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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 사회

갈 길 멀어 보이는 인도네시아의 수도 이전

최근 인도네시아는 국가 간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이해하기 힘든 행보를 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우리나라와 수조 원대의 전투기를 공동 개발하기로 약속했던 'KF-21' 사업. 인도네시아는 이 사업 막바지까지 소극적인 자세로 우리나라를 곤란하게 하면서, 정작 뒤로는 프랑스 라팔이나 미국 F-15, 튀르키예 차세대 전투기 칸(Kaan), 중국의 J-10CE 등 여러 나라의 전투기를 뜬금없이 사들이려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상식적인 국가 운영 방식은, 인도네시아가 국운을 걸고 추진 중이라는 '수도 이전' 프로젝트에서도 똑같이 드러나고 있다.

 

'누산타라(Nusantara)'라는 이름의 이 거대한 계획은, 얼핏 미래지향적인 청사진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예산 부족, 투자 실패, 정치적 혼란, 그리고 현실을 무시한 계획의 괴리가 뒤엉켜 거대한 난관에 봉착한 모양새다.

 

누산타라 상상도 / partners.wsj.com

 

1. 왜 옮기려 했나: 가라앉는 수도, 자카르타

 

인도네시아가 수도 이전을 결심한 이유는 절박함 때문이었다. 현재 수도인 자카르타는 이미 도시로서의 한계를 넘어섰다.

 

환경적 재앙: 3,300만 명이 넘는 인구가 몰린 자카르타는 세계 최악의 교통난과 대기오염에 시달리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도시가 말 그대로 '가라앉고 있다'는 점이다. 무분별한 지하수 개발로 매년 최대 8cm씩 지반이 침하하며, 도시 상당 부분이 해수면보다 낮아져 만성적인 침수에 시달리고 있다.

 

경제적 불균형: 국가의 모든 정치, 경제, 행정 기능이 자바섬 하나에 집중되면서, 수천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인도네시아의 국가 균형발전은 요원한 이야기가 되었다.

 

이에 조코 위도도(조코위) 전 대통령은 2019년, 자카르타에서 약 1,200km 떨어진 보르네오섬 동칼리만탄에 '녹색 스마트 도시'를 건설해 행정 기능을 옮기겠다는 '누산타라' 계획을 발표했다.

 

 

halaltimes.com

 

 

2. 현실의 벽: 돈도, 사람도, 계획도 없다

 

총사업비 44조 원 이상이 투입되는 5단계의 거대한 계획. 2024년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시작으로 2045년 완성이라는 목표를 세웠지만, 현실은 처참하다.

 

첫째, 돈이 마르고 있다. 정부는 총사업비의 20%만 국가 예산으로 충당하고, 나머지 80%는 해외 및 민간투자로 메우겠다는 장밋빛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의 경기 침체와 사업 자체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투자자들은 지갑을 닫았다. 대규모 투자를 약속했던 해외 기업들의 실제 이행은 지지부진했고, 결국 자금 조달에 실패한 책임을 지고 신수도청장과 차관이 연달아 사임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설상가상으로 2024년 출범한 새 정부는 국가 예산 전반에 걸친 대대적인 지출 삭감을 지시했고, 누산타라 관련 예산 역시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 '민간투자에 의존하겠다'는 초기 구상과 달리, 정부 지원마저 축소되며 프로젝트는 동력을 잃어가고 있다.

 

둘째, '수도'의 지위가 흔들리고 있다. 자금난과 인프라 부족으로 공사가 지연되자, 인도네시아 정부는 스스로 계획을 축소하기 시작했다. 주요 부처 이전은 미뤄졌고, 급기야 새 정부는 누산타라를 '국가 수도(National Capital)'가 아닌, 행정 기능 일부만 수행하는 '정치 수도(Political Capital)'로 격하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는 '모든 중앙기관 이전'이라는 초기 구상을 사실상 후퇴시킨 것으로, 프로젝트의 정당성마저 흔들리고 있다. 심지어 독립기념일 행사조차 자카르타와 누산타라에서 따로 열릴 지경에 이르러, "국가 분열을 조장한다"는 비판까지 나온다.

 

셋째, '녹색 수도'의 역설: 환경 파괴와 원주민의 눈물 '탄소 중립 녹색 도시'라는 슬로건과 달리, 개발 과정은 세계의 허파라 불리는 보르네오 열대우림을 파괴하고 있다. 환경단체들은 숲 훼손과 수질 악화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하며, 전통적인 터전에서 쫓겨나게 된 원주민 단체들은 헌법소원까지 제기하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공사가 진행되면서 잠시 유입되었던 노동자들이 빠져나가자, 지역 상권이 급속히 위축되는 '붐 앤 버스트' 현상까지 나타나며 현지 민심도 악화되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새로운 수도 누산타라, '유령 도시'가 될 위기에 처하다 / theguardian.com

 

 

3. '유령 도시'가 될 것인가

 

현재 누산타라 현장에 거주하는 인구는 대부분 공사 인력과 일부 공무원 수천 명 수준으로, 2030년까지 수십만 명을 유입시키겠다던 목표와는 거리가 멀다. [가디언], [CNBC] 등 외신들은 "예산, 투자, 정치적 의지라는 세 가지 핵심 요소가 모두 흔들리고 있다"며, 이대로라면 누산타라가 막대한 돈만 쏟아부은 '백조의 집(White Elephant, 애물단지)' 또는 '유령 도시(Ghost City)'가 될 위험이 크다고 경고한다.

 

조코위 전 대통령의 정치적 야망으로 시작된 이 거대 프로젝트는, 차기 정권의 재정 긴축과 정책 우선순위 변경에 따라 표류하고 있다. KF-21 사업에서 보여준 인도네시아의 일관성 없는 태도가, 자국의 백년대계인 수도 이전 사업에서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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