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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 사회

F1 서킷에 관한 이야기

포뮬러 1(F1)의 매력은 단순히 세계에서 가장 빠른 자동차 경주라는 점에만 있지 않다. 매 경기마다 전혀 다른 풍경과 특징을 가진 서킷을 무대로, 드라이버와 머신, 그리고 팀의 전략이 한데 어우러져 한 편의 드라마를 만들어낸다는 점이야말로 F1을 특별하게 만든다.

 

www.nationwidevehiclecontracts.co.uk

 

모나코의 좁고 화려한 시가지부터 스파-프랑코샹의 숲속을 가로지르는 고속 코너까지, F1 서킷은 저마다의 독특한 개성과 역사를 자랑한다. 그렇다면 이 위대한 무대들은 과연 누가, 어떤 조건으로 만들어내는 것일까?

 

 

서킷 디자인의 주체: '틸케'라는 이름의 제국

 

F1 서킷 디자인의 역사는 크게 두 시대로 나뉜다. 1970년대까지 몬차, 실버스톤 같은 전통적인 서킷들은 대부분 기존의 일반 도로를 활용하거나 지역적 특성을 반영해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별도의 '설계자' 개념이 희박했던 시대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F1이 글로벌 스포츠로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서킷 디자인은 하나의 전문 분야가 되었다. 그리고 이 현대 F1 서킷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독일 출신의 엔지니어 헤르만 틸케(Hermann Tilke)다.

 

헤르만 틸케(Hermann Tilke) / www.businessinsider.com

 

그는 1990년대 이후 F1 캘린더에 새롭게 추가된 거의 모든 서킷을 설계했다. 중국 상하이, 바레인, 아부다비, 미국 오스틴, 싱가포르 등 우리가 TV에서 보는 대부분의 현대적인 서킷이 그의 작품이다. 그의 디자인은 긴 직선 구간과 급감속이 필요한 헤어핀 코너를 조합하여 추월 기회를 인위적으로 만들어내고, 최신식 관람 편의시설을 갖춰 상업적 성공을 거두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물론, "틸케의 서킷은 너무 획일적이고 개성이 없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하지만 FIA(국제자동차연맹)가 요구하는 까다로운 안전 기준을 완벽하게 충족시키면서 흥행까지 보장하는 그의 능력 덕분에, F1 서킷 디자인의 세계는 한동안 '틸케 제국'이라 불릴 만큼 그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F1 서킷이 되기 위한 까다로운 조건

 

F1 경기를 유치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멋진 트랙만 있어서는 안 된다. FIA가 규정한 가장 높은 안전 등급인 '그레이드 1(Grade 1)' 라이선스를 획득해야만 한다. 그 조건은 상상 이상으로 까다롭다.

 

◆ 트랙 규정

 

길이 : 보통 한 바퀴(랩) 당 3.5km에서 7km 사이여야 한다.

 

직선 구간 : 머신의 최고 속도를 테스트하고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최소 800m 이상의 긴 직선 구간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코너 : 드라이버와 머신의 다양한 성능을 시험할 수 있도록 최소 10개 이상의 다양한 코너가 조합되어야 한다.

 

  안전 시설

 

런오프 구역(Run-off Area) : 고속 코너나 직선 구간 끝에는 차량이 코스를 이탈했을 때 안전하게 감속하고 멈출 수 있도록 매우 넓은 아스팔트 또는 자갈밭 안전지대가 필수적이다.

 

방호벽 : 충격 흡수에 탁월한 '테크프로(TecPro)' 배리어나 타이어 배리어 등을 FIA 규정에 맞춰 정밀하게 설치해야 한다.

 

  부대 시설

 

피트(Pit) : F1에 참가하는 모든 팀(보통 10~12개 팀)이 최소 2대의 머신을 동시에 정비할 수 있는 넓은 피트 박스와 차고가 확보되어야 한다.

 

의료 및 관중 시설 : 응급 수술이 가능한 전용 의료센터와 헬리콥터 이착륙장은 필수이며, 수만에서 수십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관람석과 원활한 교통 인프라를 갖춰야 한다.

 

www.hankookandcompany.com

 

단순한 경주를 넘어선 도시의 축제

 

이 모든 물리적 조건을 갖추었다고 해서 F1을 유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개최 도시나 국가는 F1 운영사인 FOM(Formula One Management)에 매년 수천만 달러에서 1억 달러(약 1,380억 원)에 달하는 막대한 개최권료(Hosting Fee)를 지불해야 한다. 이 때문에 국가 차원의 지원 없이는 F1 유치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도시들이 F1 유치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F1이 단순한 스포츠를 넘어 도시 전체를 홍보하고 관광 산업을 활성화하는 최고의 '축제'이기 때문이다. 모나코, 싱가포르, 라스베이거스처럼 화려한 도심의 야경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스트리트 서킷(Street Circuit)' 레이스는 그 도시를 전 세계 수억 명의 시청자에게 각인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마케팅 수단이다.

 

결국 하나의 F1 서킷은 최첨단 기술력, 천문학적인 자본, 그리고 그 도시의 정체성이 한데 어우러진, 현대 엔지니어링과 스포츠 엔터테인먼트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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