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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정보/역사

광화문의 추억



  광화문에 가면 나는 남다른 추억이 떠오른다. 2007년, 지금으로부터 꼭 10년 전의 일이다. 그 당시 광화문은 1968년 복원된 것으로 경복궁의 정문임에도 불구하고, 그 위치나 각도가 틀어져 궁궐의 축과 맞지 않았다. 그래서 광화문의 위치를 찾아 새로 복원하는 프로젝트가 한창이었다. 그 당시 나는 광화문의 "제 위치"를 찾는 임무를 띠고 발굴조사를 담당했다.



  발굴조사는 문헌기록을 바탕으로 기존 위치보다 약 11m 남쪽, 즉 당시 차들이 쌩쌩 달리던 세종로 아스팔트 아래를 대상으로 하였다. 모두가 이미 없어졌을 거라 비관했지만, 결과는 대반전이었다. 광화문의 기초석과 월대 기단석이 고스란히 발견된 것이다. 확인된 광화문의 규모는 약 30×15m에 이르고, 돌과 흙을 번갈아 쌓은 기초의 두께가 약 2m에 달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발굴 초창기에는 미처 알지 못했지만, 광화문 기초 2개가 겹쳐 있는 것이 아닌가. 경복궁은 태조연간 중건된 이후 임진왜란 때 소실되고 고종연간에 다시 지어졌는데, 광화문도 그러한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의 광화문은 이러한 발굴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복원되었다. 복원된 광화문 아래에는 그 때 당시 발굴했던 조선시대 광화문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모를 것이다. 그리고 광화문 앞으로 난간석이 몇 개 있는데, 그것은 월대를 일부 복원해 놓은 것이다. 월대는 광화문으로 들어가기 위한 넓은 단으로 원래는 그 길이가 52m 정도 되지만, 도로 부분은 발굴을 할 수가 없어 일부 난간석만 복원해 놓고, 대신 그 자리를 노랗게 표시해 두었다. 광화문 앞 도로에 노란색 박스표시가 바로 그것이다.



  뉴스에서 월대를 추가로 복원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당시 월대를 다 발굴하지 못해 아쉬웠는데, 이렇게 경복궁이 하나하나 제 모습을 찾아가는 것 같아 굉장히 기쁘다. 앞으로 세종대왕이 지은 "광화문(光化門)"의 이름처럼 빛이 만방에 떨쳐지는 명소로 더욱 거듭나길 기대한다.


<고종연간 광화문지 전경(북에서)>


[문화재청 '공감! 문화재'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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