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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 사회

바다 위의 궁전 or 탄소 괴물

억만장자들의 상징이자, 프라이빗한 여가와 네트워킹을 위한 최고의 공간. 길이 24m 이상의 호화 요트를 일컫는 '슈퍼요트(Superyacht)'는 이제 단순한 배를 넘어, 바다 위를 떠다니는 궁전이자 부동산보다 더 가치 있는 자산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그 화려한 외관 뒤에는 '기후 악당'이라는 불편한 꼬리표가 따라붙는다. 최근 구글의 공동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이 자신의 친환경 이미지와는 상반되게, 슈퍼요트 '드래곤플라이'를 통해 막대한 양의 탄소를 배출한다는 비판에 직면한 것은 이 문제의 단면을 보여준다. 이는 비단 브린 개인에게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www.fortunebusinessinsights.com

억만장자들의 놀이터: 슈퍼요트 시장의 현황

 

슈퍼요트 시장은 팬데믹 이후 오히려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프라이빗한 여행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면서, 전 세계 억만장자들은 자신만의 '움직이는 섬'을 소유하기 위해 막대한 돈을 쏟아붓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포춘 비즈니스 인사이트(Fortune Business Insights)에 따르면, 2023년 약 11조 원(84억 8천만 달러) 규모였던 전 세계 슈퍼요트 시장은 2030년까지 18조 원(136억 5천만 달러)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바다를 지배하는 '움직이는 섬'들

 

오늘날 슈퍼요트는 단순한 부의 과시를 넘어, 소유주의 철학과 기술력의 집약체를 보여준다.

 

 

코루(Koru) / www.superyachtcontent.com

▲ 제프 베조스의 '코루(Koru)' :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조스가 약 5억 달러(약 6,900억 원)를 들여 건조한 127m 길이의 이 요트는, 세계에서 가장 큰 세일링 요트다. 거대한 돛대 3개가 특징이며, 네덜란드에서 건조 당시 역사적인 다리 '더 헤프'를 해체해야만 바다로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큰 논란을 빚었다. 헬기 착륙장과 수영장을 갖춘 75m 길이의 별도 '지원선(Support Vessel)'이 함께 따라다닌다.

 

 

런치패드(Launchpad) / dmarge.com

마크 저커버그의 '런치패드(Launchpad)' :

 

메타의 CEO 마크 저커버그가 최근 인도받은 118m 길이의 슈퍼요트로, 가격은 약 3억 달러(약 4,100억 원)에 달한다. 이 요트 역시 전용 지원선을 대동하며, 테크 업계 거물들 사이에서 슈퍼요트 소유가 하나의 트렌드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비너스(Venus) / www.yachtworld.com

스티브 잡스의 유산 '비너스(Venus)' :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생전에 직접 주문하고, 세계적인 디자이너 필립 스탁이 설계한 78m 길이의 요트다. 알루미늄으로 제작된 미니멀한 선체와 거대한 통유리로 마감된 외관은 마치 '바다 위의 애플스토어'를 연상시킨다. 그의 사후, 미망인인 로렌 파월 잡스가 소유하고 있다.

 

 

화려함의 대가 : 슈퍼요트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

 

이 화려한 궁전들은 움직이는 순간, 막대한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탄소 괴물'로 돌변한다.

 

▶ 상상을 초월하는 탄소 발자국 :

 

2021년 학술지 'Impacts'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슈퍼요트 한 척은 연평균 약 7,020톤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일반 승용차 1,500대가 1년간 내뿜는 양과 맞먹으며, 평균적인 영국인 1인당 연간 배출량의 약 1,500배에 달하는 충격적인 수치다. 디젤 엔진을 24시간 가동하며 수영장, 영화관, 에어컨 등 막대한 에너지를 소비하기 때문이다.

 

www.theguardian.com

 

  미세먼지와 대기오염 :

 

슈퍼요트가 사용하는 경유는 일반 자동차 연료보다 황 함량이 높은 경우가 많아, 연소 과정에서 인체에 치명적인 블랙 카본(검댕)과 질소산화물 등 다량의 대기오염 물질을 배출한다. 환경단체 '교통과 환경(Transport & Environment)'은 유럽의 크루즈선과 슈퍼요트가 배출하는 황산화물이 유럽 대륙의 모든 자동차가 배출하는 양보다 많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해양 생태계 파괴 :

 

강력한 엔진에서 발생하는 수중 소음은 고래와 같은 해양 포유류의 의사소통을 방해하고 생존을 위협한다. 또한, 아름다운 해안에 정박하기 위해 닻을 내리는 과정에서 산호초 등 민감한 해저 생태계를 직접적으로 파괴하는 경우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처리되지 않은 오폐수를 바다에 무단 방류하는 문제 역시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결국 슈퍼요트 논쟁은 극소수 부유층의 사적인 자유가 지구 전체의 환경에 어디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기후 변화 해결을 위해 천문학적인 기부를 하면서도, 동시에 일반인 수천 명분의 탄소를 배출하는 슈퍼요트 위에서 휴가를 즐기는 테크 거물들의 모습은 현대 자본주의의 깊은 모순을 보여준다. 바다 위를 떠다니는 화려한 궁전의 그림자가 생각보다 훨씬 더 짙고 무거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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