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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 사회

달콤함의 눈물, 초콜릿의 두 얼굴: 코코아 없이 초콜릿을 만드는 시대가 온다

인류가 가장 사랑하는 기호품 중 하나인 초콜릿. 그 달콤함 뒤에는 아동 노동 착취, 불공정한 빈곤, 그리고 심각한 환경 파괴라는 쓰디쓴 진실이 숨어있다. 전 세계 코코아의 약 70%를 생산하는 서아프리카의 농부들은 하루 1달러도 채 벌지 못하는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며, 수백만 명의 아동들이 학교 대신 카카오 농장에서 위험한 노동에 내몰리고 있다. 초콜릿을 위한 카카오 재배는 열대우림을 파괴하는 주범으로 지목된 지 오래다.

 

여기에 기후 변화는 이 위기를 더욱 가속하고 있다. 지구 온난화로 카카오를 재배할 수 있는 지역은 점점 더 좁아지고 있으며, 2050년에는 현재 재배지의 절반 이상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경고까지 나온다. 이는 코코아 가격의 폭등으로 이어져, 이미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을 넘어선 '코코플레이션(cocoflation)'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이처럼 지속 불가능한 '달콤함의 대가'에 대한 문제의식이 커지면서, 과학계와 식품업계는 혁신적인 대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바로 카카오 열매 없이, 즉 '코코아 없이(Cocoa-free)' 초콜릿을 만드는 기술이다.

 

 

대안의 탄생: '코코아 프리' 초콜릿 혁명

 

코코아 프리 초콜릿은 더 이상 공상과학이 아니다. 전 세계 푸드테크 스타트업들은 첨단 기술을 활용하여 환경과 윤리의 문제로부터 자유로운, 지속 가능한 초콜릿을 현실로 만들고 있다.

 

1. 핵심 기술 : '정밀 발효(Precision Fermentation)'

 

코코아 프리 초콜릿의 핵심은 '정밀 발효' 기술에 있다. 이는 미생물(효모 등)을 일종의 '세포 공장'으로 활용하여 특정 성분을 만들어내는 기술이다.

 

원리 : 과학자들은 먼저 초콜릿의 복합적인 맛과 향을 내는 핵심 분자 구조를 분석한다. 그리고 보리, 캐롭(Carob), 포도씨 등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는 식물성 원료를 효모와 같은 미생물을 이용해 발효시킨다. 이 과정에서 미생물은 원료를 분해하고 재조합하여, 실제 코코아에 들어있는 것과 동일하거나 유사한 맛과 향의 분자를 만들어낸다.

 

장점 : 이 기술을 이용하면 토지 개간 없이, 훨씬 적은 양의 물과 에너지만으로 초콜릿 원료를 대량 생산할 수 있다. 당연히 아동 노동이나 불공정 거래 문제에서도 자유롭다.

 

 

윈윈 푸드 랩스 홈페이지 / www.eatwinwin.com

 

2. 혁명을 이끄는 기업들

 

윈윈 푸드 랩스 (WNWN Food Labs, 영국) : '낭비 없이, 승리만(No Waste, No Win)'이라는 이름의 이 영국 스타트업은 코코아 프리 초콜릿의 선두주자다. 이들은 보리와 지중해 연안의 식물인 캐롭을 주원료로, 전통적인 발효 기술과 정밀 발효 기술을 결합하여 코코아와 똑같은 맛과 향을 재현해냈다. 이들이 만든 초콜릿은 기존 초콜릿보다 탄소 배출량이 80% 적고, 물 사용량은 90%나 적다고 한다.

 

보이지 푸드 (Voyage Foods, 미국) : 빌 게이츠가 투자한 것으로도 유명한 미국의 푸드테크 기업이다. 이들은 포도씨, 해바라기씨, 카카오 껍질 등 농업 부산물을 활용하여 코코아 버터와 유사한 지방을 만들고, 이를 통해 초콜릿을 생산한다. 초콜릿뿐만 아니라 땅콩 없이 만드는 땅콩버터, 헤이즐넛 없이 만드는 누텔라풍 스프레드 등 지속 가능한 대체 식품을 개발하고 있다.

 

누카카오 (NuCacao, 독일) : 전통적인 초콜릿 제조법을 재해석하여 지속 가능한 대안을 찾는 독일의 스타트업이다. 이들은 중남미의 잘 알려지지 않은 식물이나 과일 등을 활용하여 새로운 맛과 질감의 '코코아 프리' 초콜릿 바를 만들고 있다.

 

KOTRA

 

'초콜릿의 본고장' 스위스의 반격 :

 

전통적인 초콜릿 강국 스위스 역시 이 혁신에 뛰어들었다.

 

미그로스 (Migros) : 스위스 최대 유통기업인 미그로스는 자사의 스타트업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을 통해 귀리와 해바라기씨 가루를 주원료로 한 코코아 프리 초콜릿을 개발했다. 이 제품은 'Food For Future'라는 브랜드로 이미 현지에서 판매되고 있으며, 전통적인 로스팅 및 분쇄 기술을 활용하여 코코아의 풍미를 재현한 것이 특징이다.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 (ETH Zurich) : 식품공학과 연구팀은 캐롭, 견과류 페이스트 등을 활용하여 기존 초콜릿과 거의 구별이 불가능한 수준의 코코아 프리 초콜릿 개발에 성공했다. 이들은 정밀 발효가 아닌, 원재료의 조합과 전통 가공법만으로 맛을 구현하여 주목받고 있다.

 

www.fortunebusinessinsights.com

 

 

미래의 초콜릿 : 지속 가능한 달콤함을 향하여

 

2022년 기준 글로벌 코코아 및 초콜릿 시장 규모는 약 489억 2천만 달러(약 67조 원)이며, 2030년에는 685억 4천만 달러(약 94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코코아 프리 초콜릿 시장은 아직 걸음마 단계지만, 그 성장 잠재력은 무한하다.

 

물론 해결해야 할 과제도 있다. 아직은 생산 단가가 높아 기존 초콜릿보다 가격이 비싸고, 대량 생산 체제를 갖추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 또한, '코코아 없이 만든 초콜릿을 과연 진짜 초콜릿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을 바꾸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하지만 환경과 윤리를 중시하는 가치 소비가 전 세계적인 메가 트렌드로 자리 잡은 지금, 코코아 프리 초콜릿은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 될 것이다.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는 마트 진열대에서 '서아프리카산 카카오 70%' 초콜릿과, '스위스 연구실에서 귀리로 만든 코코아 프리 70%' 초콜릿을 나란히 두고 고민하게 될지도 모른다.

 

'착한 소비'를 넘어 '필수적인 소비'가 될 지속 가능한 달콤함. 코코아 프리 초콜릿 혁명은, 우리가 사랑하는 음식을 어떻게 지켜낼 수 있는지에 대한 인류의 가장 맛있는 대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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