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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 사회

춥다고 소문난 일본집: "밖보다 집 안이 더 추워요"

"일본 여행 가서 에어비앤비 묵었다가 입 돌아갈 뻔했다." 겨울철 일본 여행을 다녀온 한국인들이 흔히 하는 말이다. 온돌(바닥 난방) 문화에 익숙한 우리에게 일본의 겨울 실내는 그야말로 '냉동창고'나 다름없다. 첨단 기술의 나라, 로봇이 서빙을 하는 나라에서 집이 춥다니?

 

하지만 현지인들의 인터뷰와 통계를 보면 이는 단순한 엄살이 아니다. 일본의 집은 구조적으로 춥고, 이 추위는 실제로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도대체 일본 집에는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

 

 

japantoday.com

 

 

1. "집은 여름을 위해 지어라" : 천 년을 이어온 고집

 

일본 집이 추운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기후와 전통에 있다. 일본은 고온다습하다. 여름의 찜통더위와 습기는 곰팡이를 부르고 목조 주택을 썩게 만든다. 그래서 일본의 건축 철학은 "겨울의 추위는 옷을 껴입으면 버틸 수 있지만, 여름의 더위는 집 구조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통풍을 위해 벽을 얇게 하고, 창을 크게 내고, 단열재를 거의 쓰지 않았다. 알루미늄 샷시와 홑창 유리(싱글 글라스)가 표준이었다. 이 '여름 중심' 설계 덕분에, 겨울이 되면 집 안의 열기란 열기는 모조리 창문 밖으로 빠져나간다. 현지인들이 자조 섞인 목소리로 "밖은 햇살이라도 있지, 집 안이 더 춥다"고 말하는 이유다.

 

 

 

2. 소리 없는 살인자, '히트 쇼크(Heat Shock)'

 

문제는 이 추위가 단순히 '오들오들 떠는' 불편함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본에서는 매년 겨울 '히트 쇼크(Heat Shock)'로 인한 사망자가 추정치 기준으로 교통사고 사망자의 수 배에 달한다.

 

매커니즘은 이렇다.

 

1. 난방 기구(코타츠, 히터)가 있는 거실은 따뜻하다.

 

2. 화장실이나 욕실(탈의실)로 가는 복도는 시베리아 벌판처럼 춥다. (혈관 수축 → 혈압 급상승)

 

3. 뜨거운 욕조 물에 몸을 담근다. (혈관 이완 → 혈압 급하강)

 

이 급격한 온도 차이로 인해 뇌졸중이나 심근경색이 발생해 욕실에서 의식을 잃고 익사하는 노인들이 매년 1만 7천 명에서 2만 명에 육박한다. 일본인들에게 겨울철 목욕은 그야말로 '목숨을 건 입욕'인 셈이다.

 

www.nippon.com

 

 

 

3. "패딩 입고 자요" : 생존을 위한 난방 문화

 

한국처럼 보일러를 틀어 바닥과 공기를 전체적으로 데우는 '중앙난방' 시스템은 일본 가정집에서 매우 드물다(훗카이도 등 일부 한랭지 제외). 대신 그들은 '부분 난방'에 의존한다.

 

사람이 있는 곳만 데운다. 거실에는 등유 팬히터나 에어컨 온풍기를 틀고, 책상 아래에는 코타츠(전열기구가 달린 테이블)를 둔다. 하지만 이 구역을 벗어나는 순간 입김이 나올 정도로 춥다. 적잖은 일본인들은 "집에서도 유니클로 후리스나 경량 패딩을 입고 있는 게 기본"이라며, "아침에 이불 밖으로 나오는 건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고 토로한다.

 

 

 

4. 변화하는 일본: "단열이 곧 건강이다"

 

다행히 최근 일본에서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WHO(세계보건기구)가 "겨울철 실내 온도는 18도 이상을 유지해야 한다"고 권고하면서, 일본 정부와 건축 업계도 '단열(Insulation)'의 중요성을 깨닫기 시작했다.

 

- 단열 개수(Remodeling): 낡은 집의 창문을 이중창(Pair Glass)이나 수지(플라스틱) 샷시로 교체하는 리모델링이 유행하고 있다.

 

- ZEH(Zero Energy House): 정부 보조금을 통해 에너지 효율이 높은 고단열 주택 건축을 장려하고 있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는 "전통도 좋지만, 얼어 죽기는 싫다"는 인식이 퍼지며, 집을 구할 때 '단열 등급'이나 '이중창 여부'를 꼼꼼히 따지는 문화가 생겨나고 있다.

 

ZEH 개념 / www.jpea.gr.jp

 

 

낭만과 생존 사이

 

일본 드라마나 영화 속, 코타츠에 둘러앉아 귤을 까먹는 풍경은 아늑하고 낭만적이다. 하지만 그 낭만 바로 1미터 밖 복도에는 살을 에는 냉기가 도사리고 있다.

 

일본의 집은 지금 과도기에 있다. '여름을 위한 집'에서 '사계절 안전한 집'으로. 혹시 일본에서 겨울을 보낼 계획이 있다면, 온돌의 뜨끈함은 기대하지 마시라. 대신 두툼한 수면 양말과 핫팩을 챙기는 것이 당신의 건강과 숙면을 지키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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