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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 사회

감자? 여기서 먹어보고 얘기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맛있는 감자"가 뭐냐고 묻는다면 열에 아홉은 자동반사적으로 대답할 것이다. "당연히 강원도 감자 아니에요?" 포슬포슬한 분이 하얗게 일어나는 강원도 햇감자는 한국인의 소울푸드이자 절대적인 기준이다.

 

하지만 시야를 조금만 넓혀보면 감자는 지구상에서 가장 널리 사랑받는 작물 중 하나다. 당연히 다른 나라에도 그들만의 '강원도'가 존재한다. 저마다의 기후와 토양, 그리고 역사적 배경을 무기로 "우리 감자가 세계 최고"라며 으스대는, 이른바 '감자부심' 넘치는 지역들을 모아봤다.

 

흑백 추뇨 / www.zmescience.com

 

1. 원조의 품격: 페루 쿠스코 & 안데스 고산지대

 

감자의 고향, 페루 안데스 지역 사람들에게 감자는 단순한 작물이 아니라 '종(Species)'의 개념이다. 해발 3,000m가 넘는 고산지대에서 자라는 수천 종의 토종 감자는 색깔도, 모양도, 맛도 제각각이다.

 

이곳 사람들은 "어느 감자가 더 맛있냐"고 묻지 않는다. "이 요리엔 이 감자, 저 상황엔 저 감자"가 있을 뿐이다. 특히 밤에는 얼고 낮에는 녹는 과정을 반복해 만든 동결건조 감자 '추뇨(Chuño)'는 수백 년을 보관할 수 있다고 하니, 원조의 기술력은 실로 위대하다.

 

 

2. 감자가 곧 정체성: 독일 뤼네부르크 하이데

 

독일인들은 스스로를 자조적으로 '카토펠(Kartoffel, 감자)'이라 부를 만큼 감자에 진심이다. 그중에서도 북부의 '뤼네부르크 하이데'는 모래질 토양과 큰 일교차 덕분에 전분 함량과 향이 뛰어난 감자가 자라는 성지다.

 

이곳의 감자부심은 '분류'에서 나온다. 단단한 식감의 '페스트코헨트(festkochend)'와 부드러운 가루 감자인 '멜리히코헨트(mehligkochend)'를 철저히 구분한다. "감자 튀김은 아무거나 써도 되지만, 감자 샐러드는 뤼네부르크 감자가 아니면 안 된다"는 독일인의 고집은 18세기 프리드리히 대왕이 기근 해결을 위해 감자 재배를 강제했던 역사적 배경에서 비롯된, 생존을 넘어선 자부심이다.

 

 

라 보노트(La Bonnotte) / www.aliyatrading.com

3. 감자계의 샤넬: 프랑스 누아르무티에 섬

 

미식의 나라 프랑스에서 감자는 때로 명품 대접을 받는다. 대서양 연안의 누아르무티에 섬에서 생산되는 '라 보노트(La Bonnotte)' 품종은 "감자계의 샤넬"로 통한다.

 

바닷바람을 맞고 해조류 퇴비를 먹고 자란 이 감자는 짭조름한 염분과 달콤한 버터 향이 어우러진 독특한 맛을 낸다. 생산량이 극히 적고 수확 후 보관이 어려워, 파리의 미슐랭 레스토랑들이 수확 전부터 선주문을 넣을 정도다. 프랑스인들에게 이 감자는 밥이 아니라, 봄 한철에만 누릴 수 있는 '계절성 사치품'이다.

 

 

4. 뇨키의 자격: 이탈리아 남티롤 & 로초

 

이탈리아에서 감자의 가치는 "파스타에 들어갈 자격이 있는가"로 결정된다. 알프스산맥 끝자락인 남티롤(Südtirol) 지방과 베네토주의 로초(Rotzo) 지역은 고산지대의 서늘한 기후 덕에 수분은 적고 전분이 꽉 찬 감자를 생산한다.

 

이탈리아 북부 가정에서는 "남티롤이나 로초 감자가 아니면 뇨키를 빚지 말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뇨키를 만들었을 때 입안에서 쫀득하게 달라붙으면서도 무겁지 않게 넘어가는 그 식감, 그것이 바로 이탈리아 감자부심의 핵심이다.

 

 

도니골 감자 / www.farmersjournal.ie

5. 한과 역사: 아일랜드 도니골

 

아일랜드 사람들에게 감자는 음식 그 이상, 바로 역사다. 대기근이라는 비극적인 트라우마를 겪은 이들에게 감자의 품질은 타협할 수 없는 문제다. 춥고 습한 북서부 도니골(Donegal) 지역의 감자는 풍부한 미네랄 토양 덕에 투박하지만 깊은 맛을 낸다. 이곳의 감자는 화려한 요리보다는 삶아서 버터만 발라 먹었을 때, "조상들이 지켜낸 맛"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다고 한다.

 

 

6. 규격과 신뢰: 미국 아이다호

 

우리가 패스트푸드점에서 먹는 길쭉하고 바삭한 감자튀김의 고향, 바로 미국 아이다호다. 화산성 토양과 건조한 기후, 그리고 철저한 관개 농업 시스템은 크고 모양이 균일한 '완벽한 상품'을 만들어낸다.

 

"Idaho Potato"는 단순한 지명이 아니라 주 정부가 관리하는 등록 상표다. 미국의 감자부심은 미식보다는 '어디서 먹어도 똑같이 맛있는' 신뢰성과 압도적인 생산 능력에 있다. 전 세계 프렌치프라이의 표준을 만든 곳이니 그 자부심도 인정할 만하다.

 

 

홋카이도 감자 / narita-akihabara.jp

7. 가까운 이웃의 강원도: 일본 홋카이도

 

일본의 홋카이도는 한국의 강원도와 소름 끼칠 정도로 위상이 비슷하다. 냉량한 기후 덕에 일본 감자 생산의 80%를 책임지며, 당도가 높고 조직이 단단하다. 특히 니세코 인근의 '굿찬' 지역은 화산성 토양과 깊은 눈 덕분에 최고의 감자 산지로 꼽힌다.

 

일본 여행 필수품이 된 '자가폿쿠루' 과자나 홋카이도 명물 '감자 버터'구이는 모두 이 지역 감자의 퀄리티에 기대고 있다. 일본인에게 "맛있는 감자"는 곧 "홋카이도산"을 의미하며, 흉작이 들면 뉴스에서 포테이토칩 품귀 현상을 다룰 정도로 국민적 사랑을 받는다.

 

 

전 세계를 돌며 확인한 것은, 감자는 단순한 구황작물이 아니라 각 나라의 기후와 식문화를 대변하는 '대지(大地)의 맛'이라는 사실이다. 프랑스의 버터 같은 감자나 이탈리아의 뇨키용 감자도 훌륭하지만, 그래도 한국 사람 입맛엔 고추장 찌개에 숭덩숭덩 썰어 넣거나 찜통에서 갓 꺼내 호호 불어 먹는 강원도 햇감자가 역시 최고 아닐까? 물론, 이건 지극히 주관적인 'K-감자부심'일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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