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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 사회

몽골의 영혼이 담긴 씨름, '부흐(Бөх)'

매년 7월, 몽골의 초원은 말발굽 소리와 활 시위 소리, 그리고 거인 같은 사내들의 함성으로 가득 찬다. 몽골 최대의 국가 축제인 '나담(Naadam)'의 개막을 알리는 소리다.

 

이 나담 축제의 세 가지 핵심 종목(씨름, 말타기, 활쏘기) 중에서도 단연 백미로 꼽히는 것이 바로 몽골의 전통 씨름, '부흐(Бөх)'다. 부흐는 단순한 스포츠를 넘어, 몽골의 역사와 정신, 그리고 남성성을 상징하는 살아있는 문화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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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기즈 칸의 전사를 선발하던 방식

 

부흐의 역사는 수천 년 전 몽골 고원의 유목민 문화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13세기 칭기즈 칸 시대를 기록한 《몽골비사》에도 부흐가 중요한 군사 훈련이자 강력한 전사를 선발하는 방식으로 활용되었다는 내용이 전해진다.

 

혹독한 자연환경 속에서 생존해야 했던 유목민들에게 부흐는 단순한 오락이 아닌, 체력과 용기, 인내를 시험하는 실전 훈련 그 자체였다.

 

 

 

시간도, 체급도 없는 무제한 승부

 

부흐의 규칙은 지극히 단순하고 원초적이다. 규칙부터가 팔꿈치, 무릎, 등, 어깨, 머리 중 어느 한 부분이라도 땅에 먼저 닿으면 그 즉시 패배하는 간단한 구조다.

 

시간제한과 체급 구분 조차 없다. 승부가 날 때까지 경기는 계속되며, 자그마한 체구의 선수가 거구의 선수를 기술로 넘어뜨리는 이변이 속출하기도 한다.

 

선수들은 세 가지 전통 복장을 착용한다.

 

조독 (Jodag) - 가슴 부분이 뻥 뚫린 소매 달린 짧은 재킷.

 

쇼닥 (Shuudag) - 짧은 팬츠 형태의 하의.

 

구탈 (Gutal) - 끝이 살짝 말려 올라간 전통 가죽 장화.

 

이 중 가슴이 훤히 드러나는 '조독'의 형태에 대해서는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진다. 아주 오래전 한 여성이 남장을 하고 나담 축제에 참가하여 모든 남자를 쓰러뜨리고 우승을 차지했는데, 이 사건 이후 다시는 여성이 참가하는 것을 막기 위해 상의를 지금과 같은 형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승자와 패자를 위한 독수리 춤

 

부흐는 경기 시작부터 끝까지 상징적인 의례로 가득 차 있다. 경기 전, 선수들은 양팔을 넓게 벌리고 위아래로 흔들며 경기장에 등장하는데, 이는 전설 속의 새 '항가리드' 또는 독수리의 날갯짓을 흉내 낸 '독수리 춤(Devekh)'이다. 이는 자신의 용맹함과 힘을 과시하는 행위다.

 

경기가 끝나면, 승자는 다시 한번 독수리 춤을 추며 승리를 자축하고, 패자는 승자의 팔 아래로 허리를 숙여 지나가며 패배를 인정하고 존경을 표한다.

 

 

 

승리로 얻는 영원한 명예

 

부흐 선수의 가장 큰 영광은 국가 주관의 '나담 축제'에서 승리하여 국가로부터 칭호를 받는 것이다. 이 칭호는 한번 받으면 평생 유지되며, 가문의 큰 명예가 된다.

 

칭호는 나담 축제 토너먼트에서 몇 명의 상대를 이겼느냐에 따라 수여된다.

 

5승: 나친 (Nachin / 나친) - '매' 또는 '송골매'

 

6승: 하르차가 (Khartsaga / 하르차가) - '수리' 또는 '매'

 

7승: 자안 (Zaan / 자안) - '코끼리'

 

8승: 가루다 (Garuda / 가루다) - 신화 속의 '가루다'

 

9승 (준우승): 아르슬란 (Arslan / 아르슬란) - '사자'

 

10승 (우승): 아와르가 (Avarga / 아와르가) - '천하장사' 또는 '거인'

 

'아르슬란' 칭호를 받은 선수가 다음 해 나담에서 다시 우승하면 '아와르가'가 되며, '아와르가'가 계속 우승할 때마다 그 앞에 수식어가 붙어 더욱 높은 명예를 얻게 된다. 이 칭호들은 몽골 사회에서 최고의 존경을 받는 상징이다.

 

 

 

 

넷플릭스에서 10월 28일 공개 예정인 '피지컬:아시아'에 참가한 몽골 대표팀의 리더 어르헝바야르 바야르사이항이 2022년 몽골 대통령배 부흐 대회 우승자다.

 

 

 

현대적 의의

 

오늘날 부흐는 몽골을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문화적 상징이자, 2010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세계적인 유산이다. 몽골의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부흐를 배우며 강인한 체력과 함께 예의, 존중, 절제의 가치를 배운다.

 

부흐 선수는 단순한 운동선수를 넘어, 국가적 영웅으로 대우받으며 몽골 민족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이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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