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7일은 미국에서 지정한 '전국 줄다리기의 날(National Tug-of-War Day)'이다. 운동회 날이면 으레 등장하는, 단순하고 원초적인 이 힘겨루기 놀이에 기념일까지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엉뚱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줄다리기의 역사를 깊이 들여다보면, 이 놀이가 단순한 스포츠를 넘어 한 공동체의 운명과 염원, 그리고 시대의 정신까지 담아낸 유서 깊은 '문화적 의례'였음을 발견하게 된다.

줄다리기의 기원 : 신에게 풍요를 기원하다
줄다리기의 정확한 시작점을 특정하기는 어렵지만, 그 흔적은 고대 문명 곳곳에서 발견된다. 약 4,000년 전 고대 이집트의 무덤 벽화에는 이미 줄다리기와 유사한 힘겨루기 장면이 그려져 있고, 고대 그리스와 인도에서도 근력을 단련하기 위한 훈련의 일환으로 줄다리기를 행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특히 동아시아 농경문화권에서 줄다리기는 단순한 놀이가 아닌, 한 해의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신성한 의례였다.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문헌에 등장하는 '발하(拔河)'는 군사 훈련이자 농경 의식이었으며, 우리나라 역시 삼국시대부터 마을 공동체가 모두 참여하는 대동놀이로 줄다리기가 전해져 내려왔다.
사회학적 의미 : 우리는 왜 밧줄을 당기는가
줄다리기는 그 어떤 스포츠보다 강력한 사회적 상징을 내포하고 있다.
1. 공동체의 결속과 운명을 건 대리전
과거 농경사회에서 개인의 힘은 미약했다. 모내기, 김매기, 추수 등 모든 농사일은 마을 전체가 힘을 합쳐야만 '제때' 끝낼 수 있었다. 줄다리기는 바로 이 공동체적 협력의 정신을 상징적으로 재현하는 행위였다.

5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충남 당진의 '기지시 줄다리기'가 그 대표적인 예다. 이곳의 줄다리기는 육지에 사는 '숫줄'과 바다에 사는 '암줄'을 결합하는 의식으로 시작되는데, 이는 풍농(豐農)과 풍어(豐漁)를 동시에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육지가 이기면 풍년이 들고, 바다가 이기면 풍어가 든다"는 믿음 속에서, 마을 사람들은 밧줄을 당기며 공동체의 안녕과 번영을 한마음으로 기원했다. 단순한 승패를 넘어, 마을의 운명을 건 대리전을 치른 셈이다.
2. 생명과 다산을 향한 원초적 염원
많은 아시아 지역의 줄다리기에서, 밧줄은 단순히 도구가 아닌 신성한 상징물로 여겨진다. 암줄과 숫줄의 결합은 남성과 여성의 결합, 즉 생명의 탄생과 다산(多産)을 의미했다. 벼농사 문화권에서 풍요로운 수확을 기원하는 이 원초적인 염원이, 줄다리기라는 집단 의례 속에 깊숙이 녹아든 것이다. 이러한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2015년에는 한국, 베트남, 캄보디아, 필리핀 4개국의 줄다리기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공동 등재되기도 했다.
3. 현대 사회의 '팀워크' 은유
오늘날 줄다리기는 기업 워크숍이나 군대의 단합대회에서 빠지지 않는 단골 종목이다. 이는 줄다리기가 '집단 협력'의 본질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개개인의 힘이 아무리 강해도, 모두가 한 방향으로 힘의 균형을 맞추고, 리더의 구령에 맞춰 동시에 힘을 폭발시키지 않으면 승리할 수 없다. 이는 현대 조직이 추구하는 협동과 조직력 강화의 완벽한 은유로 작동한다.
스포츠로서의 줄다리기와 흥미로운 에피소드
이 원초적인 힘겨루기는 한때 올림픽 무대에 서기도 했다.
▲ 올림픽 정식 종목의 영광과 좌절
줄다리기는 1900년 파리 올림픽부터 1920년 앤트워프 올림픽까지 무려 20년간 올림픽 정식 종목이었다. 당시에는 국가대표팀이 아닌, 경찰서나 소방서, 군부대 같은 강력한 클럽 팀들이 자국의 명예를 걸고 출전했다. 하지만 1908년 런던 올림픽 당시, 우승팀이었던 영국 리버풀 경찰팀이 일반 신발이 아닌, 땅에 박히는 스파이크가 달린 특수 제작 신발을 신고 나와 큰 논란을 빚었다. 이러한 규칙의 불분명성과 판정 시비가 계속되면서, 줄다리기는 1920년을 마지막으로 올림픽 무대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현재 국제줄다리기연맹(TWIF)을 중심으로 올림픽 복귀를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오징어 게임』과 줄다리기의 재발견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 펼쳐진 고공 줄다리기 장면은 전 세계인에게 줄다리기가 단순한 힘겨루기가 아닌, 고도의 전략과 심리가 필요한 게임임을 강렬하게 각인시켰다. "오영감"의 전략처럼, 힘의 열세를 지혜와 협동으로 극복하는 모습은 줄다리기가 가진 본질적인 매력을 전 세계에 다시 한번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결론적으로, 줄다리기는 인류의 가장 오래된 놀이이자 스포츠 중 하나다. 밧줄 하나에 공동체의 운명을 걸고 풍요를 기원했던 고대의 주술적 의례에서부터, 올림픽 무대 위 국가의 명예를 건 치열한 경쟁, 그리고 현대 조직의 팀워크를 상징하는 은유에 이르기까지. 굵은 밧줄을 사이에 두고 마주 선 사람들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 속에는, 시대를 관통하는 인간 사회의 협력과 갈등, 그리고 염원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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