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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식탁 위의 화학 공포증, 진간장에 대한 오해와 실재

마트 간장 코너 앞에서는 묘한 풍경이 자주 펼쳐진다. 누군가는 병 뒷면의 원재료명을 한참 들여다보고, 누군가는 “진간장은 화학 간장이라 몸에 안 좋다더라”는 말을 조심스럽게 꺼낸다. 인터넷에서는 “염산으로 만든 간장”, “발암물질이 들어 있는 간장” 같은 자극적인 표현도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어느 순간부터 진간장은 단순한 조미료가 아니라, 현대 식품 산업의 불안과 혐오가 투영된 상징처럼 소비되기 시작했다.

 

흥미로운 건 이 논란이 완전히 허구도 아니고, 그렇다고 대중이 생각하는 만큼 단순한 진실도 아니라는 점이다. 실제로 진간장 논란의 중심에는 ‘3-MCPD(3-monochloropropane-1,2-diol)’라는 물질이 존재하고, 일부 산분해간장에서 이 성분이 검출돼 회수 조치가 이뤄진 사례도 있었다. 문제는 여기서 많은 논의가 멈춘다는 데 있다. 사람들은 “발암 가능 물질 검출”이라는 문장만 기억한 채 곧바로 “진간장 = 위험한 화학식품”이라는 결론으로 뛰어간다. 하지만 식품 안전이라는 분야는 원래 그렇게 단순하게 작동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왜 ‘산분해’라는 단어에 반응할까

 

진간장을 둘러싼 거부감의 핵심은 맛보다 제조 방식에 있다. 특히 ‘산분해간장’이라는 이름은 대중의 불안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콩 단백질에 염산을 넣어 분해한다는 설명만 들으면, 많은 사람들은 식품이라기보다 공업용 화학 공정을 떠올린다. 실제로 과거 국내에서도 “염산 간장”, “화학 간장” 같은 표현이 반복적으로 소비되며 공포가 증폭됐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식품 제조는 원래 화학 반응의 연속이다. 빵을 굽는 과정에서도, 커피를 볶는 과정에서도, 고기를 직화로 익히는 과정에서도 수많은 화학 변화가 일어난다. 우리가 흔히 “자연스럽다”고 느끼는 발효조차 미생물과 효소가 만들어내는 복잡한 화학 작용의 결과다. 결국 중요한 것은 ‘화학 공정을 사용했는가’가 아니라, 최종 제품이 어떤 안전 기준 아래 관리되고 있느냐다.

 

실제로 우리나라 식품공전은 간장을 제조 방식에 따라 한식간장, 양조간장, 산분해간장, 효소분해간장, 혼합간장 등으로 세분해 관리하고 있다. 이 가운데 소비자들이 흔히 ‘진간장’이라고 부르는 제품 상당수는 혼합간장에 속한다. 즉, 장기간 발효한 양조간장에 산분해간장이나 효소분해간장을 혼합해 감칠맛과 가격 경쟁력을 동시에 잡은 형태다. 오랜 시간 숙성해야 하는 전통 발효만으로는 대량 소비 시장을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산업화 과정 속에서 등장한 일종의 효율적 절충안에 가깝다.

 

 

 

3-MCPD는 실제로 어떻게 봐야 하나

 

논란을 키운 핵심 물질인 3-MCPD는 산분해 공정에서 비의도적으로 생성될 수 있는 부산물이다. 국제암연구소(IARC)는 이 물질을 2B군, 즉 “인간에게 발암 가능성이 있는 물질(possibly carcinogenic to humans)”로 분류하고 있다. 여기까지만 보면 많은 소비자들이 불안해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다만 이 지점에서 종종 빠지는 설명이 있다. IARC 분류는 “위험성(hazard)” 평가이지, 실제 일상생활에서 어느 정도 위험한지를 판단하는 “위해성(risk)” 평가와는 다르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특정 조건에서 발암 가능성이 존재할 수 있다는 의미이지, 일상적인 섭취량만으로 즉각 위험하다는 뜻은 아니다. 실제 위해성 평가는 얼마나 자주, 얼마나 많은 양에 노출되는지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

 

이 때문에 각국 식품 규제기관은 “완전 금지”보다는 “기준치 관리” 방식으로 접근한다. 한국 역시 식품의약품안전처를 통해 3-MCPD 기준을 지속적으로 강화해왔고, 현재는 유럽연합(EU) 수준에 맞춘 엄격한 기준 아래 관리되고 있다. 최근 일부 중소업체 제품이 회수된 사례 역시, 역설적으로 보면 감시 체계가 실제로 작동하고 있다는 의미에 가깝다.

 

물론 그렇다고 “기준치 이하니까 무조건 안전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식품 안전은 원래 절대적 개념이 아니라, 지속적인 관리와 노출 통제를 전제로 움직이는 분야다. 하지만 동시에 “화학 공정이 들어갔다”는 이유만으로 지나친 공포를 느끼는 것 역시 과학적 접근과는 거리가 있다.

 

 

 

정작 우리는 ‘자연 유래 위험’에는 훨씬 둔감하다

 

흥미로운 건 사람들의 공포가 유독 “인공적인 것”에 집중된다는 사실이다. 반대로 자연 상태에서 발생하는 위험에는 의외로 관대한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고기를 직화로 태울 때 생성되는 벤조피렌이나, 감자튀김·과자류에서 생길 수 있는 아크릴아마이드 역시 국제적으로 관리 대상이 되는 물질들이다. 술에 포함된 알코올 자체도 국제암연구소 기준으로는 명확한 발암물질(Group 1)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이런 위험에는 비교적 무감각한 반면, “산분해”나 “화학”이라는 단어에는 훨씬 즉각적으로 거부 반응을 보인다.

 

결국 진간장을 둘러싼 논란은 단순히 간장 하나의 문제가 아니다. 현대 식품 산업 전체를 향한 불신, 그리고 ‘자연은 선하고 인공은 위험하다’는 직관적 인식이 뒤섞인 결과에 가깝다. 하지만 현실의 식품 안전은 그렇게 단순한 흑백논리로 설명되지 않는다. 어떤 음식이든 중요한 것은 제조 방식 그 자체보다 최종적으로 얼마나 관리되고, 어떤 기준 아래 소비되느냐다.

 

 

진간장은 ‘위험한 화학식품’이 아니라 산업화 시대의 대중 조미료다

 

진간장은 결국 긴 발효 시간을 단축하고, 대량 소비 시장에 맞춰 가격과 맛의 균형을 맞추는 과정에서 탄생한 산업형 조미료다. 양조간장의 풍미와 산분해간장의 감칠맛, 그리고 대량생산 효율성이 결합된 결과물이라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그래서 조림이나 볶음, 찜 같은 고온 조리에 폭넓게 사용돼 왔고, 오늘날 한국 가정식의 기본 양념으로 자리 잡았다.

 

물론 소비자는 얼마든지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깊은 발효 향을 원한다면 양조간장을, 전통 국물 요리에는 국간장을, 가격과 활용도를 중시한다면 진간장을 선택하면 된다. 문제는 취향과 선택의 영역을 곧바로 공포와 위해성 문제로 연결해버리는 태도다.

 

식품 안전은 원래 감정이 아니라 데이터와 관리 체계 위에서 판단되는 영역이다. 진간장을 둘러싼 논란 역시 마찬가지다. “화학”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 두려워하기에는, 우리의 식탁은 이미 훨씬 더 복잡한 과학 위에서 움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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