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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정보/생활

산수유(山茱萸) 이야기



산수유 꽃은 누가 피웠는가


우리나라에서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의 주인공은 신라의 경문왕이다(삼국유사). 경문왕은 왕이 되고 난 뒤 갑자기 귀가 길어져서 나귀 귀처럼 되었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왕의 두건을 만드는 복두장( 頭匠) 한 사람뿐이었다. 그는 이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다가 죽을 때가 되어 도림사 대나무 숲에 들어가 “우리 임금의 귀는 당나귀 귀다.”라고 외쳤다. 그 뒤 바람이 불 때마다 대나무가 서로 부딪치며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소리가 났다. 그러자 왕은 대나무를 베고 그 자리에 산수유를 심게 했는데, 그 후로 “임금의 귀는 길다”는 소리가 났다고 한다. 혹자는 이 설화가 산수유 열매가 줄줄이 아래로 매달려 있는 모습이 귓불이 긴 사람을 연상케 하는 것이 아닌가 추측한다. 이처럼 옛이야기에 자주 나오는 것을 보면 산수유는 약재로 쓰기 위해 마을 주변에 심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산수유 이름에 얽힌 다른 설화에서도 효능과 관련된 유래를 살펴볼 수 있다. 중국 전국시대 조나라 왕이 목 디스크를 앓고 있었다. 어느 날 산에서 내려온 사람이 산유라는 붉은색 작은 열매를 공물로 바쳤다. 그런데 왕은 평범한 물건을 공물로 바친 것에 화를 내고 곤장을 때리게 했다.


그 후 삼 년이 지난 어느 날 왕은 고질병인 목 디스크 때문에 아픔을 참을 수 없게 되자 어의는 검고 마른 열매를 끓여 복용하게 하고 그 씨를 베개에 넣어 베게 하였다. 병이 나은 후 왕은 어의에게 무슨 좋은 약을 썼는지 물었다. 어의가 대답하길 “3년 전 산에 사는 사람이 공물로 바친 산유 열매입니다. 산유 열매로 만든 베개를 베면 목 통증이 나을 뿐만 아니라 머리가 좋아지고 눈이 밝아집니다.” 왕은 어의의 공을 치하하며 산유라는 이름 대신 산주유로 바꾸었고 이후에 산수유로 변한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까지 건강한 베개를 만드는 공예품으로 산수유를 쓰고 있다.



자주 먹어도 탈이 없는, 산수유


산수유나무는 층층나무과에 속하며 낙엽이 지는 키가 큰 나무다. 주로 산기슭이나 인가 부근에서 자란다. 중국과 한반도 전역에서 자생하고 있으며 주로 우리나라 중부 이남에서 기르고 있다. 주산지는 전남 구례, 경북 의성과 봉화, 경기 이천과 양평 등이다. 산수유는 배롱나무와 노각나무, 모과나무처럼 나무껍질이 아름다운데 15년 이상 지나야 매끈하고 무늬가 있는 나무껍질을 갖게 된다.


산수유 열매에는 사포닌의 일종인 코닌(cornin), 모로니사이드(morroniside), 올레아놀릭산(oleanolic acid) 등이 함유되어 있으며 그 밖에도 다양한 유기산과 비타민이 들어 있다. 산수유 추출물은 면역세포인 B세포를 도와 알레르기를 완화시킨다. 혈당을 낮춰 당뇨병에도 효과가 있으며 피부 손상을 방지해주는 효과도 확인되고 있다.


한방에서는 산수유는 맛이 시고 약성이 따뜻하며 깔깔하여 독성이 없으며 촉촉한 특성을 가진다고 한다. 또한, 자양, 수렴, 항균작용이 있다고 한다. 특히 열매 즙액은 황색 포도상 구균에 대한 항균작용이 알려져 있다.


간과 신장에 작용하며 간이 말라 진액이 부족한 것을 보해주며 진액이 새는 것을 그치게 한다. 신장이 허약하면 몸의 정기가 새어나가는데 소변이 자주 마렵거나, 요실금이 생기거나, 땀이 지나칠 정도로 많거나, 월경이 과다한 증상이 나타난다. 이런 증상에 산수유가 좋은데 이는 정기가 빠져나가지 않게 하는 효능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허리와 무릎이 시리고 통증이 있을 때 효과가 있고 유정과 몽정이 심하고 하체 힘이 약해 보행장애가 있거나 발기가 안 되거나 조루 등에 장기적으로 복용한다. 그러나 산수유는 부종이 있고, 몸 안에 습열이 많아 소변을 잘 보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좋지 않다.



산수유와 우리 민족의 애환


김종길 시인의 시 ‘성탄제’에서 열병을 앓고 있는 아이를 위해 아버지가 약을 구해오는 장면을 묘사하길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 그리고 ‘눈 속에 따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라고 하였다. 아버지의 정을 추위에도 떨어지지 않고 익어가는 붉은 산수유 열매로 표현하여 어렵고 힘든 시절 자식에 대한 사랑을 애틋하게 읊었다.


산수유나무가 많은 구례 산동에는 산동애가(山洞哀歌)라는 노래가 전해지는데 산수유 꽃이 피고 스러지는 섭리를 주인공의 삶에 비유하며 근현대기 우리 민족이 겪은 아픈 역사를 노래하고 있다.


산수유는 씨를 빼고 약으로 쓰는데 과거 경기도 여주나 이천에서는 마을 처녀들이 입에 열매를 넣고 이 사이로 씨를 발라냈다고 한다.


입을 빨리 움직이는 처녀들은 하루에 한 말 정도 씨를 발라냈다는데, 이렇게 처녀들이 입으로 모은 것은 약효가 더 좋다고 하여 훨씬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농촌진흥청 '농사로-오리엔털 허브스토리'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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