다. 1991년 노조가 있는 260개 사업체를 대상으로 생산직 근로자에게 호봉승급제가 실시되는지 여부를 물은 조사에서 약 40%가 1987년 이후부터 생산직 근로자에게 호봉제도가 적용되기 시작한 것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호봉제도가 실시되고 있는 사업체의 83.6%에서는 생산직 근로자들이 정년까지 호봉승급이 계속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시기 연공급의 또 다른 중요한 변화 중의 하나는 인사평가에 의한 차등인상 관행이 대폭 축소되고 일률적인 인상이나 일률적인 승급이 일반화된 것이다. 차등승급반대를 주요한 요구사항으로 내 걸었던 1987년 대투쟁이 주된 원인이었다.
한편, 이 시기에는 직능급 도입 시도도 있었다. 한국전자와 포항제철을 필두로 금성사에도 도입되었으며, 한국전력과 같은 공기업에도 도입되었고, 두산그룹, 럭키금성 그룹을 비롯한 여러 대기업그룹이 직능급 도입을 추진했다. 하지만 승급과 임금결정에 인사평가가 개입되는 것을 원치 않는 노조의 반대로 확산되지 못하였다.
3기의 가장 큰 특징은 1997년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한 연봉제의 확산이다. 사업체노동력조사 부가 조사와 연봉제·성과배분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100인 이상 사업체 중 연봉제를 도입한 곳의 비중이 1997년 3.6%에서 2015년 74.5%로 증가했다.
하지만 이러한 연봉제의 확산이 임금체계의 연공성 완화에 미치는 영향이 적었다는 평가도 있다. 연봉제를 도입한 사업장과 그렇지 않은 사업장간 호봉급 운영비중의 차이가 크지 않아 연봉제와 호봉제가 공존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평가에 따라 임금을 차등지급하지 않고 임금구성항목만 연봉으로 통합한 형태의 연봉제인 연수형 연봉제도 조사시점을 불문하고 20% 정도에 이른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한편, 외환위기 이후에도 직무급의 도입 노력이 상당히 전개되었다. CJ(2003), 태평양(2001), 오리온(2002), 삼양사(2002), 외환은행(2002) 등 대기업과 은행을 중심으로 도입되었고, 외국인투자기업에서도 직무급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직무급의 도입은 매우 제한적으로 이루어졌고 업계 전반으로 확산되었다고는 평가하기 어렵다.
사업체노동력조사 부가조사에 따르면 100인 이상 사업체 중 호봉제를 운영하고 있는 사업체의 비중은 ’09년 72.2%에서 ’15년 65.1%로 약간 감소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여전히 지배적인 임금체계는 호봉제가 차지하고 있다. 직무급과 직능급을 운영하는 사업체의 비중도 30% 대로 나타나고 있지만 이들 사업체들 모두 엄밀한 의미의 직무급이나 직능급을 운영하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한국노동연구원에서 실시한 「2015년 임금제도 실태조사」에 따르면 직무평가와 재평가를 하는 등 엄밀한 의미의 직무급은 최대 5% 가량, 직능자격제도를 도입하고 직무조사를 실시하는 등 엄밀한 의미의 직능급은 2~3%로 추정된다고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변화과정을 거치면서 우리 기업들이 가진 임금의 연공성은 지속적으로 강화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 분석 결과, 1년 미만 근속자 대비 30년 이상 근속자의 임금수준을 의미하는 임금의 연공성은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2010년도 임금의 연공성이 3.43인데, 2014년에는 3.72까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우리나라 임금의 연공성은 외국에 비해서도 월등히 높은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임금 및 생산성 국제비교 연구」(2015년,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임금의 연공성은 국제적으로 가장 높은 수준이며, EU 15개국 평균인 1.69나 일본의 2.26에 비해, 우리나라는 3.29로 나타났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의 연공성이 높게 나타나는 이유는 근속년수가 증가할수록 숙련도가 증가하고 상위 직무를 수행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과 더불어 근속년수에 따라 임금이 자동적으로 오르는 연공급 임금체계가 주된 원인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경제개발 초기에 형성된 호봉제가 저성장, 고령화, 글로벌 경쟁 심화 등 환경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다. 연공성에 기초한 임금체계는 경제개발 초기, 고성장시기에는 근로자의 장기근속을 유도하여 숙련을 쌓게 하는 효과를 발휘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환경이 변화한 오늘 날에는 생산성과 임금을 괴리시킨데 따른 부작용이 훨씬 더 커졌다는 평가가 많다. 호봉제 중심의 임금체계의 연공성이 개선되지 않는 한 기업은 경쟁력이 떨어지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임금격차는 확대되며, 비정규직화·하도급화 등 고용구조는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임금체계 개편을 위한 가이드, 고용노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