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의 축구 클럽 중 하나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의 공동 구단주이자 이네오스(INEOS)의 창업자 짐 랫클리프 경이 뱉은 말 한마디가 영국 사회를 넘어 전 세계 축구 팬들에게 큰 충격을 주고 있다. 그는 최근 인터뷰에서 "영국인들이 런던에서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 런던 인구의 50%가 이민자다"라며 "영국이 이민자들에 의해 '식민지화(colonised)'되었다"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이는 단순한 실언이 아니다.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인물의 지극히 시대착오적이고 위험한 인종차별적 망언이며,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려는 시도다.

탈세 구설수를 외면한 뻔뻔한 애국심, 그리고 엉터리 통계
랫클리프의 발언은 팩트부터 틀렸다. 2021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런던 인구 중 외국에서 태어난 사람은 약 40% 수준이며, 그가 인용한 '50% 이민자' 주장은 통계적으로도 과장된 거짓이다. 더 황당한 것은 그의 이중적인 태도다. 그는 브렉시트를 열렬히 지지하며 "영국을 되찾자"고 외쳤지만 정작 본인은 막대한 세금을 피하기 위해 조세 회피처인 모나코로 거주지를 옮긴 '탈세 의혹'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다.
영국의 복지와 시스템에 기여하지 않기 위해 도망친 억만장자가, 영국 사회의 하부 구조를 지탱하며 성실히 일하는 이민자들을 향해 "너희가 우리를 식민지화했다"고 비난하는 모습은 기만 그 자체다.

맨유 엠블럼 속 '범선', 끊이지 않는 논쟁
이 시점에서 우리는 맨유, 그리고 맨체스터 시티의 엠블럼에 공통적으로 그려져 있는 '범선(The Ship)'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영국 가디언(The Guardian)지의 보도에 따르면, 이 범선은 단순한 항구 도시의 상징이 아니다.
19세기 맨체스터는 '코튼오폴리스(Cottonopolis)'라 불리며 세계 면직물 산업의 중심지로 성장했다. 엠블럼 속 범선은 바로 이 면화 무역을 상징한다.
문제는 당시 맨체스터가 수입하던 면화의 대부분이 미국 남부의 노예 노동을 통해 생산되었다는 점이다. 노예들이 피땀 흘려 따낸 목화가 배에 실려 맨체스터로 들어왔고, 그 착취의 결과물이 도시의 부를 쌓아 올렸다.
물론 범선의 상징성은 어디까지나 항구와 무역을 뜻하며 노예 무역과는 선을 그어야 한다는 역사학자와 구단의 해석도 있다.
어찌되었든 맨유 엠블럼 속 배는 제국주의 시절, 타국을 '식민지화'하고 인간을 노예로 부리며 쌓아 올린 약탈 경제의 상징이라는 논쟁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가해자가 피해자 코스프레를 할 때
랫클리프의 "영국이 식민지화되었다"는 발언이 그토록 역겨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영국은 역사상 가장 거대한 식민 제국을 건설하며 수많은 나라를 침탈하고 원주민을 착취했던 '원조 가해자'다. 맨체스터라는 도시 자체가 그 식민지 경제 시스템의 수혜를 입어 성장했다.
그런데 그 도시를 연고로 하는 구단의 주인이, 과거 제국주의의 피해자였거나 더 나은 삶을 위해 이주해 온 사람들을 향해 "우리가 식민 지배를 당하고 있다"며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역설을 넘어선 역사에 대한 모독이다.
혐오를 넘어설 때가 되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전 세계 다양한 인종과 국적의 선수들이 뛰고 있으며, 지구촌 곳곳의 팬들이 사랑하는 글로벌 클럽이다. 그런 구단의 오너가 백인 우월주의에 입각한 배타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구단의 가치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가디언지 등 현지 언론에서는 엠블럼 속 범선이 노예 무역을 상징한다면 교체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과거의 잘못된 상징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은 현재의 우리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다. 하지만 구단주는 오히려 시대를 역행하고 있다.
인류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포용과 다양성, 그리고 공존을 고민해야 하는 시점에 서 있다. 랫클리프의 발언은 그가 가진 막대한 부와 권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역사 인식과 인권 감수성이 얼마나 빈곤한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진정으로 영국을, 그리고 축구를 사랑한다면 혐오를 부추기는 망언을 멈춰야 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가슴팍에 새겨진 범선이 과거 어떤 피를 싣고 날랐는지, 그 역사의 무게부터 되새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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