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정보/역사

녹색이 '독'을 의미하게 된 이유

협력자 2025. 6. 24. 10:00

녹색은 자연, 생명, 안전, 평화 등 긍정적인 이미지를 대표하는 색이면서도 독(毒), 위험, 화학물질, 죽음과 같은 섬뜩하고 부정적인 이미지를 함께 가지고 있는 이중적인 색이다.

 

특히 '독'의 상징으로 자리 잡게 된 데에는 역사적, 문화적 배경이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서양에서 녹색이 독과 연결된 것은 실제 역사 속에서 '녹색'이 사람들을 죽였던 경험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18~19세기 유럽에서 발명된 '셸레 그린(Scheele's Green)'과 '파리스 그린(Paris Green)'이라는 녹색 안료가 그 시작이다. 매우 선명하고 아름다웠던 이 안료들은 벽지, 의류, 페인트, 양초, 심지어 사탕과 같은 식품의 착색제로까지 널리 사용될 만큼 큰 인기를 끌었다.

 

문제는 이 아름다운 녹색의 핵심 원료가 맹독성 물질인 비소(Arsenic)였다는 것.

 

'셸레 그린'으로 염색된 벽지는 습기가 차면 독성 비소 가스를 방출했는데, 이로 인해 당시 사람들은 원인도 모른 채 두통과 질병에 시달렸고 심지어 사망에 이르기도 했다. 이와 관련하여 나폴레옹의 사인이 세인트헬레나 섬의 관저에 있던 녹색 벽지에서 나온 비소 중독이라는 설은 매우 유명하다.

 

이 밖에 녹색 드레스를 입은 여성들은 피부에 염증과 궤양이 생겼고, 드레스에서 떨어진 안료 가루를 흡입하며 건강을 해쳤다는 이야기도 흔하게 퍼졌다.

 

19세기 말부터는 우라늄을 이용해 만든 '우라늄 유리(혹은 바셀린 유리)'가 인기를 끌었다.

 

이 유리는 자외선을 비추면 섬뜩하고 기묘한 녹색 형광을 띠는데, 이로 인해 녹색이 방사능, 유해 화학물질의 시각적 상징으로 자리 잡게 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은 서양 대중문화에 깊이 각인되어 관련한 이미지로 적용되었다. 우리가 쉽게 접하는 영화나 만화에서 유독성 폐기물, 화학 약품, 악당(조커 등)의 실험실, 괴물(헐크 등)의 탄생 배경이 으스스한 녹색으로 묘사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덕분에 녹색에 대한 이미지는 확대 재생산된 측면도 있겠고.

 

결론적으로 서양의 녹색 공포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치명적인 녹색'에 대한 역사적 트라우마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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