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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 사회

문어와 메기가 날아다니는 아이스링크

북미 아이스하키리그(NHL)의 경기를 보다 보면 갑자기 관중석에서 빙판 위로 커다란 해산물이 날아드는 기상천외한 풍경을 목격할 수 있다.

 

바로 '문어'와 '메기'를 던지는 전통이다.

 

기괴해 보일 수 있는 이 행동은 오랜 역사를 거치며 팬들의 간절한 행운 부적이 되었고, 이제는 아이스하키를 즐기는 또 하나의 고유한 문화 콘텐츠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디트로이트 레드윙스 마스코트 'Al the Octopus' / sportsmascots.fandom.com

 

문어의 8개 다리가 품은 우승의 염원

 

디트로이트 레드윙스(Detroit Red Wings)의 '문어 던지기(Octopus Toss)'는 195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동네에서 생선가게를 하던 피트와 제리 쿠시마노 형제가 스탠리 컵(우승컵) 플레이오프 경기를 보러 가며 문어 한 마리를 빙판에 던진 것이 그 시작이었다.

 

왜 하필 문어였을까?

 

당시 스탠리 컵을 들어 올리기 위해서는 총 8번의 플레이오프 승리가 필요했는데, 문어의 8개 다리가 이 8승을 완벽하게 상징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디트로이트는 그해 단 한 번의 패배도 없이 8연승으로 전승 우승을 차지했고, 이때부터 문어는 디트로이트의 절대적인 승리 부적이 되었다.

 

수십 년간 이어진 이 전통에는 흥미로운 기록들이 많다. 1995년 플레이오프 한 경기에서는 무려 36마리의 문어가 투척된 적이 있으며, 무게가 38파운드(약 17kg)에 달하는 거대한 괴물 문어가 날아들어 모두를 경악하게 만든 적도 있다.

 

 

 

 

무엇보다 이 전통을 하나의 예술적 퍼포먼스로 끌어올린 인물은 구장의 얼음 관리자(아이스 키퍼)였던 알 소보트카(Al Sobotka)다. 그는 빙판에 떨어진 문어를 맨손으로 집어 든 뒤, 머리 위로 쥐불놀이하듯 빙빙 돌리며 퇴장하는 '문어 헬리콥터' 퍼포먼스를 선보여 관중들을 열광시켰다. 디트로이트 레드윙스의 공식 마스코트 이름이 '알(Al)'인 것도 바로 그의 헌신적인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디트로이트에 맞서는 남부의 자존심, 메기

디트로이트에 문어가 있다면, 내슈빌 프레더터스(Nashville Predators)에는 '메기 던지기(Catfish Toss)'가 있다.

 

1990년대 후반 리그에 새로 합류한 신생팀 내슈빌의 팬들은 기존 강호 디트로이트의 문어에 대항할 자신들만의 새로운 상징이 필요했다. 그래서 미국 남부 테네시주를 대표하는 가장 친숙한 어종인 '메기'를 선택했다.

 

처음에는 디트로이트와의 경기 때 "우리도 남부만의 전통이 있다"는 것을 도발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던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는 내슈빌의 중요한 득점이나 승리를 축하하는 그들만의 고유한 상징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내슈빌 프레데터스 팬들은 왜 경기장에서 메기를 던지나? / puckprose.com

 

 

규정과 벌금도 막지 못하는 팬들의 열정

아무리 열광적인 문화라 하더라도 리그를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위생과 안전 문제가 골칫거리일 수밖에 없다. 빙판 위에 미끈거리는 죽은 해산물을 던지는 행위는 경기를 지연시킬 뿐만 아니라, 살점이나 찌꺼기가 얼음에 얼어붙어 선수들이 스케이트를 타다 끔찍한 부상을 당할 위험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NHL 사무국은 이물질 투척 시 홈팀에 페널티를 부여하는 규정을 두고 있으며, 2008년에는 디트로이트 구단에 "소보트카가 문어를 돌리다 이물질이 빙판에 튀면 1만 달러의 벌금을 물리겠다"고 엄중히 경고하기도 했다. 동물보호단체(PETA) 역시 죽은 동물을 장난감처럼 다룬다며 메기 던지기에 강력히 항의했다.

 

그럼에도 팬들의 집념은 놀랍다.

 

삼엄한 경비원의 눈을 속이기 위해 진공 포장한 문어나 메기를 허벅지에 테이프로 칭칭 감거나, 헐렁한 바지와 속옷 안에 숨겨서 입장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2017년 스탠리 컵 결승전에서는 원정 응원을 간 내슈빌 팬이 속옷 안에 메기를 숨겨 적진인 피츠버그 경기장에 잠입한 뒤 빙판 한가운데로 던졌다가 경찰에 체포(이후 무혐의)되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리그의 제재와 각종 논란 속에서도, 팬들이 바지 속에서 꺼내 던지는 끈적끈적한 문어와 메기는 여전히 북미 아이스하키의 플레이오프 열기를 증명하는 가장 독특하고 유쾌한 아이콘으로 살아 숨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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