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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정보/사회

남한과 북한의 인구성장 및 인구구조의 비교

인구규모와 인구성장의 비교

 

  남북한 총인구를 보면, 2013년 남한은 5,022만 명이고, 북한은 2,454만 명으로 북한의 인구는 남한의 절반 수준이다(표 Ⅰ-10). 남한인구 대비 북한인구의 비중이 최저점에 이르렀던 시기는 1960년대 중반으로 한국전쟁 당시 북한인구는 남한인구의 55%였다가 점점 감소하여 1960년대에 최저점인 44% 수준에 이르렀다가 그 이후에 점점 상승하여 2010년대에는 50% 수준에 근접하게 되었다.

 


  [그림 Ⅰ-21]에서 남북한의 연평균 인구성장률은 한국전쟁 이후 20여 년간에는 차이가 컸으나 2000년대 이후에는 모두 1% 미만, 특히 최근에는 0.5% 수준으로 떨어져 남북한 간의 차이가 거의 없어졌다.
  남북한의 연평균 인구성장률을 시기별로 보면,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한국전쟁을 거쳐 1960년대까지는 남북한 모두 해외동포의 귀환과 북한 주민의 월남 등으로 남한의 인구성장률이 북한보다 높다. 남한은 1955년에 정점에 이르고 북한은 남한보다 베이비붐의 영향이 상대적으로 장기화되면서 2% 근방의 높은 인구성장률이 1970년대 초반까지 계속되었다.
  1980년대 이후에는 남북한의 인구성장률이1.5%대로 거의 비슷한 수준이었으나 남한에서는 계속 낮아져 1990년대 이후에는 1% 이하로 떨어져 2000년대 이후는 0.5%대 근방에 머무르고 있다. 북한의 인구성장률은 1990년대까지는 남한보다 약간 높았지만 1995년 이후에는 1% 이하로 떨어지고 2010년대에는 0.5%대에 이르면서 남한 수준에 근접하게 되었다.




인구변동요인의 비교

 

  남한과 북한의 인구성장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기 위하여 <표 Ⅰ-11>에 인구변동요인을 출생률, 사망률, 국제인구이동률로 구분하였고, 남한과 북한의 인구변동요인 차이를 도표화한 것이 [그림 Ⅰ-22]이다.
  출생률은 1960년대 중반까지는 남한이 북한 보다 높다가 1960년대 후반부터 북한이 남한보다 높게 나타난다. 1960년대부터 남한에서는 범정부적 가족계획사업이 본 궤도에 오르면서 북한보다 출생률이 낮아지나 북한도 한국전쟁 후 에 생겨난 베이비붐으로 인한 급격한 인구성장이 사회주의 국가건설에 장애가 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출산억제정책을 실시하면서 1970년대 후반부터는 출산율이 낮아지기 시작했다(김두섭 외, 2011; 문호일, 2011; 박경숙, 2013; 이석, 2011).
  전체적으로 남한은 1980년대 전반에 출생률은 인구 1,000명당 20명 수준에 이르고, 합계출산율은 대체수준 2.1을 밑돌았다. 1990년대 전반에 출생률이 약간 상승하기는 했지만 IMF 금융위기로 사회 전반이 위기에 빠지면서 2000년대 전반부터 출생률이 10명 이하로 떨어지고, 합계출산율은 1.3명 수준을 넘지 못하면서 동태통계 작성 이후 최악의 초저출산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사실 2000년대 이후 남한의 초저출산율 체제는 경제위기와 혼인연령 상승, 양육환경 악화, 청년실업 증대 등으로 생겨난 시대 상황을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한편, 북한의 출생률은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 남한보다 높았지만 1990년대 전반부터 천천히 저하하고 있는데, 이것은 1990년대 전반 북한의 식량배급체제가 붕괴할 정도의 큰 자연재난이 발생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홍민,2013). 한국의 통계청과 UN이 2000년대 이후에 추계한 북한의 합계출산율은 여자 1명당 2.0명 수준인데, 북한의 출생률이 빠르게 감소하는 것은 합계출산율 자체의 감소보다는 15-49세 가임여성의 수가 감소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현상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사망률은 1950년대 전반에 북한이 남한보다 높은 수준이었는데, 이것은 한국전쟁으로 인한 인명피해가 북한에서 더 컸음을 의미한다. 195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전반까지도 북한과 남한의 사망률이 거의 비슷한 수준에 있다가 1990년대 후반 북한의 사망률이 상승하면서 남한과 북한의 사망률 차이는 더 커지기 시작한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1990년대에 시작된 ‘고난의 행군’으로 상징되는 재난으로 말미암아 북한의 남녀 평균 기대수명은 1990년대 전반 70.0세에서 1990년 후반에는 63.5세로 급감하였으나, 2000년대 전반에 68.1세로 약간 반등하여 재난 발생 이전 수준에 근접하게 되었다.
  다음은 자연증가율, 곧 출생률과 사망률의 차이를 살펴보자. 1950년대 전반에는 북한이 남한보다 자연증가율이 크게 낮았지만 그 차이가 점점 줄어들어 1970년대 전반에는 역전되어 북한의 자연증가율이 남한을 능가하다가 1970년대 후반에 다시 남한보다 일시적으로 낮아졌다. 그러나 남한의 출산율이 빠른 속도로 떨어지면서 북한의 자연증가율이 남한을 크게 앞지르다가 1990년 후반에는 다시 거의 비슷한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2000년 초반에는 남한의 합계출산율이 사상 최저수준에 이르면서 일시적이나마 남북한의 자연증가율 차이가 커지게 된다.

