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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솜사탕 탄생에는 치과의사가 있다!?

세상에는 믿기 힘든 아이러니가 존재한다. 폐암의 위험성을 경고해야 할 의사가 담배 광고에 등장하거나, 평화주의자가 무기를 발명하는 식이다.

 

하지만 우리가 축제 현장에서 흔히 마주하는 '솜사탕'의 역사만큼 독특한 역설도 드물 것이다. 아이들의 치아 건강을 책임지고 충치 예방의 최전선에 서 있어야 할 치과의사가, 사실은 설탕 덩어리 그 자체인 솜사탕을 대중화시킨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솜사탕은 어떻게 발명되었나? / www.britannica.com

 

윌리엄 모리슨, 충치 제조기를 발명하다

 

솜사탕의 기원을 추적하면 1897년 테네시주 내슈빌의 한 실험실에 닿는다. 이곳에서 치과의사 *리엄 J. 모리슨(William J. Morrison)은 제과업자 존 C. 와튼(John C. Wharton)과 함께 기묘한 기계를 하나 개발한다.

 

회전하는 원판의 원심력을 이용해 녹은 설탕을 가느다란 실 형태로 뽑아내는 '전기 설탕 기계'.

 

치과의사가 사탕 기계를 만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당대에도 화제였겠지만, 모리슨은 단순한 치과의사가 아니었다. 그는 테네시주 치과의사 협회장을 역임할 정도로 업계에서 신망이 두터운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설탕을 공기처럼 가볍게 만들어 입안에서 사르르 녹게 하는, 즉 치아 구석구석에 당분이 가장 잘 달라붙게 만드는 '충치 유발 최적화' 간식을 세상에 내놓은 것이다.

 

 

‘페어리 플로스’에서 ‘코튼 캔디’로

 

이들이 만든 간식은 1904년 세인트루이스 세계 박람회에서 처음으로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당시 이름은 ‘페어리 플로스(Fairy Floss)’, 즉 ‘요정의 실’이었다.

 

박람회 기간 동안 6만 개가 넘는 상자가 팔려나갔고, 오늘날 가치로 환산하면 수억 원에 달하는 매출을 올리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아이러니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1921년, 또 다른 치과의사 요제프 라스코(Josef Lascoux)가 기존 기계를 개량하면서 우리가 지금 부르는 ‘코튼 캔디(Cotton Candy)’라는 이름을 붙였다. 솜사탕의 탄생부터 명명, 대중화에 이르기까지 모든 결정적인 장면에는 치과의사의 손길이 닿아 있었던 셈이다.

 

1904년 세인트루이스 세계 박람회 / www.historyhit.com

 

고대 설탕 공예의 기계화, 그리고 비즈니스

 

물론 솜사탕의 원형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15세기 이탈리아에서는 이미 설탕을 녹여 포크로 실을 뽑아내 장식하는 설탕 공예가 존재했다.

 

하지만 이는 숙련된 장인의 손길과 엄청난 노동력이 필요한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다. 모리슨과 라스코 같은 치과의사들이 이 고난도의 공예를 기계화함으로써, 누구나 저렴한 가격에 '입안의 폭탄'을 즐길 수 있는 시대를 열었다고 보는 것이 보다 정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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