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정보/역사

씁쓸한 역사 '워털루 이빨(Waterloo teeth)'

협력자 2025. 6. 28. 16:10

'워털루 이빨(Waterloo teeth)'이라는 말은 19세기 유럽, 특히 영국에서 사용되었던 틀니의 재료와 그 유래를 보여주는 섬뜩하고 슬픈 역사를 담고 있다.

 

'워털루 이빨'의 등장 배경을 설명하려면 먼저 설탕의 보급과 충치가 만연된 사회를 이야기해야 한다.

 

18세기부터 유럽에서는 설탕 소비가 급증했다.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충치로 고통받았고, 이빨이 빠져버리는 경우가 흔해진 것. 부유층도 예외는 아니어서 자연스럽게 틀니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어났다.

 

당시 틀니는 주로 하마나 코끼리의 상아, 혹은 동물의 뼈를 깎아 만들었는데, 이런 재료는 쉽게 변색되고 닳았으며 냄새가 나고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단점이 분명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실제 사람의 치아로 만든 틀니를 더 선호했다.

 

문제는 여기서 부터다.

 

당시 사람의 치아는 주로 사형수의 것이나, '시체 도굴꾼'들이 무덤을 파헤쳐 불법적으로 공급했다. 때때로 가난한 사람들이 생계를 위해 자신의 생니를 파는 경우도 있기는 했지만 폭발적인 수요를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었다.

 

이 와중에 1815년 6월 18일, 벨기에 워털루에서 나폴레옹의 프랑스군과 웰링턴 장군의 연합군 사이에 대규모 전투가 벌어졌다.

 

이 전투에서 하루 만에 5만 명이 넘는 젊은 병사들이 목숨을 잃거나 다쳤는데, 이 끔찍한 비극의 현장은 역설적으로 틀니 제작자들에게는 '치아의 보고(寶庫)'가 된 것.

 

 

전투가 끝난 후, 살아남은 병사들이나 주변 지역 주민, 심지어 영국에서 건너온 약탈꾼들까지 전사자들의 시신에서 무기와 귀중품은 물론 쓸 만한 치아까지 뽑아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전투에서 죽은 병사들은 대부분 건강한 젊은이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치아는 틀니 재료로 소위 최상급이었다.

 

이렇게 워털루 전장에서 대량으로 공급된 치아들은 영국 등 유럽 전역의 치과의사들에게 팔려나갔다. 이어 치과의사들은 이 치아들을 상아로 만든 틀에 박아 틀니를 제작했다.

 

'워털루 이빨'로 만든 틀니(BBC)

 

젊고 건강한 병사들의 치아로 만든 이 틀니는 품질이 좋다고 소문이 났고, 사람들은 이를 '워털루 이빨'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자연히 '워털루 이빨'은 곧 최고급 틀니를 의미하는 대명사가 되었다.

 

결론적으로 '워털루 이빨'은 나폴레옹 전쟁의 참혹한 비극이 낳은 산물이랄 수 있다.

 

전쟁터에서 스러져간 수많은 젊은 병사들의 치아가 부유층의 입안으로 들어가게 된 일련의 과정은 당시 유럽 사회의 계급 문제, 미흡했던 치의학 수준, 그리고 전쟁의 비인간적인 단면을 동시에 보여주는 씁쓸함을 남긴다.

 

이후 19세기 중반, 도자기로 만든 인공 치아나 경화고무(벌카나이트) 같은 새로운 틀니 재료가 개발되면서 '워털루 이빨'과 같이 사람의 치아를 사용하는 방식은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