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특히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로 여행을 떠나는 한국인 관광객들이 현지 식당에서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간절하게 외치는 현지어가 있다. 바로 "고수 빼주세요(Không rau mùi)".
특유의 강렬한 화장품(?) 냄새 탓에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향채인 고수는 많은 한국인들이 낯설어하고 힘들어하는 식재료다. 현지 음식점에서도 한국인 관광객을 보면 먼저 "고수 빼줄까?"라고 물어보는 것이 자연스러운 관행이 되었을 정도.
이처럼 고수는 우리에게 철저히 '외국의 향신료'로 인식되어 왔다. 하지만 한반도 내에도 예로부터 고수를 아주 친숙하게 즐겨 먹었던 지역이 존재한다.

황해도와 평안도의 오랜 '고수 사랑'
그 주인공은 바로 북한의 황해도와 평안도 지역이다.
탈북민들의 생생한 증언과 북한 음식 전문가들의 설명에 따르면, 이 지역 사람들은 마당 한편에 텃밭을 일구고 고수를 직접 재배해 일상적으로 즐겨 먹었다고 한다.(우리나라 파주 지역도 유사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남한에서는 베트남 쌀국수나 중국 요리를 통해서만 접하던 낯선 채소가, 북한 서북부 지역에서는 밥상에 흔히 오르는 '토속 채소'였던 셈이다.
고수 강회부터 고수 김치까지, 독특한 특산 메뉴
이 지역에서는 고수를 향신료로 조금 얹어 먹는 수준을 넘어 다양하고 적극적인 조리법으로 즐겼다. 대표적인 특산 메뉴로는 끓는 물에 살짝 데친 고수를 초고추장에 찍어 먹거나 파강회처럼 묶어 먹는 '고수 강회'가 있다.
또한, 고기 누린내나 생선 비린내를 잡기 위해 찌개나 국에 고수를 듬뿍 썰어 넣기도 했다고.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우리의 전통 발효 음식과 결합한 '고수 김치'다. 황해도 지역에서는 김장을 할 때 배추김치 소에 고수를 섞어 넣거나, 아예 고수 자체를 주재료로 삼아 겉절이나 짠지 형태의 김치를 담가 먹었다.
실제로 북한 관광청이 운영하는 공식 조선 요리 사이트(cooks.org.kp)를 살펴보면 'Coriander Kimchi(고수 김치)'의 레시피가 북한의 전통 요리로 당당히 영문 소개되어 있을 만큼 그 역사가 깊고 보편적이다.

고수가 밥상에 오르게 된 지리적, 기후적 배경
그렇다면 왜 유독 한반도 서북부 지역에서만 고수를 즐겨 먹게 되었을까?
첫 번째 배경은 지리적 특성과 중국 만주 음식 문화의 영향이다. 황해도와 평안도는 중국의 랴오닝성 등 만주 지역과 국경을 맞대고 있거나 지리적으로 매우 인접해 있다.
예로부터 육로를 통한 교류가 활발했기에, 중국 요리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향채(샹차이, 香菜) 문화가 자연스럽게 국경을 넘어 한반도 서북부로 스며들어 토착화된 것아다.
두 번째는 기후적 특성이다. 고수는 서늘한 기후에서 비교적 생육이 잘 되는 특성이 있어 북부 지방의 환경에서 재배하기 수월했다.
또한, 길고 추운 겨울을 버텨야 하는 북방 지역의 척박한 환경 속에서 입맛을 돋우고 단순한 식재료의 풍미를 폭발적으로 끌어올리는 데 고수 특유의 강렬한 향이 천연 조미료로서 아주 유용한 역할을 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우리가 철저히 동남아시아나 중화권의 외래 식재료로만 여겼던 고수가, 사실은 한반도 북부 지역에서 오랜 시간 서민들의 밥상을 풍성하게 지켜온 토착 식재료였다는 것은 흥미로운 사실이다. 분단의 세월만큼이나 남북의 입맛도 많이 달라졌지만, 이 독특하고 매력적인 '고수 강회'와 '고수 김치'는 한반도 음식 문화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귀중한 단면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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