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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 사회

김정은, 주석 자리를 만지작거리는 이유

선대의 그림자를 지우고 '김정은 제국'의 홀로서기를 선포하다

 

최근 북한 내부에서 심상치 않은 기류가 포착되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할아버지 김일성과 아버지 김정일의 업적을 우회적, 혹은 직접적으로 깎아내리는 듯한 발언과 행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통일 노선의 완전한 폐기, 조국통일3대헌장기념탑 철거 등은 선대(先代)의 가장 핵심적인 유훈을 뒤집는 파격적인 조치였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선대 지우기'의 최종 목적지가 바로 북한 권력의 최고 정점, '국가주석(주석)' 자리의 부활일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예측하고 있다. 오직 김일성 한 사람에게만 허락되었던 영성한 성역, 주석 자리를 김정은이 다시 만지작거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1. 사회주의 국가의 '주석(主席)'이 갖는 의미와 권력

 

'주석'은 본래 회의를 주재하는 수석 자리라는 뜻이지만,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당과 국가를 총괄하는 최고 영도자(국가원수)를 의미한다.

 

현재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 베트남의 또 람 국가주석 등이 대표적이다. 이 국가들에서 주석은 단순한 행정 수반을 넘어, 대내외적으로 국가를 대표하고 군 통수권을 쥐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상징한다. 특히 시진핑 주석의 경우, 헌법 개정을 통해 주석 임기 제한을 철폐하며 장기 집권과 1인 독재 체제를 완성하는 핵심 장치로 이 직함을 활용했다.

 

북한에서의 주석제는 1972년 '사회주의 헌법' 채택과 함께 신설되었다. 이 자리는 오직 김일성을 위해 맞춤 제작된 제왕적 직위였다. 입법, 사법, 행정을 모두 장악하는 절대 권력이었다. 그러나 1994년 김일성 사망 후, 1998년 헌법 개정을 통해 김일성을 '영원한 주석'으로 추대하며 주석제를 사실상 폐지했다. 이후 김정일은 '국방위원장'으로, 김정은은 '국무위원장'이라는 우회적인 직함으로 국가를 통치해 왔다.

 

 

2. 김정은이 주석을 노리는 배경과 이유

 

김일성을 '영원한 주석'으로 모셔둔 북한 체제에서, 손자인 김정은이 그 자리를 차지하려는 것은 북한의 체제 근간을 흔드는 모험이다. 그럼에도 이 카드를 꺼내 든 배경에는 명확한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

 

① '유훈 통치'의 종료와 '김정은주의'의 완성

 

집권 초기, 20대의 어린 나이였던 김정은은 할아버지의 외모와 향수를 흉내 내며 권력의 정통성을 확보해야만 했다. 아버지의 '유훈(남겨진 가르침)'을 받드는 효성스러운 후계자의 모습이 필요했다. 하지만 집권 10년을 넘긴 지금, 그는 더 이상 조상의 후광이 필요 없다고 판단한 듯하다.

 

과거의 경제 실패나 비현실적인 통일 정책을 선대의 탓으로 은근슬쩍 돌리면서, "이제는 나의 새로운 길(적대적 두 국가론 등)을 가겠다"는 선언을 하고 있다. 주석 등극은 곧 '김정은주의'라는 독자적 사상 체계의 완성을 알리는 화룡점정이다.

 

② 정상국가 코스프레와 외교적 격(格)의 일치

 

국제 무대에서의 '격'도 중요한 요인이다. 현재 김정은의 직함은 '국무위원장(Chairman of the State Affairs Commission)'이다. 반면 그가 주로 상대하는 중국의 시진핑, 러시아의 푸틴은 모두 '주석(President)' 혹은 '대통령(President)'이다.

 

북한을 비정상적인 병영 국가(국방위원장 체제)에서 정상적인 사회주의 국가 체제로 전환하고, 중국이나 러시아 등 동맹국 정상들과 완벽히 동등한 외교적 지위를 과시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는 '국가주석'이라는 직함이 훨씬 유리하다.

 

 

③ 권력 누수 차단과 완벽한 1인 지배 체제 구축

 

최근 북한의 경제난과 대북 제재 장기화로 인해 내부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이럴 때 독재자는 권력을 더욱 중앙으로 집중시키는 경향이 있다. '영원한 주석'이라는 신화적 족쇄를 풀고 자신이 그 자리에 오름으로써, "현재 살아있는 절대 권력은 오직 나 하나뿐"이라는 공포와 충성을 내부 엘리트들과 주민들에게 각인시키려는 의도다.

 

2004년 김일성주석 서거 10주기 중앙추도대회

 

3. 향후 전망: 개헌의 타이밍을 재다

 

주석제 부활을 위해서는 반드시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 최근 북한은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헌법을 개정하고 통일 관련 조항을 삭제하는 등 체제 정비를 서두르고 있다.

 

다만, '김일성=영원한 주석'이라는 지난 수십 년간의 세뇌를 하루아침에 뒤집는 것은 북한 내 보수 엘리트층이나 일반 주민들에게 엄청난 인지 부조화와 반발을 부를 위험이 있다. 따라서 당장 내일 주석에 오르기보다는, 선대의 오류를 지적하는 사상 교양 작업을 점진적으로 진행하며 명분을 쌓을 것이다.

 

그 과정이 무르익고, 대내외적으로 자신의 권위를 극대화할 수 있는 결정적 시점(예: 중대한 무기 개발 성공, 혹은 극적인 외교적 성과 등)이 오면, 북한은 헌법 개정을 통해 '제2대 국가주석 김정은'의 탄생을 선포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김정은의 주석직 만지작거리기는 단순한 호칭 변경이 아니다. 그것은 수십 년간 이어져 온 김일성·김정일 시대의 마침표이자,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무소불위의 '김정은 제국'이 공식 출범한다는 신호탄이다. 선대의 묘비 위에 자신의 왕좌를 세우려는 젊은 독재자의 위험한 도박이 북한 내부에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국제사회는 긴장 속에서 주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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