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다이아몬드는 영원하다'는 말을 발명했던 기업이 이제 자신의 영원성을 의심받고 있다. 130년간 세계 다이아몬드 시장을 지배해 온 드비어스(De Beers)가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겪고 있는 것이다.
드비어스의 위기는 하나의 사건이 아닌, 여러 개의 거대한 파도가 동시에 덮친 결과라는 분석이 일반적이다.
① 인공 다이아몬드의 완벽한 역습
가장 치명적인 원인은 기술의 발전이다. 천연 다이아몬드와 물리적, 화학적으로 100% 동일한 인공(랩그로운) 다이아몬드가 등장한 것. 전문가조차 기계 없이는 구별이 불가능한 이 다이아몬드는 훨씬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시장을 빠르게 잠식했다.
2020년 대비 인공 다이아몬드 가격은 약 74% 폭락했으며, 이 여파로 천연 다이아몬드 소매가 역시 2년 전보다 약 26% 하락했다. '희소성'을 기반으로 한 천연 다이아몬드의 가치 체계가 근본부터 흔들린 것이다.
②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하다
드비어스의 오랜 슬로건은 더 이상 젊은 세대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다.
밀레니얼과 Z세대는 '영원한 사랑의 증표'라는 물질적 소유보다 특별한 경험을 중시하며, 채굴 과정의 환경 및 윤리 문제('블러드 다이아몬드')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여기에 세계 2위 시장인 중국에서 결혼 건수 감소와 경기 둔화가 겹치며 다이아몬드 수요가 급감한 것도 큰 타격으로 작용했다.
③ 글로벌 경기 침체와 실적 악화
팬데믹 이후 찾아온 경기 침체는 실적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2024년 연간 매출은 전년 대비 약 25% 감소(27.2억 달러), EBITDA는 "마진얼리 네거티브(소폭 적자)"로 파악됐다. 이 과정에서 팔리지 않은 재고가 약 20억 달러(약 2조 8천억 원)에 달하게 되었으며, 결국 2025년 생산 가이던스를 기존 3,000~3,300만 캐럿에서 2,000~2,300만 캐럿으로 약 30% 하향 조정했다.
이렇듯 벼랑 끝에 몰린 드비어스는 과거의 전략을 폐기하고 생존을 위한 대수술에 들어갔다.
① '스스로 판 무덤', 인공 다이아몬드 사업 철수
드비어스는 2018년, 인공 다이아몬드를 '패션 주얼리'로 격하시킬 목적으로 직접 '라이트박스(Lightbox)' 브랜드를 론칭했다. 하지만 이는 시장의 성장을 촉진하는 자충수가 되었다.
인공 다이아몬드(랩그로운) 가격은 2020년 대비 70% 이상 하락했고, 천연 다이아몬드 원석 가격도 2년간 약 50% 가까이 떨어진 상황. 드비어스는 더 이상 사업을 유지할 명분이 없다며 사실상 사업 철수를 선언하고 재고 및 자산 매각을 추진 중이다.
② '선택과 집중', 천연과 산업용으로의 회귀
드비어스는 이제 명확한 '선 긋기'에 나섰다.
천연 다이아몬드를 "자연이 만든 기적", "대체 불가능한 희소성" 등 고급 감정 가치를 내세우며 프리미엄 시장에 다시 집중하기로 한 것이다.
인공 다이아몬드는 주얼리가 아닌, 산업용으로 완전히 방향을 틀었다. 자회사 '엘리먼트 식스(Element Six)'를 통해 반도체, 절단 공구, 광학 기기 등에 사용되는 첨단 합성 다이아몬드 사업을 강화하며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고 있는 중이다.
현재 드비어스의 미래는 이제 새로운 주인의 손에 달리게 되었다.
드비어스의 모기업인 광산 대기업 앵글로 아메리칸(Anglo American)은 2024년 5월, 경영 효율화와 핵심 사업 집중을 위해 드비어스를 분리 또는 매각하겠다고 공식 발표해놓은 상황이다.
매각 방식은 2025년 말까지의 직접 매각 또는 2026년 하반기를 목표로 한 기업공개(IPO)가 될 전망인데, 이를 위해 장부가치를 40억 달러로 대폭 낮추고 라이트박스 브랜드의 철수 / 고객사 축소 / 가격 할인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돌입한 상태다.
인수에 관해서는 물밑 경쟁이 치열하다.
먼저 전(前) CEO인 개러스 페니와 브루스 클리버가 각각 다른 컨소시엄을 이끌며 인수에 가장 적극적인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외에도 인도의 다이아몬드 업체들(KGK 그룹 등), 카타르 국부펀드, 그리고 현재 지분 15%를 보유한 보츠와나 정부 등 다양한 세력이 유력한 인수 후보로 거론된다.
드비어스의 위기는 단순히 한 거인의 몰락이 아니라, 다이아몬드 산업 전체가 겪는 구조적 전환과 재편을 상징하는 거대한 사건이라 봐야한다. 과거의 신화를 뒤로하고 생존의 기로에 선 드비어스가 어떤 주인을 만나 부활의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지,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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