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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 사회

대만 치어리더 문화 그리고 한국 치어리더들의 진출

선수 명단보다 치어리더 명단에 더 뜨거운 관심이 쏠리는 곳. 굿즈 판매 수익으로 선수 영입 자금을 마련한다는 말이 더 이상 농담이 아닌 곳. 바로 대만 프로야구(CPBL)의 이야기다. 한국에서 치어리더가 경기의 흥을 돋우는 '조연'이라면, 대만에서 치어리더는 경기를 지배하는 또 다른 '주인공'이다.

 

한때 그들만의 리그로 여겨졌던 이 독특하고 거대한 시장이, 지금 한국에서 건너간 치어리더들로 인해 격렬하게 요동치고 있다. 이는 단순한 K-콘텐츠의 인기를 넘어, 대만의 독특한 팬덤 문화와 한국을 향한 복잡한 시선이 교차하는 매우 흥미로운 문화 현상이다.

 

 

현황: 경기를 지배하는 또 다른 주인공, 대만의 치어리더

 

대만에서 야구는 종종 '치어리더를 보기 위한 수단'이 된다. MLB 공식 홈페이지조차 ‘치어리더링은 대만 야구 문화의 일부가 되었다’고 평가할 정도다. 이들의 위상은 단순한 응원단 그 이상이다.

 

치어리딩이 대만 야구의 '충전 코드'가 된 방법 / www.mlb.com

 

첫째, 경제적 파워가 막강하다. 주요 구단들은 연간 수십억 원대의 치어리더 굿즈(사진집, 응원도구, 유니폼 등) 매출을 기록한다. 이는 실제 팀 수익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며, 이 자금으로 선수를 영입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구단 운영의 핵심 축이다. 평일에도 4천 명 이상의 관중을 동원하는 힘은 경기력이 아닌, 치어리더의 공연과 이벤트에서 나온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둘째, 연예인급 정체성을 가진다. 인스타그램 팔로워 100만을 훌쩍 넘는 스타 치어리더들은 TV 예능, 광고, 드라마에 출연하며 배우나 가수 못지않은 활동 반경을 보여준다. 2023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당시, 대만에서는 대표팀 선수 명단보다 '드림팀'으로 꾸려진 치어리더 명단 발표가 더 큰 화제를 모았다는 일화는 이들의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현지 언론 '더 뉴스 렌즈(The News Lens)'는 이러한 문화를 ‘성적 대상화된 귀여움의 문화’라고 진단하며 비판적인 시각을 보내기도 하지만, 치어리더가 팬덤 형성과 수익 창출의 핵심이라는 점은 이제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분석: 왜 K-치어리더는 대만을 흔들었나

 

2025년 기준, 대만 프로야구 6개 팀 중 5개 팀에 10명이 넘는 한국인 치어리더가 활동 중이다. 이 K-치어리더 열풍의 중심에는 이다혜와 이주은이 있다.

 

이주은이 2025년 한국과 대만에서 활동한다는 소식을 전하는 현지 매체 / focustaiwan.tw

 

KIA 타이거즈 출신의 이주은은 '삐끼삐끼(Pikki Pikki)' 댄스 영상이 틱톡 등에서 8천만 뷰 이상을 기록하며 글로벌 스타덤에 올랐다. 그가 푸본 가디언스와 계약하자 개막전 티켓 매진률이 전년 대비 30%나 급증했고, 현지 언론은 이를 '이주은 효과'라 대서특필했다. 루머에 따르면 그의 이적료는 KBO 리그 출신 사상 최고액에 달한다고 한다.

 

라쿠텐 몽키스를 거쳐 현재 웨이취안 드래곤스 소속인 이다혜는 아예 대만에 거주하며 활동하는 '완전 현지화' 전략으로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녀의 팬미팅과 굿즈는 매번 매진 사태를 빚고, '한국 치어리더 팬 좌석'이 별도로 운영될 정도의 신드롬을 일으켰다.

 

이들이 이토록 큰 인기를 끄는 이유는 명확하다. K-POP 아이돌을 연상시키는 뛰어난 비주얼과 압도적인 춤 실력, 그리고 한국에서 단련된 프로페셔널한 팬 서비스가, 기존 대만 치어리더들과는 다른 차원의 매력을 선사했기 때문이다.

 

 

현지 반응: 자부심과 경쟁심, 그 사이의 복잡한 시선

 

K-치어리더의 진출을 바라보는 대만의 시선은 복합적이다.

 

가장 지배적인 반응은 '자부심'이다. "한국 치어리더 영입은 대만 리그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우리 시장이 한국이나 일본보다 더 높은 대우와 인기를 보장하는 주류 시장이 됐다는 증거"라는 인식이 강하다. 즉, K-POP 스타를 영입하듯 가장 '핫'한 K-치어리더를 데려온다는 사실 자체에서 문화적 우위를 느끼는 것이다.

 

이다혜와 안지현을 소개하는 대만 현지 방송 / ftvnews.com.tw

 

하지만 그 이면에는 미묘한 '경쟁 심리'와 '혐한' 정서도 존재한다. 일부 커뮤니티에서는 "한국인들이 자꾸 우리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지나친 미디어 노출이 자국 치어리더의 성장을 방해한다"는 식의 불만이 터져 나온다. 이는 한국 문화의 영향력 확대에 대한 자부심과, 동시에 자국 문화가 침식될 수 있다는 오랜 경계심이 공존하는 대만의 복합적인 대(對)한국 심리를 보여준다.

 

결국 K-치어리더의 대만 진출은 단순한 인력 수출을 넘어, 양국의 독특한 팬덤 문화와 미묘한 경쟁 심리가 교차하는 흥미로운 문화 현상이다. 비록 일부에서는 야구의 본질이 훼손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지만, 대만 프로스포츠는 이미 치어리더를 중심으로 한 엔터테인먼트 산업으로의 진화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야구 경기의 승패만큼이나, 응원단상 위에서 펼쳐지는 이 조용한 '한류'의 향방이 앞으로 더욱 주목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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