  마지막으로 국제인구이동이 남북한의 인구성장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겠다. 북한은 한국전쟁이 진행되던 1950년 전반을 제외하고는 폐쇄인구, 곧 순이동률이 제로로 가정되고 있다. 탈북자가 적지는 않으나 북한의 인구변동에 영향을 줄 정도로 큰 것은 아니다(문호일, 2011;이석, 2011). 반면에 남한은 1960년대 전반부터 1980년 이전까지 인구의 해외유출로 남북한 인구성장률의 차이를 줄이는 데 기여하였다.1980년대에는 순유입이 진행되어 남북한 간 차이를 늘리다가 1990년대와 2000년대 전반까지는 다시 해외유출이 진행되었으나 2000년대 후반에는 순유입이 많아지면서 북한과의 인구성장률 차이를 줄이게 되었다.
  최근 남한과 북한의 인구성장률 차이는 빠른 속도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인구변동요인을 보면, 출생률은 북한이 남한보다 높지만 사망률은 남한이 북한보다 낮아서 자연증가율이 비슷한 수준에 있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기할 만한 것은 한국전쟁이 남한과 북한의 인구성장에 큰 영향을 주었지만, 전쟁 이후 베이비붐으로 인한 급격한 성장에 대응하기 위하여 시점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남북한 모두 국가주도의 출산억제정책을 실시하였다는 것이다. 1980년대 이후에도 남한은 경제발전에 힘입어 빠른 속도로 출생률이 감소하면서 북한의 자연증가가 남한보다 빨라지게 되었지만, 북한은 ‘고난의 행군’을 경험하고 남한은 IMF 경제위기를 경험하게 되면서 남북한의 인구성장률은 그 차이가 점점 줄어드는 방향으로 전개되어 왔다.



인구 성비구조의 비교

 

  여자인구 100명당 남자인구가 얼마인지를 말해주는 성비를 살펴보면, 북한의 성비는 꾸준히 개선되어 최근에는 95 수준을 유지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성비구조에 영향을 주는 요인들로는 경제발전, 남성 중심적 규범에 따른 남아선호사상, 남녀 간 차별사망력 등이 있다. 그러나 남북한 성비에 영향을 준 가장 큰 요인은 한국전쟁이다. 북한에서는 이른바 ‘민족해방전쟁’에 종군한 10대 후반에서 20대, 30대의 남자들이 전쟁 중 상당수 사망함으로써 대규모 인력난을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성별 인구구조를 심하게 왜곡시켰다. 1950년대에 전체인구의 성비는 정상성비 100보다 낮은 훨씬 낮은 85 수준에 머물렀으나 꾸준히 개선되어 1995년에는 95에 이르러 최근까지 이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그림 Ⅰ-23).

