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제 & 사회

마크롱의 활동으로 보는 프랑스의 AI 투자

2025년과 2026년의 프랑스를 보면 흥미로운 변화가 하나 눈에 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유럽은 AI를 이야기할 때 규제와 윤리를 먼저 꺼내는 대륙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최근 프랑스의 행보는 다르다. 특히 에마뉘엘 마크롱(Emmanuel Macron)대통령은 AI를 규제의 대상이 아니라 국가 경쟁력과 산업 전략의 핵심으로 바라보며 대규모 투자 유치와 데이터센터 건설에 직접 나서고 있다.

 

실제로 올해 프랑스 정부의 움직임을 살펴보면 하나의 명확한 목표가 드러난다.

 

"프랑스를 유럽 최대 AI 인프라 허브로 만들겠다."

 

 

 

프랑스, 정상 회담에서 총 1,090억 유로 AI 투자규모를 자랑할 예정 / www.bloomberg.com

 

1090억 유로 발표의 의미

 

우선 사실관계부터 확인할 필요가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2025년 2월 파리 AI 액션 서밋(AI Action Summit)을 앞두고 향후 수년간 프랑스 AI 분야에 총 1090억 유로 규모의 투자가 이뤄질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는 프랑스2(France 2) 방송 인터뷰에서 이를 미국의 스타게이트(Stargate) 프로젝트에 비견하며 "규모를 경제 규모에 맞춰 환산하면 사실상 같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이 투자금은 정부 재정이 아니라 민간 자본 중심이다. 특히 캐나다 투자사 브룩필드(Brookfield)와 UAE 국부펀드 계열 자금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며, 상당수가 데이터센터와 AI 컴퓨팅 인프라 구축에 배정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단순한 투자 발표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현재 생성형 AI 경쟁의 핵심은 알고리즘보다도 전력과 GPU, 그리고 데이터센터 확보에 있다. 프랑스는 이 점을 정확히 읽고 있었다.

 

 

 

UAE와 손잡고 1GW 데이터센터 추진

 

마크롱의 전략은 선언에 그치지 않았다.

 

2025년 2월 프랑스와 UAE는 프랑스 내 1GW 규모 AI 데이터센터 캠퍼스 구축을 위한 협력 구상을 발표했다. 당시 엘리제궁은 이를 프랑스 역사상 최대 규모의 AI 관련 투자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로 설명했다.

 

1GW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현재 세계 최고 수준의 AI 데이터센터들이 수백 MW 단위로 계획되는 상황을 고려하면 국가 차원의 전략 인프라로 분류될 만한 규모다.

 

이 프로젝트는 AI 모델 학습과 추론을 위한 연산 능력을 프랑스 내부에 확보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오늘날 AI 경쟁은 결국 "누가 더 많은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며 GPU를 가동할 수 있는가"의 문제로 수렴되고 있기 때문이다.

 

소프트뱅크, 프랑스 AI 데이터 센터에 최대 870억 달러를 투자 — 프랑스는 미국 시설에 부족한 충분한 원자력 전력망을 제공한다 / www.tomshardware.com

 

프랑스가 가진 의외의 무기, 원전

 

최근 프랑스가 글로벌 AI 기업들의 주목을 받는 이유는 또 있다. 바로 원자력 발전이다.

 

프랑스 전력 생산의 약 70%는 원전에서 나온다.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안정적이고 탄소 배출이 적은 전력을 대규모로 공급할 수 있다. AI 데이터센터 입장에서 이는 매우 큰 장점이다.

 

실제로 소프트뱅크 창업자인 손정의 회장(Masayoshi Son)은 최근 프랑스를 선택한 이유 가운데 하나로 풍부한 전력 공급 능력을 언급했다.

 

오늘날 미국에서도 데이터센터 건설이 송전망 부족과 전력 확보 문제에 부딪히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프랑스의 원전 기반 전력망은 예상보다 강력한 경쟁력이 되고 있다.

 

 

 

손정의를 움직인 마크롱

 

최근 가장 큰 화제가 된 사건은 소프트뱅크 투자 유치다.

 

일부 초기 보도에서는 계획 단계로 알려졌지만, 현재는 보다 구체적인 내용이 공개된 상태다.

 

소프트뱅크는 프랑스에 최대 750억 유로를 투자해 5GW 규모의 AI 데이터센터 네트워크를 구축하겠다고 발표했다. 1단계로 450억 유로가 투입되며 2031년까지 3.1GW 규모의 시설이 북부 오드프랑스(Hauts-de-France) 지역에 건설될 예정이다.

 

이는 소프트뱅크 역사상 유럽 최대 AI 인프라 투자다.

 

흥미로운 점은 여러 매체들이 이번 투자를 마크롱과 손정의 간의 지속적인 외교적 교류의 결과로 평가했다는 점이다. 블룸버그와 일본 언론들은 양측의 직접적인 교류가 투자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전했다.

 

즉 마크롱은 AI 정책을 산업 정책으로만 보지 않고 정상외교의 영역까지 확장한 셈이다.

 

 

 

인재 확보도 병행

 

인프라만으로 AI 강국이 될 수는 없다.

 

마크롱은 이미 여러 차례 AI 교육 인력을 대폭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프랑스 정부는 AI·데이터 과학·컴퓨터공학 인재 양성을 늘리고 연구 클러스터를 강화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프랑스를 단순한 AI 소비국이 아니라 개발국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내세우고 있다.

 

이는 미국 빅테크가 연구소를 두고, 스타트업이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프랑스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과 소프트뱅크 CEO 손정의 / newsedition.in

 

프랑스가 노리는 것은 '유럽의 AI 허브'

 

프랑스 현지 언론과 국제 매체들은 최근 프랑스를 "유럽 AI 인프라 경쟁의 선두주자"로 평가하고 있다. 로이터는 프랑스가 원전 기반 전력망을 활용해 유럽의 AI 연산 능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마크롱이 추진하는 정책은 단순히 AI 기업을 육성하는 수준이 아니다.

 

해외 자본 유치 / 데이터센터 건설 / GPU 확보 /  전력 인프라 활용 / 연구 인재 양성 / 국제 협력 확대

 

이 모든 요소를 동시에 움직이고 있다.

 

과거 유럽이 AI 규제 논의의 중심에 있었다면, 최근 프랑스는 "규제만으로는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투자와 인프라 구축으로 무게중심을 이동시키고 있는 모습이다.

 

 

 

 

마크롱의 최근 행보를 단순한 투자 유치 활동으로 보면 전체 그림을 놓치게 된다.

 

그가 추진하는 AI 정책의 핵심은 프랑스를 AI 서비스를 사용하는 국가가 아니라, AI를 움직이는 전력과 데이터센터, 그리고 연산 능력을 제공하는 국가로 바꾸겠다는 데 있다.

 

1090억 유로 투자 발표, UAE와의 데이터센터 협력, 소프트뱅크의 최대 750억 유로 프로젝트는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AI 시대의 패권은 단순히 뛰어난 알고리즘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데이터센터와 전력, 그리고 자본을 얼마나 끌어모을 수 있는가도 중요하다. 최근의 프랑스를 보면 마크롱은 그 점을 누구보다 분명하게 이해하고 있는 정치인 가운데 한 명으로 보인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