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이름에 세계 각국의 도시나 지역명을 사용하는 것은 깊은 의도가 담긴 마케팅 전략이다. 단순히 듣기 좋은 이름을 넘어 자동차의 정체성을 만들고 소비자의 감성을 자극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
자동차 제조사들이 도시나 지역명을 사용하는 이유는 크게 네 가지로 꼽는다.
첫 번째는 이미지 부여 및 스토리텔링(Image Association & Storytelling).
이것은 가장 핵심적인 이유로 특정 도시가 가진 고유의 이미지를 자동차에 그대로 투영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다시 말해 소비자가 해당 모델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을 그리게 만든다는 것.
페라리의 캘리포니아와 포르토피노, 기아의 쏘렌토는 해당 도시들의 휴양/레저/고급 이미지를 차용하기 위해 도시명을 선택한 케이스다. 따뜻한 햇살, 여유로운 해변, 부유하고 세련된 라이프스타일을 떠올리게 만들고 싶다는 의도다.
싼타페와 투싼, 텔루라이드는 SUV의 액티비티를 부각시키기 위한 의도로 네이밍 되었다. 광활한 사막과 험준한 산맥이 형성되어 있는 지역의 특성이 모험/자연/강인함을 연상케 하는 만큼 차종에 어울리는 이름으로 선택한 것이다.
이탈리아의 시에나와 베로나 지역은 고풍스러운 유럽의 예술과 유서 깊은 역사, 클래식한 품격을 떠올리게 하는 이름이다. 그렇기에 문화적임 느낌과 우아함을 강조하고 싶은 의도에서 모델명으로 쓰였다고 보면 된다.
두 번째는 목표 시장에 대한 친밀감 형성(Targeting Specific Markets)에 있다.
주력으로 공략하고자 하는 시장의 지명을 사용함으로써 현지 소비자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고, '당신들을 위해 만든 차'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현대·기아차가 북미 시장을 겨냥한 SUV 모델에 미국 남서부 지역명을 대거 사용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세 번째는 브랜드 정체성 강화(Strengthening Brand Identity)다.
특정 국가의 제조사가 자국의 지명을 사용하여 브랜드의 '혈통'과 자부심을 강조하는 경우다.
페라리가 이탈리아의 휴양지 이름을 붙이거나, 스페인 브랜드 세아트(SEAT)가 자사의 거의 모든 차종에 스페인 도시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 좋은 사례다.
네 번째는 발음과 상표 등록의 용이성(Ease of Pronunciation & Trademarking)이다.
새롭게 만들어낸 추상적인 이름은 국가별로 발음이 어렵거나 부정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반면, 세계적으로 알려진 도시명은 발음이 비교적 쉽고, 상표권 분쟁의 소지가 적어 글로벌 시장에 출시하기 용이하다는 현실적인 장점도 있다.
미국 뉴멕시코 주의 주도 산타페(Santa Fe)를 보자.
싼타페는 스페인어로 '성스러운 신념'을 의미하며, 아도비 양식의 건축물과 예술가들이 모이는 이국적인 도시다.
현대차는 2000년 첫 SUV를 출시하며,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이라는 슬로건과 함께 싼타페가 가진 여유롭고 예술적인 이미지를 차에 부여하고자 했다. 이는 당시 미국 시장에서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SUV 트렌드에 완벽하게 부합했다고 평가를 받는다.
싼타페의 대성공은 현대차가 '저렴한 차' 이미지를 벗고 SUV 명가로 발돋움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고, 이후 투싼, 베라크루즈(멕시코 휴양지) 등으로 이어지는 '지명 SUV' 라인업의 시작을 알렸다.
사막과 선인장으로 둘러싸인 강인하고 역동적인 이미지의 애리조나 주의 주도 투싼(Tucson)과 '성공한 가족의 여유로운 주말'이라는 이미지를 얻기 위해 미국 캘리포니아 주 LA의 부촌 퍼시픽 팰리세이드(Pacific Palisades)를 모델명으로 선택한 것도 빼놓을 수 없다.
페라리는 전통적으로 마라넬로, 모데나 등 이탈리아 지명을 사용해왔다.
하지만 2008년 비교적 대중적인 GT카를 출시하며 주력 시장인 미국의 캘리포니아(California) 이름을 붙이는 시도를 했다. 이는 캘리포니아의 햇살 아래 해안 도로를 달리는 '오픈탑 크루징' 이미지를 극대화하려는 의도였다고.
이후 후속 모델(2017년)에서는 다시 이탈리아의 가장 아름다운 항구인 포르토피노(Portofino)로 이름을 바꾸며 브랜드의 이탈리아 혈통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해변 도시 말리부(Malibu)는 1964년부터 모델명에 사용된 유서 깊은 이름이다.
말리부는 서핑, 유명인의 호화로운 해변 저택 등으로 상징되기에 미국인들이 꿈꾸는 자유롭고 풍요로운 라이프스타일의 대명사라고 할 만하다.
이에 쉐보레는 중형 세단에 이 이름을 붙여, 성공과 여유를 지향하는 미국 중산층의 '아메리칸드림'을 자극하는 전략을 사용했다.
닷지(Dodge)의 '데이토나(Dodge Charger Daytona, 미국 플로리다주)', 포드(Ford)의 '코르티나(Ford Cortina, 이탈리아)', 뷰익(Buick)의 '리비에라(Buick Riviera, 프랑스/이탈리아 해안)'도 같은 맥락이다.
이처럼 자동차의 이름 하나에는 각 제조사의 치열한 고민과 시장을 읽는 통찰력, 그리고 소비자가 꿈꾸는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제안이 담겨 있다.
사람들에게 자동차는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특정 도시의 이미지를 입고 도로 위를 달리는 하나의 문화적 상징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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