  반면에, 남한인구의 성비는 거의 60년(1960-2010년) 동안 100에 근접하고 있으며, 1950년대에 100에 약간 못 미친 것은 한국전쟁 기간 중에 여성 대비 남성의 초과사망에 기인한다. 2010년대에 성비가 다시 100을 약간 밑돌기 시작하는데 이는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고령층에서 생존율이 높기 때문이다.




인구 연령구조의 비교

 

  남북한 인구의 연령구조를 살펴보기 위해 <표Ⅰ-12>에는 0-14세(유소년인구), 15-64세(생산가능인구), 65세 이상(고령자인구)의 연령집단으로 구분하여 각 집단이 전체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제시하였다.
  유소년인구의 비율은 1950-2015년의 65년간에 북한은 43.4%에서 20.5%로 감소하고 남한은 42.5%에서 13.9%로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전반적으로 북한이나 남한 모두 감소의 속도가 대단히 빠른 편인데, 1955-1970년까지는 북한이 남한보다 유소년인구의 비율이 낮은 것으로 나타나고 1975년 이후에는 북한이 남한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남한은 1960년대와 1970년대에 범국가적 가족계획사업으로 유소년인구의 구성비가 급감하였다. 그 이후에도 유소년인구의 구성비가 계속 감소하였는데 이는 1980년대 중반 이후에 합계출산율이 대체수준 2.0명을 밑돌다가 2000년 중반에는 1.3명을 밑도는 초저출산의 인구체제가 출현하였기 때문이다.

 


  생산가능연령대(15-64세)의 인구가 전체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950-2015년의 65년 동안에 북한은 53.5%에서 70%에 근접하게 되고, 남한은 54.6%에서 73.0%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난다. 현재 남한은 노동력 공급 측면에서 여전히 성장잠재력이 있는 인적자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고용 없는 성장’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응하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북한의 경우도 남한과 마찬가지로 최근 20여 년간 노동력 공급이 사실상 최고에 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형식적으로 고용이 있기는 하지만 기근피해나 사회주의 경제의 비효율성 때문에 성장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방식으로 경제가 운영되고 있다는 점에서 북한 사회의 개혁 및 개방에 대한 다양한 구상을 제안할 필요가 있다.
  고령자, 곧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950-2015년의 기간에 북한은 1950년 3.1%에서 지속적으로 상승하여 2010년에는 9.0%로 고령화사회의 문턱을 넘어섰고 2015년에는 10%를 넘을 것으로 보인다. 남한은 고령자인구의 비율이 1950년의 2.9%에서 1980년까지는 4%를 밑돌다가 1990년 이후에 급속히 상승하기 시작하여 2000년에는 북한보다 일찍이 7%를 넘어섰으며, 2015년에는 13.1%로 고령사회에 접어들어 사회정책의 대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부양인구의 비교

 

  이제 남북한의 총부양인구 구조가 어떻게 변해 왔는지를 검토해 보기로 한다. 총부양인구비의 분모인구는 생산활동 또는 경제활동이 가능한 15-64세 연령대의 인구이다. 북한의 경우 의무교육이 끝나고 16세부터 경제활동에 종사 할 수 있도록 되어 있지만, 남북한 비교가 가능하도록 15-64세 인구를 분모인구로 설정하였다. 총부양인구비의 분자인구인 피부양인구는 0-14세의 유소년과 65세 이상의 고령자를 합한 인구이다.

남한의 총부양비는 1950년의 83에서 약간의 변화가 있기는 하지만 1965년에 87로 높아졌다가 이후 본격적으로 저하하여 2010년에는 38에이른다. 1960년대 후반 이후 남한의 총부양비 변화는 사실상 합계출산율 저하에 따른 유소년인구의 감소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북한의 총부양비는 1950년의 87에서 1965년에는 67로 떨어졌다가 다시 상승하여 1970년에 81에 이른 후 계속 하락하여 1990년에 45로 최저점에 이르렀다가 약간씩 상승한다. 이러한 변화는 앞에서 보았듯이, 1990년대 이전에는 주로 유소년인구의 변화 때문에 발생하고 1990년대 이후에는 주로 65세 이상의 고령자인구의 변화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한국의 사회동향 2014 '남한과 북한의 인구성장 및 인구구조의 비교', 통계개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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