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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 사회

NBA와 힙합의 선명한 상관관계

1970년대까지만 해도 챔피언 결정전이 녹화 중계될 정도로 위기를 겪던 NBA가 오늘날 전 세계를 호령하는 거대한 스포츠 제국이 된 데에는 몇 가지 굵직한 변곡점이 있었다. 80년대 매직 존슨과 래리 버드라는 세기의 라이벌이 등장해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고, 뒤이어 마이클 조던이라는 전대미문의 슈퍼스타가 코트를 지배하며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여기에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출전한 '원조 드림팀(Dream Team)'은 압도적인 경기력을 뽐내며 NBA의 위상을 미국을 넘어 전 세계로 확장시켰다.

 

하지만 단순히 훌륭한 선수들과 국제대회의 성적만으로 지금의 역동적이고 쿨(Cool)한 NBA의 이미지가 완성된 것은 아니다. 농구를 스포츠 이상의 '문화'로 격상시키며 폭발적인 시너지를 낸 색다른 엔진이 있었으니, 바로 '힙합(Hip-Hop)'이다.

 

 

NBA는 거의 50년 동안  힙합 비트에  맞춰 경기해왔다 / projects.apnews.com

 

태생적 공통분모: 길거리와 흑인 문화

 

농구와 힙합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뿌리를 공유한다. 두 문화 모두 뉴욕, 시카고, 필라델피아 등 미국 도심의 빈민가(Inner-city) 길거리에서 싹을 틔웠다. 흑인 커뮤니티의 동네 농구장(블랙탑)에서는 항상 붐박스에서 랩 음악이 흘러나왔고, 농구 코트의 리듬과 힙합의 비트는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었다. 가난한 흑인 소년들에게 농구공을 튀기거나 마이크를 쥐는 것은 지독한 현실을 벗어나 성공으로 향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두 가지 '아메리칸드림'이었다. 코트 위의 선수들과 무대 위의 래퍼들은 서로의 삶과 정서를 가장 잘 이해하는 동반자이자, 같은 문화를 향유하는 형제였던 것이다.

 

 

컬처 크로스오버: 코트 위로 올라온 힙합

 

1984년 래퍼 커티스 블로우(Kurtis Blow)가 부른 명곡 'Basketball'이 농구와 힙합의 만남을 알린 찬가였다면, 이 결합을 폭발적인 사회 현상으로 만든 주인공은 단연 앨런 아이버슨(Allen Iverson)이다. 90년대 중반 NBA에 등장한 아이버슨은 콘로우(땋은 머리) 헤어스타일, 온몸을 뒤덮은 문신, 치렁치렁한 금목걸이와 헐렁한 배기팬츠 등 힙합 스타일 그 자체를 코트 위로 끌고 들어왔다. 거친 빈민가의 반항아 같은 그가 힙합 리듬처럼 자유분방한 크로스오버 드리블로 거인들을 농락하는 모습에 젊은 세대는 열광했다.

 

아이버슨을 필두로 힙합 패션과 애티튜드가 NBA를 집어삼키자 기성세대의 반발도 있었다. 2005년 데이비드 스턴 총재는 이른바 '드레스 코드'를 도입해 선수들의 힙합 패션을 규제하려 했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농구 선수들이 하이엔드 패션과 맞춤형 스트리트 웨어를 결합하는 계기가 되었고, 역설적으로 NBA 선수들을 글로벌 패션 아이콘으로 진화하게 만든 촉매제가 되었다.

 

projects.apnews.com

 

서로를 향한 리스펙트: 가사 속의 농구, 랩을 하는 선수들

 

음악과 스포츠의 교류는 상상을 초월한다. 제이지(Jay-Z), 드레이크(Drake),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 제이콜(J. Cole) 등 수많은 힙합 거물들의 가사에는 르브론 제임스, 스테픈 커리, 마이클 조던의 이름이 위대한 영웅의 은유로 등장한다.

 

반대로 NBA 선수들 역시 힙합에 진심이다. 샤킬 오닐(Shaquille O'Neal)은 현역 시절 플래티넘 앨범을 발매한 정식 래퍼였으며, 고(故) 코비 브라이언트 역시 랩 앨범을 녹음한 바 있다. 최근의 데미언 릴라드(랩 네임 Dame D.O.L.L.A)는 수준급의 정규 앨범을 내며 평단과 팬들의 인정을 받고 있다. 여기에 마이클 조던의 에어 조던 시리즈로 대표되는 스니커즈 문화는 래퍼와 농구 선수가 함께 열광하고 유행을 선도하며 거대한 라이프스타일 산업으로 성장했다.

 

rapreviews.com

농구는 움직이는 힙합이다

 

오늘날 NBA 경기장 1열(코트사이드)은 유명 래퍼들의 지정석이 된 지 오래다. 단순한 관람을 넘어 제이지는 브루클린 네츠의 지분을 소유하며 연고지 이전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고, 드레이크는 토론토 랩터스의 글로벌 홍보대사로 활동하며 구단의 브랜드 가치를 끌어올렸다.

 

농구의 리드미컬한 움직임과 힙합의 비트는 완벽하게 교감한다. NBA가 미국 4대 스포츠를 넘어 전 세계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가장 쿨하고 트렌디한 브랜드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명확하다. 단순히 공을 림에 넣는 스포츠 규칙에 머물지 않고, '힙합'이라는 거대한 시대적 라이프스타일을 코트 위에 성공적으로 입혀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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