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에게 새해 첫날 음식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떡국이다.
하얀 국물에 동그란 떡을 넣고, “한 살 더 먹는다”는 말을 곁들이는 그 의식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그런데 세상을 조금만 넓혀보면, 새해를 맞는 인류의 마음은 놀라울 만큼 비슷하면서도 묘하게 다르다.
다들 잘 살고 싶고, 오래 살고 싶고, 액운은 좀 피해 가고 싶다는 욕망을 접시 위에 올려놓는다.

중국: 만두로 재산을 빚다
중국의 춘절 상차림에서 빠질 수 없는 음식은 자오쯔, 즉 교자다.
이 만두는 모양부터 노골적이다. 옛 중국 화폐인 원보(元寶), 말굽 모양 금괴를 닮았다.
게다가 ‘자오쯔(餃子)’라는 발음은
- 묵은해와 새해가 교차하는 시각(交子)
- 밤 11시에서 새벽 1시 사이의 시간대를 함께 떠올리게 한다.
즉, 새해의 경계에서 재물을 빚어 먹는 셈이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온 가족이 모여 만두를 빚는 행위 자체가 새해 의식에 가깝다.
일본: 불을 끄고, 국수를 끊는다
일본의 새해 음식은 유난히 ‘준비’와 ‘정리’에 집착한다.
연말 밤에 먹는 도시코시 소바는 일부러 잘 끊어지는 메밀로 만든다. 지난해의 액운을 싹둑 끊고 넘어가겠다는 뜻이다. 동시에 가늘고 긴 면발에는 장수의 바람도 담긴다.
새해가 밝으면 불을 거의 쓰지 않는다.
미리 만들어 둔 오세치 요리를 찬합에 담아 먹는데, 이는 가사노동을 쉬기 위함이기도 하고, 각 재료마다 상징이 분명하다.
- 새우: 허리가 굽을 때까지 장수
- 검은콩: 부지런함과 건강
- 청어알: 자손 번창
여기에 지역에 따라 떡국과 비슷한 오조니까지 더해진다. 정리하자면 일본의 새해 음식은 “잘 쉬고, 오래 살고, 차분히 시작하자”에 가깝다.

스페인: 종소리에 맞춰 포도를 삼키는 이유
스페인에서는 새해 전야, 시계 종이 12번 울릴 때 포도 12알을 먹는다. 12달 내내 행운이 깃들기를 바라는 의식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전통이 상당히 현대적이라는 사실이다.
1900년대 초, 포도 대풍년으로 판로가 막히자 농민들이 “새해에 포도를 먹으면 행운이 온다”고 홍보한 것이 결정적 계기라는 설이 유력하다.
즉, 행운을 먹는 풍습은 때로 재고 처리에서 시작된다. 그래도 지금은 스페인 사람들에게 꽤 진지한 새해 의식이 되었다.
미국 남부: 가난했던 음식이 행운이 되다
미국 남부의 새해 음식 호핑 존은 검은 눈 콩과 쌀, 돼지고기를 섞은 소박한 요리다.
여기에는 아픈 역사가 숨어 있다.
남북전쟁 당시 북군이 남부의 식량을 약탈해 가면서, 가축 사료 취급을 받던 검은 눈 콩과 염장 돼지고기만 남았다.
그걸로 겨울을 버텼고, 살아남았다.
그래서 이 음식은 “우리를 살린 음식”이 되었고, 검은 눈 콩은 동전, 푸른 채소는 지폐, 옥수수빵은 금화를 상징하게 됐다.
가난을 견뎌낸 기억이 행운의 상징으로 바뀐 경우다.
이탈리아: 콩으로 재산을 센다
이탈리아에서는 새해에 렌틸콩과 돼지고기 소시지를 함께 먹는다.
렌틸콩은 납작하고 둥글어 동전을 닮았고, 익히면 양이 불어난다. 말 그대로 “돈이 불어나라”는 바람이다.
돼지고기는 땅을 뒤로 파지 않고 앞으로 밀며 나아가는 습성 때문에 한 해를 후퇴 없이 전진하라는 상징으로 여겨진다.

네덜란드와 그리스: 액운은 튀기고, 행운은 숨긴다
네덜란드의 올리볼렌은 말린 과일을 넣은 튀김 빵이다. 고대 신화에서 겨울의 재앙을 피하려면 기름진 음식을 먹어 악한 존재의 칼날을 미끄러뜨려야 한다는 믿음에서 유래했다는 설명이 전해진다.
그리스의 바실로피타는 케이크 속에 동전을 숨긴다. 누가 동전을 뽑느냐로 한 해의 행운이 결정된다.
동유럽 여러 나라에서도 비슷한 풍습이 남아 있다. 새해는 여전히 작은 복권을 긁는 날이기도 하다.
결국, 우리는 다 비슷하다
콩을 세고, 면을 늘이고, 만두를 빚고, 포도를 삼킨다.
방법은 달라도 새해 음식이 하는 일은 하나다.
“올해는 작년보다 조금만 나아졌으면.”
떡국 한 그릇 앞에 앉은 우리와 포도 12알을 입에 쑤셔 넣는 스페인 사람 사이에는 사실 그리 큰 차이가 없다.
그러니 새해 첫날, 이렇게 물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너희는 새해 첫날, 뭐 먹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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