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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정보/역사

조선왕릉 석물 ‘진한 한국미’ 우리나라 미술사학의 선구자 고유섭 선생은 한국미술의 본질을 이르러 ‘구수한 큰 맛’, 또는 ‘무기교의 기교’ 등으로 정의한 바 있다. 중국미술처럼 우람하지도, 일본미술처럼 장식적이지도 않지만 푸근함 속에 담대함과 섬세함이 숨어 있는 우리미술의 성격을 집약한 말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조상들의 이러한 미감(美感)은 서산마애삼존불, 백자달항아리 뿐 아니라 자연친화적인 조선왕릉의 조형물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봉분 주위에 놓여 사악한 기운을 쫓는다는 석호와 석양은 너털너털 웃음 띤 얼굴에 해학미가 넘치고 차가운 돌이 아니라 살아있는 것인 양 따스함이 느껴진다. 노천의 석불(石佛)처럼 세월의 시간을 고스란히 머금은 석인상의 어깨는 이끼가 수없이 피고 자라 털옷처럼 되었고, 벌과 나비의 쉼터가 된 석물의 빈틈에.. 더보기
신독(愼獨)의 미덕 품은 기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목조건축물을 꼽는다면, 안동 봉정사 극락전,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그리고 예산 수덕사 대웅전, 이 세 건축을 예로 들 수 있는데, 이들은 모두 지금으로부터 700여 년 전에 건립되었다. 이들이 이렇게 오랫동안 살아남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이 무엇일까. 바로 기와다. 기와는 전통목조건축물의 가장 윗면에 위치하며, 목재가 썩지 않도록 비와 눈으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준다. 그런데 여름철 뜨거운 햇빛에 달궈진 기와에 소나기가 내릴 때, 또는 겨울철 맹추위로 차가와 질 때, 기와는 급격한 온도변화로 인해 깨질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전통기와는 등요(登窯)라는 전통기왓가마에서, 초불, 중불, 대불, 막음불로 이어지는 2박 3일 이상의 긴 시간 동안 약 800~1,000℃가 넘는 고열.. 더보기
유럽문화유산 복원한 천년 한지 지난 2016년 12월 15일 이탈리아 로마 국립도서병리학연구소(ICRCPAL)에서는 ‘한지의 유럽문화유산 복원 재료 공식 인증 기념행사’가 개최되었다. 이번에 인증 받은 한지는 경상남도 의령 신현세 전통한지 공방에서 제작된 전통수록한지 2종으로, ‘의령 신현세 전통한지 1’과 ‘의령 신현세 전통한지 2’ 이다. 이번 인증은 해외 국립 연구 기관에서 문화재 복원재료로서 한지의 우수성에 대한 최초의 공식 인증으로, 인증 기관인 국립도서병리학연구소는 문화재 복원분야에서 세계적인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국립기관이다. 인증 한지는 도서병리학연구소에서 성 프란체스코 친필문서 카르툴라(chartula)와 로사노 복음서(Rossano Gospels) 등 중요 문화재 5점을 복원하는데 활용되었다. 해외에 한지의 우수성을.. 더보기
아픈역사, 정읍 화호리 일본인 쌀창고 2017년 우리가 또 한 해를 맞이했듯이 이 땅의 도시와 마을의 역사도 어김없이 흐르고 있다. 수많은 도시 중 전라북도의 소도시 정읍은 근현대시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지역사의 중심지다. 조선말기 최익현, 임병찬 등 일제에 항거했던 의병장들의 주무대이자, 광복 후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주장한 이승만 박사의 ‘정읍발언’(1946.6.3)에 이르기까지 이 작은 도시가 역사적으로 부상한 시기는 여러 번 있었다. 그러나 이곳의 뼈아픈 기억은 부안과 김제로 이어지는 넓은 농경지로 인해 식민지 수탈의 중심지였고 여전히 그 현장이 남아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신태인읍의 화호리는 마을 곳곳에 일제시기 시설물과 현거주민들의 건물이 혼재되어 독특한 경관을 이루고 있다. 당시 지어진 건물은 일본인 가옥이나 별장, 창고, 사무실.. 더보기
신라인과 석빙고 중세시대 예루살렘 근처 사막에서 포로로 잡힌 십자군 장군이 얼음 물잔을 들이키는 장면이 ‘킹덤오브헤븐’이란 영화에 등장한다. 당시 얼음을 어디서 가져오고 어떻게 보관했는지 궁금증이 더해진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지증왕때인 505년에 얼음을 저장하게 한 기록이 등장하고, 빙고전(氷庫典)이란 관아가 있었다고 한다. 조선시대때 한양에서는 제향·불공 등에 사용하는 얼음은 동빙고, 왕실용·손님접대·관리지급용은 서빙고에서, 지방 군현의 경우 하천변에 빙고를 만들어 운영했다고 한다. 18세기에 축조되어 전래되는 경주, 안동, 창녕, 청도, 현풍, 영산석빙고는 모두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간간히 발굴되는 삼국시대 빙고는 하천변에 흙 구덩이를 넓게 파고 한쪽을 약간 낮게 만든 후 지하식의 긴 배수로를 연결하여 온기가 들.. 더보기
