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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 사회

맹신이 훼손해버린 본질

우리는 종종 선의를 바탕으로 한 강한 믿음이 완벽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 기대한다. 하지만 어떤 믿음이 의심을 허용하지 않는 '맹신'의 영역으로 넘어갈 때, 애초에 지키려 했던 본질은 가장 치명적으로 훼손되곤 한다.

 

여기, 일상과 역사의 완전히 다른 두 시공간에서 벌어진 기막힌 아이러니가 있다. 자식의 건강을 위하던 가마솥 앞의 정성과, 인류의 위대한 유산을 지키겠다던 한 영국 귀족의 굳은 사명감이 만들어낸 역설적인 풍경이다.

 

 

뼈를 깎아내는 정성, 사골 곰탕의 배신

 

찬 바람이 불면 한국인들은 본능적으로 뜨끈하고 뽀얀 사골 곰탕을 떠올린다. 뼈를 튼튼하게 하고 기력을 보충해 준다는 굳건한 믿음 덕분이다. 과거 어머니들은 가족의 관절 건강을 위해 질 좋은 소뼈를 사다가 며칠 밤낮을 가리지 않고 가마솥이나 들통에 끓이고 또 끓였다. "오래 고아낼수록 뼈에서 좋은 성분이 다 빠져나와 약이 된다"는 맹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푸드레시피(foodrecipe.co.kr)

 

하지만 이 지극한 정성은 영양학이라는 객관적 지표 앞에서 씁쓸한 모순을 마주하게 된다. 국립 기관인 농촌진흥청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골은 1회당 6시간씩 딱 3번까지만 끓이는 것이 영양적으로 가장 우수하다. 4번 이상 끓이게 되면 뼈에 좋은 칼슘의 추출량은 급격히 줄어들고, 탁도(흐린 정도)와 점도(끈끈한 정도)도 낮아져 국물 맛이 떨어진다. 일부 연구에서는 '인(P)' 성분이 대량으로 빠져나온다는 지적도 따른다.

 

우리 몸속에서 인 성분이 과도해지면 칼슘과 결합하여 체외로 함께 배출되는 성질이 있다. 즉, 자식의 뼈를 튼튼하게 하려고 쓴맛이 날 때까지 며칠씩 고아 낸 그 진한 국물이, 오히려 체내의 칼슘을 몸 밖으로 끌고 나가는 '뼈 도둑' 역할을 했던 것이다. 맹목적인 정성이 목적의 본질을 정반대로 훼손해버린 식탁 위의 아이러니다.

 

 

보호라는 이름의 파괴, 파르테논 신전의 눈물

 

이러한 맹신의 모순은 인류의 거대한 역사 속에서도 고스란히 반복된다. 고대 그리스 건축의 최고봉이자 아테네의 상징인 파르테논 신전의 수난사가 대표적이다.

 

19세기 초, 오스만 제국 주재 영국 대사였던 토머스 브루스(엘긴 백작)는 아크로폴리스에 방치된 경이로운 대리석 조각상들을 목격한다. 당시 오스만 제국은 이 신전을 화약고나 군사 주둔지로 무신경하게 사용하고 있었다. 엘긴 백작은 야만적인 이교도들과 무지한 현지인들로부터 이 위대한 예술품을 '구출'하여 문명국인 영국에 영원히 보존하겠다는 확고한 사명감에 사로잡혔다. 서구 우월주의에 기반한 '문화재 보호'라는 맹신이었다.

 

대영박물관 '엘긴 마블스' / culturalpropertynews.org

 

그러나 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운 그의 행동은 끔찍한 파괴를 동반했다. 조각상(엘긴 마블스)을 신전에서 떼어내기 위해 인부들은 쇠지렛대와 톱, 심지어 폭약까지 동원했다. 이 과정에서 파르테논 신전의 지붕과 벽면 기둥(코니스 등)이 무참히 박살 났다. 훗날 수많은 역사학자와 문화유산 연구기관(Heritage Lab 등)은 엘긴의 행위가 신전의 구조적 원형에 가장 돌이킬 수 없는 물리적 훼손을 가했다고 지적한다.

 

가장 안전하게 지키겠다는 그의 신념이 결과적으로 파르테논 신전을 영원한 '반쪽짜리' 유적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미술사학자들을 분노케 한 이 사건은, 대상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소유함으로써 지킬 수 있다는 제국주의적 맹신이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지를 증명한다.

 

 

의심하지 않는 선의가 품은 위험

 

사골 국물을 끓이던 따뜻한 정성이나, 문화재를 보호하겠다던 귀족의 비장한 사명감을 단순한 '악의'로 매도할 수는 없다. 문제는 그들이 자신의 방식이 무조건 옳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는 데 있다.

 

영양학적 사실을 외면한 채 끓여낸 곰탕은 건강을 해쳤고, 건축물과 유물의 유기적 맥락을 무시한 채 떼어낸 조각상은 신전의 숨통을 끊어놓았다. 목적을 향한 맹신이 방법론에 대한 성찰을 지워버릴 때, 우리가 그토록 지키려 했던 본질(건강과 원형)은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다.

 

결국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실패나 실수가 아니라, "나의 믿음은 절대적으로 선하고 옳다"는 자기 확신일지도 모른다. 진정으로 무언가를 아끼고 지키고자 한다면, 때로는 뜨겁게 달아오른 맹신의 가마솥 불을 끄고 차분히 이면을 들여다보는 용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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