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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 사회

'전염병 6년 주기설'이라는 허상

전 세계의 일상을 마비시켰던 코로나19 팬데믹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최근 온라인과 일부 커뮤니티는 물론 언론 매체에서도 이른바 ‘전염병 6년 주기설’이 심심치 않게 오르내리고 있다.

 

과거 대규모 전염병의 발병 시기를 역추적해 보니 약 6년을 주기로 큰 위기가 찾아왔다는 것인데, 이러한 이야기들이 확산되는 배경에는 아무래도 바이러스에 대한 대중의 높아진 경각심과 집단적 트라우마가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1. 주기설이 도는 배경과 그들이 제시하는 근거

 

이 주기설이 대중의 관심을 끄는 가장 큰 이유는 한국 사회가 체감했던 굵직한 감염병 위기들이 우연의 일치처럼 약 5~6년 간격으로 발생했기 때문이다. 주기설을 주장하는 이들이 제시하는 타임라인은 다음과 같다.

 

- 2003년: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 유행

 

- 2009년: 신종플루(H1N1) 대유행 (사스 발병 6년 후)

 

-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 (신종플루 발병 6년 후)

 

- 2019년 말~2020년: 코로나19(COVID-19) 팬데믹 시작 (메르스 발병 4~5년 후)

 

주기설의 옹호자들은 21세기 들어 교통의 비약적인 발달로 인한 초연결 사회 진입,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야생동물 서식지 파괴, 기후변화 등이 맞물리면서 새로운 인수공통전염병이 등장하고 전 세계로 확산하는 주기가 대략 6년 안팎으로 좁혀졌다고 주장한다.

 

이를 바탕으로 코로나19 유행 이후 5~6년이 지나는 시점인 2025년이나 2026년에 또 다른 대규모 감염병이 올 수 있다는 설명이다.

 

 

 

2. 맹신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와 전문가들의 시각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러한 6년 주기설을 과학적 근거가 결여된 ‘우연의 일치’이자 확증 편향으로 진단한다. 인간이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공포를 통제하기 위해 무작위적인 사건들 속에서 억지로 규칙(패턴)을 찾아내려는 심리적 현상에 가깝다는 것이다.

 

가장 큰 맹점은 기준의 자의성이다.

 

2015년 메르스 사태의 경우, 전 세계적인 대유행(팬데믹)이라기보다는 중동 지역과 한국 등 특정 국가에 국한된 감염병이었다. 또한 에볼라 바이러스나 지카 바이러스 등 그사이에 있었던 다른 위협적인 전염병들은 이 주기에서 교묘하게 배제되어 있다.

 

바이러스는 달력을 보며 활동하지 않으며, 돌연변이의 발생과 인간 사회로의 전파 시점을 특정 주기로 계량화하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불가능하다.

 

 

COVID-19의 전 세계적인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지 6년이 지났다: 세계는 다음 팬데믹에 더 잘 대비하고 있나? / www.who.int

 

3. 해외 주요 기관 및 매체의 팩트체크

 

실제로 세계적인 보건 기관이나 주요 해외 매체 그 어디에서도 ‘팬데믹 주기설’을 과학적 사실로 언급하는 사례는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단순한 가정을 배척하는 것에 가깝다.

 

▲ 영국 가디언(The Guardian, 2025.1): 감염병 전문가들의 의견을 인용하여 "다음 팬데믹은 언제든 다시 올 수 있지만, 그 시기나 특정한 주기는 결코 예측할 수 없다"고 선을 긋는다.

 

▲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 JHU Hub(2025.3): "우리는 이미 일상적인 팬데믹의 시대에 살고 있으며, 기후변화와 글로벌 이동의 증가로 인해 발병 위험 자체가 커진 상태"라고 분석할 뿐, 연도별 주기를 특정하지 않았다.

 

▲ 세계보건기구(WHO): 2025~2026년에 걸쳐 배포한 팬데믹 관련 논평과 보도자료에서도 회원국 간의 팬데믹 조약(Pandemic Treaty), 질병 감시체계 강화, 백신 형평성 등 ‘철저한 준비’만을 강조할 뿐, "몇 년 주기로 온다"는 표현은 철저히 배제하고 있다.

 

 

 

‘전염병 6년 주기설’은 과학적 진리라기보다는,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재난을 겪은 현대인들이 느끼는 깊은 불안감의 투영이다. 우리가 이 주기설에서 취해야 할 진정한 교훈은 '특정 연도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다.

 

다음 팬데믹은 내일 당장 올 수도, 수십 년 후에 올 수도 있다. 따라서 주기설이라는 숫자에 얽매이기보다는, 언제 찾아올지 모를 미지의 감염병(Disease X)에 대비해 방역 체계를 정비하고 지속 가능한 보건 환경을 구축하는 사회적 노력이 훨씬 더 중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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