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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 사회

어쩌면 괜찮을지도 모를 올림픽 유치

전북자치도 전주가 2036년 하계 올림픽 유치 의향을 밝혔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예상했던 반응들이 어김없이 쏟아져 나온다. "천문학적인 적자가 불 보듯 뻔한데?", "그 돈으로 복지나 더 신경 써라", "올림픽으로 흥하는 시대는 끝났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이 대한민국의 국운을 바꾼 변곡점이었고, 2002년 월드컵이 온 국민을 하나로 묶었던 영광의 기억은 이제 희미하다. 국가의 위상이 높아진 지금, 대규모 스포츠 이벤트 유치는 실익 없는 낭비라는 냉소적인 시각이 사회의 주류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물론 이러한 회의론은 타당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 수십조 원을 쏟아부어 지은 경기장들은 대회가 끝나면 세금 먹는 하마로 전락하고, 장밋빛 경제 효과는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승자의 저주'를 우리는 여러 번 목격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번 전주의 도전이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괜찮은 시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첫째, 대한민국의 고질병인 '서울공화국' 현상을 타개할 가장 강력한 처방전이 될 수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모든 것이 수도권으로 통한다. 인구의 절반 이상이, 국가의 핵심 인프라와 정책 예산의 대부분이 수도권이라는 거대한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지방 소멸은 더 이상 경고가 아닌 현실이다. 이런 기형적인 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수많은 정책이 나왔지만, 그 효과는 미미했다.

 

이런 상황에서 올림픽 유치는, 중앙정부와 국민적 관심을 강제로 지방으로 돌릴 수 있는 거의 유일하고 가장 확실한 '보장된 투자'다. 올림픽을 개최하기 위해서는 고속철도, 공항, 도로 등 사회기반시설(SOC)의 획기적인 확충이 필수적이다. 이는 수십 년간 지지부진했던 지역 숙원 사업들을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강력한 명분이 된다. 낙후된 지방 인프라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 이것이야말로 올림픽이 남길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가치 있는 유산이다.

 

둘째, K-컬처의 역사적인 전성기와 올림픽의 시너지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수 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이 '우리는 이런 나라입니다'라고 세계에 대한민국을 처음 소개하는 자리였다면, 2036년의 올림픽은 '우리가 바로 당신들이 사랑하는 K-컬처의 본고장입니다'라고 전 세계 팬들을 맞이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지금 K-팝과 K-드라마, K-푸드에 열광하며 자라나는 전 세계의 10대, 20대들은 12년 뒤인 2036년에는 구매력을 갖춘 핵심적인 문화 소비층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한국은 더 이상 낯선 나라가 아닌, 자신의 청춘을 함께한 문화적 고향과도 같다. BTS와 블랙핑크의 뒤를 잇는 K-팝 스타가 개막식 무대에 오르고, 경기장 곳곳에서 치맥과 떡볶이를 즐기며, 경기 없는 날에는 K-드라마 촬영지를 순례하는 전 세계 젊은이들의 모습. 이는 단순한 스포츠 대회를 넘어, K-컬처의 영향력을 현장에서 폭발시키는 거대한 '문화 플랫폼'으로서의 올림픽을 상상하게 한다.

 

마지막으로, 인공지능(AI)과 자동화의 시대에 올림픽이 가질 새로운 의미다. 2036년의 세상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AI와 휴머노이드 기술이 일상화된 시대일 것이다. 인간의 지적, 육체적 노동의 상당 부분을 기계가 대체하는 사회에서, 오직 인간의 신체와 정신력만으로 한계에 도전하고 드라마를 만들어내는 올림픽의 가치는 오히려 지금보다 훨씬 더 희소하고 특별한 것이 될 수 있다. AI가 모든 것을 빠르고 완벽하게 해내는 세상 속에서, 땀 흘리고, 실수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는 불완전한 인간의 모습이야말로 가장 큰 감동과 울림을 주는 콘텐츠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과거처럼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는 전시성 올림픽은 지양해야 한다. 하지만 지방 균형 발전의 기폭제로서, K-컬처의 정점을 보여주는 문화 플랫폼으로서, 그리고 인간성의 가치를 되새기는 철학적 무대로서, 2036년의 올림픽은 우리가 한 번쯤 긍정적으로 꿈꿔볼 만한 '괜찮은 미래'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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