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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영

안티 AI? 헤일로 트레이드가 주목받는 이유

인공지능(AI)이 전 산업에 걸쳐 혁신을 일으키고 있지만, 월가(Wall Street)의 한편에서는 정반대의 투자 흐름이 거세게 일고 있다. AI가 소프트웨어와 서비스 산업을 순식간에 파괴할 것이라는 이른바 'AI 종말론'에 대한 공포가 확산되면서, 역설적으로 AI가 절대 대체할 수 없는 실물 자산 기업들이 피난처로 떠오른 것.

 

월스트리트저널(WSJ), 배런스(Barron's), CNBC 등 주요 경제 매체들이 앞다투어 보도하고 있는 이 새로운 투자 트렌드, 바로 '헤일로(HALO) 트레이드'다.

 

월가를 휩쓴 새로운 반AI 거래: 'HALO' / CNBC

 

1. 헤일로(HALO) 트레이드란 무엇인가?

 

'헤일로(HALO)'는 'Heavy Assets, Low Obsolescence(무거운 자산, 낮은 진부화 위험)'의 약자로, 리톨츠 웰스 매니지먼트(Ritholtz Wealth Management)의 CEO 조시 브라운(Josh Brown)이 처음 고안한 용어다.

 

간단히 말해 공장, 파이프라인, 중장비 등 막대한 물리적 인프라(Heavy Assets)를 기반으로 하여, 새로운 AI 기술이 등장하더라도 비즈니스 모델이 구식이 될 위험이 낮은(Low Obsolescence) 기업에 투자하는 전략이다. 시장에서는 이를 'AI 면역(AI Immunity) 트레이드'라고도 부른다.

 

조시 브라운은 "프롬프트 창에 텍스트를 입력하는 것만으로는 이들 기업이 생산하거나 판매하는 것을 절대 복제하거나 파괴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2. 발생 배경: "소프트웨어의 위기, 실물 경제의 귀환"

 

이러한 역발상 투자가 부상한 결정적인 계기는 최근 AI 자동화 도구의 급격한 발전이다. 악시오스(Axios)와 WSJ 등에 따르면, 앤스로픽(Anthropic)이 기업용 AI 도구인 '클로드 코워크(Claude CoWork)'를 발표하는 등 AI 성능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자, AI에 의해 직접적인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되는 소프트웨어 및 IT 서비스 주식에서 순식간에 약 3,000억 달러(약 400조 원) 규모의 시가총액이 증발하는 투매 현상이 발생했다.

 

투자자들은 AI가 비즈니스를 혁신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기존 기업을 하루아침에 쓸모없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에 따라 매그니피센트 7(M7)으로 대변되는 기술주에서 자금을 빼내, AI가 침범할 수 없는 안전자산으로 자본을 대거 이동시키고 있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의 최신 베팅은 AI 면역력을 갖춘 '헤일로' 기업들에 대한 것이다 / 월스트리트저널

 

3. 수혜 분야와 실제 주가 변동

 

헤일로 트레이드의 핵심 타깃은 인프라, 에너지, 소비재, 방산, 유틸리티 등 철저히 '물리적 세계'에 뿌리를 둔 기업들이다.

 

▲ 항공 vs 온라인 여행사: WSJ에 따르면, 온라인 여행 플랫폼인 익스피디아(Expedia)의 주가는 AI 봇(Bot)이 서비스를 대체할 수 있다는 우려로 한 달 새 23% 급락했다. 반면, 고객을 태우고 날아갈 '진짜 비행기'라는 무거운 자산을 보유한 델타항공(Delta Air Lines)은 같은 기간 5.4% 상승하며 뚜렷한 대비를 보였다.

 

▲ 전통 소비재 및 중장비: 햄버거를 직접 굽고 매장을 운영해야 하는 맥도날드(MCD)는 3개월간 주가가 약 10.5% 상승했다. 코카콜라(KO)와 펩시코(PEP) 역시 작년 11월 초 이후 각각 12%, 20% 상승했다. 배런스는 이에 대해 "아무리 뛰어난 AI라도 컵에 콜라를 직접 따를 수는 없기 때문"이라고 명쾌하게 설명했다.

 

▲ 에너지 및 산업재: 엑손모빌(XOM) 같은 대형 에너지 기업과 캐터필러(CAT), 디어(DE) 등 중장비 및 농기계 제조업체들도 AI의 영향을 받지 않는 대표적인 헤일로 주식으로 꼽히며 시장의 돈을 끌어모으고 있다.

 

 

4. 긍정적 전망과 투자은행들의 시각

 

골드만삭스(Goldman Sachs)와 모건스탠리(Morgan Stanley) 등 글로벌 대형 투자은행들도 이러한 흐름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

 

특히 골드만삭스는 최근 AI 관련주를 완전히 배제한 S&P 500 지수인 'SPXXAI'를 출시하며 헤일로 트레이드에 대한 시장의 수요에 직접적으로 부응했다. 모건스탠리의 마이크 윌슨 수석 전략가 역시 "비디지털 부문에 대한 상승세가 일시적 현상이 아니며 올해 내내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놀라운 점은 이들 실물 자산 기업이 AI와 적대적인 관계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AI 데이터센터 확충에 필요한 막대한 전력을 공급하는 유틸리티 기업이나, AI를 자체적으로 도입해 물류 및 생산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에너지, 제조업체들은 파괴당하기는커녕 오히려 AI의 간접적인 최대 수혜자가 될 수 있다.

 

SPXXAI - 인공지능 지원 기업 제외 US 500 주가 수익률 지수

 

5. 주의해야 할 위험 요인 (Risk Factors)

 

하지만 맹신은 금물. 시장 전문가들은 헤일로 트레이드에도 분명한 한계와 위험 요인이 있다고 경고한다.

 

거시경제 사이클의 위협: 이들 기업은 AI의 위협에서는 자유로울지언정, 고금리 장기화, 원자재 가격 변동, 글로벌 경기 침체 등 전통적인 실물 경제 사이클의 타격은 고스란히 받는다.

 

▲ 안전에 대한 과도한 지불 (Overpaying for safety): 이른바 'AI 공포증(Doom porn)'에 휩쓸려, 성장성이 제한된 전통 방어주에 프리미엄을 너무 높게 지불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 기술주의 반등 가능성: 최근 나스닥 지수가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의 수익률을 다시 상회하는 등 빅테크 주식이 빠르게 모멘텀을 회복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AI 기술의 확장성을 감안할 때, 소프트웨어 기업들을 포트폴리오에서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일 수 있다.

 

 

AI 시대의 아이러니, 벽돌과 굴뚝의 재발견

 

'헤일로 트레이드'는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고 가상 공간으로 빨려 들어가는 AI 폭격의 시대에, 인류가 결국 발을 딛고 소비하며 살아가는 곳은 '아날로그 세계'라는 단순한 진리를 일깨워준다.

 

세상에서 가장 진보한 디지털 기술에 대한 공포가 역설적으로 가장 무겁고 오래된 공장, 트랙터, 콜라, 비행기의 가치를 가장 눈부시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 이것이야말로 현대 금융 시장이 보여주는 최고의 역발상이자 흥미로운 아이러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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