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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 사회

이름부터 짓고 밀어붙이는 중국

'근북극국가'에서 '남중국해'까지, 명칭으로 세계 질서를 바꾸려는 시도

 

몇 년 전부터 중국은 스스로를 '근북극국가(Near-Arctic State)'라 칭하며 북극 이사회에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북극에 직접적인 해안선이 없는 국가가 스스로 '북극에 가깝다'는 새로운 지정학적 이름을 부여한 것이다. 이는 북극해 항로와 자원에 대한 영향력을 확보하려는 중국의 야심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북극 침략 -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집중함에 따라 중국은 극지 경로를 추구 한다 / ipdefenseforum.com

 

 

이처럼 중국은 역사적으로, 그리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먼저 이름을 짓고, 그 이름을 기정사실화하여 현실을 바꾸는' 강력한 명명(命名) 전략을 구사해왔다. 이는 단순한 수사를 넘어, 영유권 주장을 공고히 하고, 외교적 프레임을 선점하며, 자국의 패권적 질서를 관철하려는 고도로 계산된 정치 행위다.

 

 

 

 

www.abc.net.au

 

1. 외교의 틀을 짜다: '하나의 중국' 원칙

 

중국의 명명 전략 중 가장 성공적이고 강력한 사례는 단연 '하나의 중국(一個中國)' 원칙이다. 중국은 대만을 독립 국가 'Taiwan'으로 인정하지 않고, "중국과 분리될 수 없는 일부"라고 호명하며 이 원칙을 수교의 전제 조건으로 전 세계에 강요한다. 이 프레임을 통해, 대만 문제는 국제 사회에서 '국가 대 국가'의 문제가 아닌 '중국의 내정 문제'로 인식되도록 만들었다. '하나의 중국'이라는 이름 자체가, 대만을 외교적으로 고립시키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된 것이다.

 

 

 

 

 

이름에는 무엇이 들어 있나 ? 남중국해에서는 정말 많다 / www.japantimes.co.jp

 

2. 바다에 이름표를 붙이다: 남중국해 영유권 전략

 

중국은 남중국해(南海)와 동중국해(東海)의 수많은 섬과 암초, 해저 지형에 체계적으로 중국식 명칭을 부여하고, 이를 공식 지도에 표기하여 전 세계에 공표하고 있다. 베트남이나 필리핀 등 주변국과 영유권 분쟁을 겪고 있는 지역에 일방적으로 자국의 이름표를 붙이는 행위다. 이는 단순히 이름을 바꾸는 것을 넘어, 해당 지역을 자국의 행정구역으로 편입하고 실효 지배를 강화하며, 향후 국제사법재판소 등 법적 분쟁에서 유리한 근거를 쌓으려는 치밀한 사전 작업이다.

 

 

 

 

 

 

politicsforindia.com

 

3. 지도 위에서 벌어지는 국경 전쟁: 인도와의 갈등

 

중국은 인도와 국경을 맞댄 히말라야 지역에서도 명명 전략을 구사한다. 인도가 실효 지배하고 있는 인도 북동부의 아루나찰프라데시(Arunachal Pradesh) 주를, 중국은 '남티베트(South Tibet)' 또는 '장난(Zangnan)'이라는 자국의 역사관이 반영된 이름으로 부르며 공식 지도에 표기한다. 최근에는 이 지역의 산봉우리, 강, 마을 등 11곳의 지명을 표준화했다며 일방적으로 중국식 명칭을 발표했다. 이는 인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강화하고, 티베트 문제와 연계하여 국내외에 '이 땅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라는 인식을 각인시키려는 전략적 언어 행동이다.

 

 

 

 

 

 

www.forbes.com

 

4. 거대한 이름, 거대한 야망: '구단선'과 '일대일로'

 

사실 오랜 과거부터 중국의 명명 전략은 영토를 넘어, 자국의 지정학적 야망을 포장하는 데에도 탁월하게 사용되어 왔다.

 

구단선(九段线, Nine-Dash Line): 남중국해 대부분을 U자 형태로 둘러싼 9개의 선으로, 중국은 이 선 안의 모든 해역이 역사적으로 자국의 영해라고 주장한다. 국제 상설중재재판소(PCA)가 2016년 국제법상 근거가 없다고 판결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이 '구단선'이라는 이름을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영유권 주장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고 있다.

 

일대일로(一带一路, Belt and Road Initiative): 중앙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실크로드 경제벨트(一)'와 동남아와 유럽,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21세기 해상 실크로드(一路)'를 합친 말이다. 고대의 평화로운 교역로 이미지를 차용하여, 중국 중심의 거대한 경제 영토 확장 프로젝트를 '공동 번영을 위한 글로벌 협력'이라는 이름으로 성공적으로 브랜딩했다.

 

 

중국에게 '이름을 짓는 행위'는 단순히 대상을 부르는 소극적인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현실을 규정하고, 역사를 재해석하며, 미래의 질서를 설계하려는 적극적이고 공세적인 정치 행위다. '근북극국가'라는 생소한 단어의 등장은, 이러한 중국의 명명 전략이 이제는 지구의 가장 극한 곳까지 뻗어나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또 다른 상징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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