문화재 보존 인간 넘을 수 없는 AI 우리나라는 21세기가 시작되면서 전 세계에서 보기드물게 빠른 정보화 기술(IT)의 중심 국가로 자리잡았으며, 줄기세포와 배아복제라는 단어를 전 국민이 알 정도로 생명공학 기술(BT)에도 익숙한 나라가 되었다. 올해 ‘알파고(AlphaGo)의 등장으로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에 대해서도 국민적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여기서 필자는 인공지능 기술의 발달에 문화재 보존과학(Conservation Science)을 접목시켜보고자 한다. 보존과학은 문화재의 보존을 위해서 과학과 기술을 활용하는 분야인데 우리나라에는 1970년대에 국립문화재연구소에 보존과학연구실이 생기면서 시작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보존과학은 다양한 재질로 이루어진 문화재를 훼손되지 않게 보존하는 것이 목적인데.. 더보기
유교건축, 불교건축의 만남 근정전 대부분의 종교는 각 종교의 교리와 원칙에 부합하는 건축 형태를 갖는데, 건축물의 배치나 조각, 문양, 건물 내 제단의 배치 등에 그 특징이 잘 나타난다. 유교는 종묘나 서원에서 볼 수 있듯이, 중심 공간이 좌우 대칭을 이루며, 세부 장식은 매우 절제되어 있다. 불교는 불상을 모시는 주 불전(佛殿)의 장식이 화려하며, 각 건축 부재에는 불교를 상징하는 다양한 문양으로 구성된 단청이 베풀어진다. 그런데 가끔 두 개의 종교가 하나의 건축물에 구현되는 경우가 있다.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사례가 바로 경복궁 근정전이다. 근정전은 조선의 법궁(法宮)으로 건립된 경복궁의 중심 건축으로, 유교 원칙에 따라 좌우 대칭과 중심축선을 강조한 대표적인 유교 건축이다. 그런데 이 근정전의 현판 테두리를 자세히 보면 불교에.. 더보기
1000원 지폐 속 퇴계의 이상향 조선시대 서원(書院)은 학문의 연구와 선현에 대한 제향을 위하여 지방 선비들이 설립한 사립 교육기관으로, 장수(藏修)와 유학(遊學)을 중시하였다. 특히 서원건축은 자연과 인간이 하나가 되는 천인합일(天人合一)사상에 바탕을 두고 지어졌으며, 서원의 제도적 정착과 건축적 전형(典型)의 완성에는 조선 중기 유학자인 퇴계 이황(退溪 李滉, 1501~1570)의 역할이 컸다. 그런 퇴계가 수 십년의 고민 끝에 자신이 세상에서 물러나 조용히 살 곳으로 선택한 곳이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토계(土溪)리이며, 퇴계가 직접 건축에 참여한 건물이 도산서당이다. 건물은 동서방향으로 세 칸을 지었는데, 길이 7.4m, 폭 2.4m로 일반버스보다 작다. 동쪽 한 칸은 사방이 트인 마루이고, 가운데 한 칸은 온돌방, 서쪽.. 더보기
세계최초 캠핑카 사륜정(四輪亭) 2014년 기준 국내캠핑시장의 규모는 약 6,000억원에 달하고 캠핑족은 300만명 수준에 이르렀다. 캠핑은 주로 복잡한 도심을 벗어나 자연경관이 빼어난 곳을 찾아 잠시 머물며 여가를 즐기는 여가생활의 일부가 된 것이다. 이제는 도로를 질주하는 캠핑카를 만나는 것도 흔한 일이다. 캠핑카의 기원은 15세기 체코의 보헤미안 지방에서 당시 인도에서 넘어온 집시들이 마차위에 집을 얹은 형태가 시초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보다 300년이나 앞선 캠핑카가 우리나라에 존재했음을 알려주는 기록이 있다. 바로 고려시대 문인 이규보의 《동국이상국문집 권23》에 실려 있는 《사륜정기四輪亭記》가 그것이다. 문헌에 의하면 사륜정(四輪亭)은 이동식 정자로 바퀴를 넷으로 하고 정자를 그 위에 지었는데 정자의 사방이 6척이고 들보.. 더보기
목조문화재의 천적 흰개미 여름이 끝났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덥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굳이 전문가들의 입을 빌리지 않아도 이런 날씨 현상이 기후 변화 또는 지구 온난화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문화재 중에서 목조문화재는 기상 변화에 가장 민감해서 변질되거나 손상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목조문화재의 천적으로 알려져 있는 곤충이 흰개미인데, 일반적으로 자연생태계에서는 나무를 분해하면서 환경을 정비하는 익충(益蟲)으로 여겨지지만 흰개미가 목조문화재에 접근을 해서 갉아먹게 되면 문화재 관리 입장에서는 해충(害蟲)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는 매년 국가지정 목조문화재를 대상으로 제주도부터 강원도까지 전국적으로 흰개미 피해 실태를 조사하고 있다. 조사현장에서 목조문화재 관리자분들의 다양한 질문을 받게..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