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사 스탠다드, 키르시, W컨셉. 인기 있는 국내 패션 브랜드의 온라인 스토어에 들어가 보면, 낯설지 않은 풍경이 펼쳐진다. 한국 옷을 입고 있는 모델은 한국인이 아닌, 하얀 피부와 오뚝한 코를 가진 서양인이다. 고개를 돌려 보게 된 병원 홍보에서는 금발의 고객이 해맑게 웃고 있다. 유튜브를 열면, K팝 뮤직비디오를 보며 감탄사를 연발하는 외국인(주로 백인)의 '리액션 영상'이 알고리즘의 추천을 받는다.
이 현상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일본, 그리고 중국에서도 수십 년에 걸쳐 거의 동일한 패턴이 관찰되어 왔다. 우리는 왜 우리의 상품과 문화를 소개하는 데 있어 그들의 '얼굴'과 '목소리'를 빌리는 것일까? 그리고 이 오랜 동경은, K-컬처의 위상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지금, 과연 희미해지고 있는 것일까?

광고 속의 '하얀 얼굴': 프리미엄의 상징
광고계의 백인 모델 선호 현상은 진작부터 진행되어 온 뿌리 깊은 관행이다. 일본의 경우, 2001년 한 연구(Hiyoshi, 2001)에 따르면 TV 광고의 21.1%에 외국인 모델이 등장했고, 그중 70% 이상이 백인이었다. 10년 전인 1991년의 조사에서도 결과는 비슷했다. 중국 역시 2010년대에 들어 패션, 뷰티, 의료, 교육 등 '프리미엄' 이미지가 중요한 분야에서 백인 모델을 기용하는 것이 하나의 공식처럼 굳어졌다.
우리나라도 유사하다. 2012년 발표된 광고학 논문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경우 2000년 이후 외국인 모델의 사용이 점증하다가 2006년부터 9.3%로 높아졌고, 특히 백인 모델의 비율이 8.7%까지 도달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성향은 현재 진행형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백인 모델을 쓰면 해외 브랜드 같은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줄 수 있고, 실제 판매량 증가에도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심지어 "국내 톱모델보다 외국인 모델의 모델료가 오히려 저렴하여 비용 대비 광고 효과가 크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덧붙인다.
이러한 현상은 "신뢰성", "글로벌", "모던함"이라는 가치를 전달하기 위해 백인의 이미지를 도구적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는 '효과가 있다'는 업계의 판단처럼, 실제로 소비자들에게 오랫동안 성공적으로 소구되어 왔다.

유튜브 속의 '하얀 목소리': 인정 욕구의 거울
이러한 경향은 새로운 미디어 플랫폼에서도 변주된다. 유튜브의 인기 장르로 자리 잡은 '외국인 리액션' 영상은 우리의 무의식을 더욱 선명하게 비춘다. K팝, K드라마, K푸드 등 한국 문화를 접한 외국인들이 감탄하고 칭찬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대리만족과 자부심을 느낀다.
하지만 이 '외국인'의 범위는 놀라울 정도로 편향되어 있다. 우리보다 경제적으로 부유한, 소위 '선진국'이라 불리는 국가 출신의 백인들의 반응이 압도적인 조회수와 호응을 얻는다. 아시아나 아프리카, 남미인의 긍정적인 반응은 상대적으로 큰 주목을 받지 못한다.
이는 우리가 K-컬처의 성공에 뿌듯함을 느끼는 지점과도 맞닿아 있다. '한류(韓流)'라는 단어가 아시아라는 대륙에 갇힌 느낌이었다면, 'K-culture'라는 영어 단어는 아시아를 넘어 서구권을 '정복'했다는 쾌감을 준다. 우리가 진정으로 갈망하는 것은 어쩌면 성공 그 자체가 아니라, '그들'로부터 받는 인정일지도 모른다.

왜 우리는 그들의 시선을 갈망하는가?
한·중·일 3국에서 이토록 유사한 성향이 나타나는 이유는, 세 나라가 공유하는 근현대사의 궤적과 무관하지 않다. 19세기와 20세기에 걸친 서구 열강의 침탈, 그 과정에서 힘의 논리를 체감하며 내면화된 서구 문물에 대한 동경과 사대주의, 그리고 뒤늦게 근대화를 이루며 '선진국'을 따라잡고 그들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강력한 '인정 욕구'.
이러한 집단적 경험은 우리의 무의식 속에 '서구 = 글로벌 표준 = 선진적인 것'이라는 등식을 아로새겼다. 광고에 백인 모델을 쓰는 것은 그 표준에 부합하려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며, 그들의 칭찬에 열광하는 것은 마침내 우리가 그 표준에 도달했음을 확인받고 싶은 욕망의 발현이다.
그렇다면 이 지긋지긋한 동경의 고리는 과연 끊어질 수 있을까? K-컬처의 전례 없는 성공은 분명 우리에게 엄청난 문화적 자신감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그 자신감의 근원이, 우리 스스로의 내적 만족감에서 비롯된 것인가, 아니면 여전히 '빌보드 차트 1위', '넷플릭스 글로벌 1위'와 같이 그들의 시스템 안에서 얻어낸 성공에 더 크게 환호하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질문이 남는다.
광고 속 백인 모델의 수가 줄어들고, 다양한 인종의 리액션 유튜버가 인기를 얻는 변화의 조짐도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백인에 대한 동경'이 진정으로 희미해졌다고 말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그들의 칭찬 없이도 온전히 스스로를 긍정할 수 있는 내적인 힘을 갖추었는지에 대한 성찰이 먼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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