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제 & 사회

일본 요리사의 실력? 달걀을 보라

'다마고' 하나에 담긴 장인의 자존심과 철학

 

일본 요리의 세계는 종종 ‘단순함 속의 완벽함’을 추구하는 미학으로 요약된다. 그리고 그 미학의 정점에 있는 식재료를 단 하나만 꼽으라면, 많은 전문가들은 주저 없이 ‘달걀(たまご)’을 선택할 것이다.

 

국제달걀위원회(IEC)의 통계에 따르면, 일본은 1인당 연간 달걀 소비량이 330개를 훌쩍 넘는, 세계 최고 수준의 '달걀 소비 대국'이다. 뜨거운 밥 위에 날달걀 하나를 깨뜨려 간장과 비벼 먹는 '타마고카케고항'부터, 도시락의 단골 메뉴인 달콤한 달걀말이, 그리고 라멘 위에 올라가는 반숙 달걀까지, 달걀은 일본인의 일상 가장 가까이에 있는 식재료다.

 

하지만 이토록 평범한 식재료가, 왜 일본의 고급 요리 세계에서는 요리사의 실력을 가늠하는 가장 엄격하고 중요한 '시험대'로 여겨지는 것일까? 그 이유는 달걀이 가진 솔직함 때문이다. 달걀은 요리사의 아주 작은 실수나 기술의 차이를 그 어떤 재료보다 정직하게 드러낸다. 맛과 질감, 모양이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달걀 요리는 요리사의 내공을 비추는 거울과도 같다.

 

레스토랑의 비밀: 미슐랭 스타를 받은 스시야가 완벽한 타마고야키를 만드는 방법 / guide.michelin.com

 

실력의 바로미터가 되는 '달걀 요리'

 

일본 요리, 특히 스시의 세계에서 한 식당의 수준을 가장 빨리 파악하고 싶다면, 메뉴판의 가장 마지막에 있는 '다마고야키(玉子焼き, 일본식 달걀말이)'를 주문하라는 말이 있다. 이는 단순한 속설이 아닌, 오랜 시간 이어져 온 미식가들의 관행이다.

 

① 스시야의 자존심, 다마고야키

 

스시야에서 제공되는 다마고야키는 우리가 흔히 아는 달걀말이와는 차원이 다르다. 좋은 다마고야키는 갈색 빛이 전혀 없이 샛노란 색을 띠며, 표면은 실크처럼 매끄럽고, 식감은 카스텔라처럼 폭신하면서도 입안에서는 솜사탕처럼 녹아내려야 한다. 이를 만들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극한의 정밀함이 요구된다.

 

· 완벽한 온도 조절: 온도가 너무 높으면 달걀이 타버리고, 너무 낮으면 제대로 익지 않아 겹겹이 쌓을 수 없다.

 

· 정교한 반죽 비율: 달걀과 육수(다시), 새우 살 등을 갈아 넣는 비율이 조금만 달라져도 식감과 맛이 완전히 달라진다.

 

· 반복의 미학: 얇게 부친 달걀물을 틈 없이, 공기가 들어가지 않게 말아 올리는 과정은 수년간의 수련을 통해야만 가능한 기술이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지로의 꿈(Jiro Dreams of Sushi)>에는 이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유명한 일화가 나온다. 미슐랭 3스타 스시 장인 오노 지로의 제자였던 나카자와 다이스케는, 스승에게 다마고야키를 인정받기 위해 무려 200번이 넘는 실패를 거듭한 후에야 비로소 "이제 됐다"는 칭찬을 들을 수 있었다. 이 일화는 다마고야키가 단순한 메뉴가 아닌, 한 명의 스시 장인으로 거듭나기 위한 인내와 끈기, 그리고 완벽을 향한 철학을 시험하는 '최종 관문'임을 보여준다.

 

② 온도의 과학, 차완무시와 온센타마고

 

일본식 달걀찜인 '차완무시(茶碗蒸し)' 역시 요리사의 실력을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다. 달걀과 육수를 섞어 쪄내는 이 단순한 요리에서, 표면에 기포나 균열 하나 없이 푸딩처럼 매끄럽고 부드러운 질감을 만들어내는 것은 오직 약한 불(증기)을 다루는 섬세한 기술력으로만 가능하다.

 

'온센타마고(温泉卵, 온천 달걀)'는 그야말로 '온도의 과학'이다. 달걀흰자와 노른자가 익는 온도가 다르다는 점을 이용하여, 약 65~70℃의 물에서 천천히 익혀 흰자는 몽글몽글하게, 노른자는 크림처럼 녹아내리는 상태로 만든다. 단 몇 도의 차이가 식감을 완전히 바꾸기 때문에, 정확한 온도를 유지하는 능력이 곧 요리사의 실력이 된다. 현대의 셰프들은 이 온도를 완벽하게 제어하기 위해 '수비드(sous-vide)' 기계를 활용하기도 한다.

 

 

 

장인들의 철학: "달걀 하나에 모든 것이 담겨있다"

 

많은 일본의 요리 장인들이 제자들에게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엄격하게 가르치는 것이 바로 달걀을 다루는 법이다. "달걀 요리에서 섬세한 손길과 집중력을 배우지 못하면, 다른 어떤 요리도 잘할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공통된 철학이다.

 

"타마고(달걀말이)는 작은 요리 같지만, 내가 요리라는 방식을 얼마나 소중히 다루는지 보여줍니다." 라는 한 스시 셰프의 말처럼, 달걀을 깨는 방식, 알끈을 제거하는 정성, 거품을 걷어내는 세심함, 그리고 불을 조절하는 인내심. 이 모든 과정에 요리사의 기본기와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있다는 것이다.

 

결국 일본 요리에서 달걀은 단순한 식재료를 넘어, 요리사의 인내와 철학, 그리고 완벽을 향한 끝없는 도전을 담아내는 작고 완전한 세계인 셈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